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4월까지 터지면 안돼" 연기된 부실

이윤희 2024. 2. 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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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금융부동산부 부동산팀장

부동산업계에선 '쳐다 보지도 말라'고 하는 땅이 있는데, 바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과 농지 등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비수도권에 위치한 그 '개발 금단의 땅'을 풀어주겠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두어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다.

정부는 전략사업으로 지정되면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지까지 풀겠다고 공언했다. 굴착기와 시멘트가 몰고 올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지역에 불어닥칠 무자비한 투기 광풍이 선하게 그려진다. 과거 군사정권이 선거철 빨랫비누와 고무신 안기듯 내놓은 선심성 정책이란 인상을 쉽사리 지울 수 없다.뿐만 아니다. 시장에선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인한 부실을 4월 총선 이후로 이연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 최상급지에 1군 건설사가 짓는 고급 주상복합 건설사업도 본PF 전환에 실패하고 어거지로 브릿지론 대출 연장을 해놓은 게 작년 말이에요. 근데 태영 말고는 다 조용하잖아요. 이상하지 않아요?", "살릴 수 있는 데와 아닌 데를 구분하지 않고 한계기업까지 모두 껴안고 가라는 것 같아요. '총선 전에 죽으면 안돼' 하는 거죠. 태영건설도 총선은 지나야 구체적인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 방안이 확정될 것이고요."

고금리와 경기 하락으로 부동산 개발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높은 금리의 이자를 대느라 이미 사업성을 잃어버린 사업들마저 금융당국이 온몸으로 틀어막은채 총선 전까지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부동산 개발을 위해 시행사에 PF 대출을 해준 금융사들은 이 대출채권을 바탕으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지난해 9월 기준 비우량급 PF ABCP 유통금리가 11~12%까지 올랐다. 보통 PF 사업장의 수익이 10% 안팎이란 점을 감안하면 현재 해당 사업장의 수익성은 없어진 것과 다름 없다. 지금도 담보인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고 건자재 등 공사비가 상승하면서 공사 진행 자체가 어렵고 분양 성적도 예측하기 힘들다.

이런 부실 PF사업에 대출을 제공한 금융사들은 이자를 받지 못하면서도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고 있다. 금융당국이 부실 사업장을 신속히 정리하는 대신 PF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려는 취지였지만, 업황 회복은 단기간에 이뤄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다. 하나의 사업장에서만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해도 그 공포는 불길처럼 옮겨붙을 것이다. 사업에 얽혀있던 토지주와 시행사, 은행, 증권사, 저축은행, 건설사들까지 연쇄적으로 '화'(禍)를 면하기 어려워진다.

이미 허약한 지방 건설사를 중심으로 부도와 폐업 사례가 현실화되고 있다. 올 들어 '해피트리' 브랜드로 잘 알려진 신일 등 5개 지방 건설사들이 부도를 냈으며 폐업을 신청한 중소업체는 565곳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4월 총선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갈 건설사의 리스트가 거론된 루머까지 확산했다. 총선 이후인 4월 15일 기업들의 2023년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이 다가온다. 이때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될 것이다.

지난해 '9월 위기설', '12월 위기설' 에 이어 이제 '4월 위기설'이다. 정부는 그럴 일은 없다고 펄쩍 뛴다. 하긴, 시공능력 16위의 흑자기업 태영건설도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워크아웃 신청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의외로 크게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4월에 연쇄 부도 등 경제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다만 총선 일정이 아닌 시장의 사이클에 입각한 PF 지원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손실이 확정된 사업장이라면 시장 원리에 따라 정리가 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주택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조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라졌던 수요가 생겨나고 시장은 다시 제 속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 상향, 본 PF 대금으로 브릿지론을 상환하는 관행, 책임 준공이나 지급 보증, 조건부 채무 인수 등 시공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 등 우리 PF 사업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봤으면 한다. st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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