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 곧 ‘짐’인 사회

한겨레 2024. 2. 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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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는 지쳤다고 했다.

대부분 직접 와서 상담을 받으려는 노년층 중에서 센터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셈이다.

동료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정말 없어서, 현장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동료가 매일 보던 풍경을 들려줄 때마다 나는 노년기가 마치 막다른 길이나,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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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랜 75’. 찬란 제공

[똑똑! 한국사회] 조기현 | 작가

동료는 지쳤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일자리센터에서 짧은 기간 일한 후였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노인 일자리를 알선하는 센터였는데, 그곳에서 ‘건강한 신체’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얼마나 가혹한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지 보았다.

센터는 2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도 없다. 대부분 직접 와서 상담을 받으려는 노년층 중에서 센터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 셈이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힙겹게 올라왔다고 해도 수난은 끝나지 않는다. 말귀를 한번에 못 알아들으면 짜증이 돌아오기도 하고, 보청기를 낀 상태여서 취업이 어렵다고 통보받는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반발하는 이에게는 목소리 높인 맞대응이 돌아간다.

이런 풍경이 서글픈 건 일하는 이들도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라도 더 알선하려고 나름 분투하지만, 분한 마음과 서글픈 마음 사이를 오고 가다 보니 금세 지쳐버렸다. 동료는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정말 없어서, 현장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고 했다.

동료가 매일 보던 풍경을 들려줄 때마다 나는 노년기가 마치 막다른 길이나, 벼랑 끝에 선 것처럼 다가왔다.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청년보다 노년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정해진 운명처럼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런데도 무언가 하려는 노년에게 기회도 주지 않고 이런 현실이 계속된다면 그들은 ‘부담’으로만 명명되지 않을까?

영화 ‘플랜75’는 노년이 사회의 ‘부담’으로만 여겨지는 근미래를 다룬다. ‘생산력’이 없는 노년이 청년의 부담을 가중한다며 혐오범죄가 벌어지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한다. 영화의 제목인 ‘플랜75’는 75살이 넘은 시민이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의 이름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78살 여성 미치는 호텔 객실 청소를 하며 살아간다. 플랜75가 시행된 세상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밝은 미래를 홍보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편이 불편하기만 하다. 죽음을 선택한 이에게 10만엔(88만7천원)을 주는 것을 시작으로, 죽기 전 패키지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민간 서비스까지 개발된다. 시행 3년 만에 1조엔(약 8조8700억원)의 경제 효과가 있다는 뉴스와 함께 연령을 65살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말이 뒤따른다.

어느 날, 함께 호텔 객실을 청소하던 동료가 쓰러진다. 이를 계기로 호텔은 안전을 핑계 삼아 노년 여성 노동자를 해고한다. 함께 해고된 동료는 내키진 않지만 큰딸의 아이를 돌보며 돈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가족이 없는 미치는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받아 주는 곳이 없다. 주거도 불안정해지며 다시 머물 곳을 찾지만, 노인에게는 2년치의 월세를 요구한다. 이도저도 안 돼서 찾아간 기초생활보장 상담창구는 당일 상담이 많다며 창구를 닫는다. 결국 하나의 선택지만 눈에 들어온다. 플랜75 신청서. 과연 선택일까?

생산성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노년에게 죽음을 권하고, 노년이 죽음을 결정하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까지도 알람을 맞춘다. 나는 이런 상상력이 우화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지금 한국 정부가 저출생에 대응하는 태도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인구를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1970~1980년대 정부는 지나친 인구 증가로 빈곤 퇴치와 경제성장이 어렵다며 출산을 강력하게 억제했다. 이후 불과 20년 만에 감소 속도가 급격하게 가팔라지자 부랴부랴 온갖 출산 장려책을 내놓는다. 이런 인위적이고 근시안적인 인구정책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정부가 죽음까지도 통제하려 하지 않을까? 이 물음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일자리가 없어서, 살 곳이 없어서, 기초적인 생활이 되지 않아서 죽음을 고민하는 미치의 얼굴을, 현실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마주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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