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장만능주의 의료의 ‘막장쇼’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하자 또 집단 진료거부가 벌어졌다. 2020년과 같이 전공의들이 진료를 거부하자 중환자 진료, 응급진료부터 심각한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값싼 전공의를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해온 대가다. 한국은 병원인력 기준이 없다. 의사인력은 최소기준만 있고, 간호인력은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그래서 병원들은 최소인원만 고용하고, 싼 수련의를 많이 고용하고 싶어 한다. 이로 인해 전공의가 없으면 진료과가 운영되지 않기도 한다. 2년 전 모 대학병원의 소아과 입원중단 사태 원인도 비슷했다. 즉 이미 수십년 전부터 알았던 시장의료 문제를 우리는 방치해왔다.
진료거부가 발생하자 이번에도 정부는 공공의료기관에 손을 벌렸다. 지방의료원, 군병원 등이 진료시간을 늘리고, 진료공백을 메우고 있다. 재난상황의 구원자는 늘 공공의료기관이었다. 메르스, 코로나 시기 환자 대다수는 공공병원이 진료했다. 감염병 시기마다 공공병원이 부족하고 공공병상과 인력이 부족하단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재난이 끝나면 정부는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한술 더 떠 윤석열 정부는 지난 2년간 공공의료기관이 코로나 진료 때문에 발생한 적자도 메워주지 않았다. 그 결과 공공병원은 더욱 부실화됐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사협회는 8개월간 진료거부를 선동했다. 그 결과 당시 국가와 사회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 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겼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는 공공병상을 30%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의료 부문은 시장에 맡겨두면 된다는 재정당국과 의료민영화론자들이 다시금 득세했기 때문이다.
민간 중심 의료체계는 한국에서 의사집단의 기득권 저항을 여러 차례 불러왔다. 1966년 서울시의사회는 소득세를 인하하지 않으면 진료거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권위주의 정부 시절 집단행동이 자제됐지만 1995년 의대 신설 때도 비슷한 협박이 있었다. 이후 2000년 의약분업 사태, 2020년 의대 증원 사태가 있었다. 즉 작금의 사태는 시장만능 의료체계에서 예측된 일이다.
결국 전 세계에 유례없는 의사들의 집단적 진료거부는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의료체계를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소한 30% 수준의 공공병상을 갖고 있었다면, 병원이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준이 있었다면, 개원의사들이 시장경쟁이 아니라 주치의제나 환자등록제하에서 일차의료가 기능했다면, 애초에 지역의사 공공의대 같은 의무복무 의사를 보유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윤 정부의 의료정책은 시장주의적 의료체계를 강화한다. 공공병원은 고사시키고, 민간병원에 수가를 더 주고, 일차의료는 민영보험사가 건강관리서비스나 비대면진료로 운영하며,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는 직업선택의 자율을 논하며 거부한다. 되레 바이오헬스 산업화를 위해 의사들이 앞장서라 말한다. 그러다 보니 배치계획과 재정지원이 없는 의대 증원안이 개혁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숫자뿐인 의대 증원안은 사교육시장에선 호재지만, 의료현장에선 모순의 카오스일 뿐이다. 배치계획을 숫자부터 발표하고 수립한다는 발상 자체가 시장주의적이다. 의료인력을 배치할 계획과 지역병원 확보도 없이 시장에 의사를 많이 배출시키면 소위 ‘낙수의사’가 발생할 거란 생각이라면 이는 국가기능 포기다.
의대 증원을 한다고 파업하는 의사들이나, 배치계획도 없이 의대 증원안을 발표하는 정부나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이런 유례없는 사태는 시장만능주의를 추앙하는 의사단체와 정부의 공통점 때문이다. 비슷한 시장만능주의자들끼리의 싸움에 결국 국민들 등이 터지고 환자들만 두려움에 떨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넋 나간 시장주의 정부 모두를 막을 수 있는 공공의료를 복원하는 정치다.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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