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하늘의 변화가 말하는 것

기자 2024. 2. 2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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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올해 겨울은 지난 겨울들에 비해 유난히 따뜻했다. 입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쪽 지방은 겨울 동안 개울과 연못에 얼음 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지난주 며칠 동안 남부 지방에 내린 비는 여름 장마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폭설이 ‘그래도 아직은 겨울이야’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올겨울 하늘이 예년과 많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1737년, 울산 부사 권상일이 본 새해 정초의 하늘 역시 어지럽기는 마찬가지다. 경상도 인근 지역에서 올라온 보고뿐 아니라, 병영의 조보까지 참고해서 하늘의 변화를 살핀 결과였다. 새해 첫날, 경상도 북부 지역인 영주와 풍기에서는 무지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무지개의 발생 원리를 알고 있는 현재도 겨울 무지개는 흔치 않으니, 조선시대에 이 무지개가 어떻게 읽혔을지 상상 가능하다. 당시 무지개는 음양의 조화가 무너졌음을 상징하는 증표였으니, 정월 초하루 무지개를 본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래서 그랬을까? 1월4일엔 태백성이 낮에 뜨는 현상이 발생했다. 게다가 이 별이 밤엔 달의 침범을 받기도 했다. 태백성은 원래 밤에 뜨면 ‘별 볼 일 없는 별’에 불과하지만, 낮에 나타나면 액운의 상징으로 읽혔다. 태백성은 오행 가운데 금(金)에 속해 금성으로도 불렸는데, 이처럼 쇠의 성질에 속하는 별이 낮에 뜨면 병장기의 부딪침, 즉 반란이나 전쟁의 징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월7일엔 안동과 예천, 영주 등지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지진은 몸으로 느낄 정도라야 보고되므로, 낮은 진도의 지진은 아니었다. 불안함이 급등하고, 민심은 순식간에 동요했다. 이 와중에 7일 뒤인 14일엔 객성(비상시적으로 나타나는 별)이 북두칠성 가운데 하나의 궤도를 침범했다. 우주 변화가 그들이 생각하는 ‘항상된 이치’, 즉 상리(常理)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상일은 15일 해 주위로 두 개의 귀고리 모양을 한 햇무리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보고, 답답한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전통 시대 해는 왕을 상징했기에, 햇무리는 다른 권력이 왕 주위를 둘러쌌다는 의미였다. (출전: 권상일, <청대일기>)

조선시대 사람들이 하늘의 변화를 읽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재이(災異) 사상에 근거한다. 그들은 유학적 세계관에 따라 하늘의 이치와 사람의 이치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 사는 세상이 상리를 잃고 백성들의 원망과 탄식이 하늘에 맺히면, 하늘 역시 거기에 응해 올바른 운행 원리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기후나 기상, 천체의 이상 현상은 통치자나 권력자들에게 그들이 다스리는 세상이 불안하고 원망 가득 찬 곳이 되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말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자들은 민심이 불안하고 나라 정세가 어지러우면 하늘의 이상 변화에 빗대어 이를 기록했고, 정권과 정책의 비판자들 역시 하늘이 보여준 조짐을 자신들의 비판 근거로 삼기도 했다.

이렇게 하늘의 이상 변화를 통치자에게 내리는 경고로 읽으면, 통치자는 그 원인을 찾고 잘못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행여 있을 억울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소송을 빨리 진행하고 가벼운 죄로 옥에 갇힌 사람들은 풀어줬으며, 옥사(獄事)에 억울한 죽음은 없었는지 다시 살펴보고,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하늘의 이상 변화가 안 그치면 왕은 백성들에게 자기 잘못을 알려달라 요구했다. 누구나 하늘의 이상 변화에 근거해 정책을 비판하고 잘못을 고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1737년 기준으로 볼 때 2024년 하늘 역시 불순하기 이를 데 없다. 1737년 같으면, 우리 사회를 보며 하늘의 변화가 상리를 잃었다고 기록할 일이 많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발달한 과학 지식 때문인지, 이를 더 이상 하늘의 경고로 여기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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