[오건영의 경제읽기]원·달러 환율의 방향성과 변동성
최근 투자자들과 환율에 관한 대화를 하다보면 지난해와는 다소 달라진 점을 발견한다. 지난해 질문이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 같나요?”였다면, 올해는 “환율이 언제쯤 내려올까요?”가 대부분이다. 전자는 환율의 오르내림, 즉 방향성을 특정하고 있지 않다. 반면 후자는 환율의 하락을 전제하고 그 시기를 묻는 질문이다. 질문이 바뀐 이유는 가시권에 들어온 미국의 금리 인하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달러 보유 시 얻을 수 있는 이자 보상을 의미하는데, 금리가 인하되면 달러 보유 매력이 낮아지며 달러 약세의 개연성을 높인다. 그렇지만 단순히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만으로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기정사실화할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환율 결정 요인 중 해당 국가의 성장과 금리를 우선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성장이 차별적으로 강하다면 미국 자산 투자를 늘리기 위해 달러 매입 수요가 강해진다. 또한 미국의 금리가 높다면 더 높은 금리를 수취하기 위해 달러 수요를 높이곤 한다. 이를 통해 보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더라도 미국의 성장이 탄탄하다면 과거와 같이 강한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2월 초 발표된 미국의 고용 지표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금리로 인해 미국의 고용이 빠르게 식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올해 1분기 미국 경제는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루었는데, 미국의 1분기 성장률 역시 시장의 예상보다는 강한 것으로 예측된다. 강한 미국 성장은 미국 소비 수요를 탄탄하게 하고, 이는 미국 물가를 다시금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상당 수준 안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국 중앙은행(연준)의 목표인 2%로 되돌아오지 않은 소비자물가지수 때문에 연준은 시장의 기대보다는 다소 느린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보다 미국의 성장이 강하고, 예상보다 미국의 금리가 빠르게 내려오지 않는다면 달러의 약세, 즉 원·달러 환율의 빠른 하락까지는 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환율은 상대 가치를 반영하기에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상황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국내 경기는 수출이 다소 개선되고는 있지만 내수 소비 부진은 연중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비해 한국의 성장 강도가 다소 약하다면 달러 대비 원화의 강세는 상당 수준 제약될 수 있다. 또한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달러에 있어서도 과거와 달라진 면에 주목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 및 대중 수출이 이끌어온 바가 크다. 이들 수출이 부진하게 되면 국내 수출 경기 역시 타격을 받게 되는데, 2022년 초부터 16개월 연속으로 이례적인 무역적자를 기록했던 이유도 반도체 및 대중 수출의 부진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의 부진을 딛고 빠른 개선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지만 여전히 중국 수출의 회복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는 과거 대비 국내 무역 수지 흑자를 줄이면서 국내로 공급되는 달러를 줄이게 된다. 무역 흑자가 뚜렷하게 나타났던 과거 대비 달러 약세의 속도와 강도, 모두 다소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대중 수출의 부진으로 현재 국내 수출의 중심축은 미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성장이 둔화되면 한국의 수출 경기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미국 이외 중국 등의 수출이 강했던 과거와 달리 대미 수출 성장 의존도가 높아지면 미국의 성장이 둔화될 때 국내 수출 성장도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성장 둔화로 인한 달러 약세가 과거엔 당연한 것이었지만, 미국 성장 둔화가 한국의 수출에 과거 대비 큰 부담을 준다면 달러 대비 원화 가치의 빠른 강세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이상을 통해 보았을 때 빠르고 깊은 원·달러 환율 하락이 나타났던 과거와는 다른 그림을 외환 시장이 그려나갈 가능성이 있다. 환율 하락을 상수로 가정하는 것이 아닌 예상외 변수로서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건영 신한은행 WM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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