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정치의 경제 비용

한겨레 2024. 2. 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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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요즘 세계 학계에는 포퓰리즘에 관한 논문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포퓰리즘은 대중인기영합 정치 정도로 번역될 수 있다. 연구가 쏟아지는 이유는 현실 정치에서 지난 10여년간 포퓰리즘이 전례 없이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 영국의 브렉시트 정치, 유럽의 극우 정당 득세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남미 좌파 정부가 포퓰리즘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는데, 지금 세상을 흔들고 있는 것은 우파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정의하기 쉽지 않다.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요소도 내포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미 국가들이 보인 방만한 경제운영을 포퓰리즘과 등치했지만, 최근 학계는 포퓰리즘의 가장 큰 특징으로 편 가르기를 든다. 한편에는 소수의 엘리트, 기득권 혹은 카르텔 무리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선량한 국민이 있다며 선악을 구분한다.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자신을 선량한 국민의 대리자라는 표상으로 만든다. 기존에 확립된 지식이나 공리, 법과 규정을 쉽게 무시하고 조롱하며, 권위주의 정치로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설득과 타협의 정치, 정책적 숙의, 전문가 의견 수렴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세상을 단순하게 재단하기 때문에 내놓는 정책도 복잡할 필요가 없다.

윤석열 정부가 포퓰리즘 정치로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가 여러 언론에 등장한다. 보수와 진보 언론 가리지 않는다. 대통령은 건설노조나 은행에 카르텔 집단이라는 도덕적 낙인을 찍었다. 작년 광복절 기념사에서는 민주, 진보 운동가 세력으로 위장한 공산 전체주의 세력이 있다고 해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대통령의 언어가 공격적이고 위협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일반 정치인에 비해 부정적 언어는 15%, 공격적 언어는 11% 더 많이 사용하며, 공포 메시지를 8% 더 많이 전달한다고 한다.

윤 정부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포퓰리즘으로 뚜렷이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 직후 대통령은 참모와 여당 지도부에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말은 다른 뜻을 담고 있었다. 진짜 메시지는 4월 총선에서 득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지금부터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책이 이어졌다. 개미 투자자들이 좋아하는 공매도 금지, 자산 욕망을 부추기는 새도시 재건축 규제 완화, 소액 투자자에게는 헛된 희망을, 소수 대형 투자자에게는 감세 혜택을 주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이어 주가를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했고, 법적 근거도 없이 은행을 압박해 2조원의 기금을 만들어 차입자에게 돌려주었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규제를 완화하고 불과 며칠 뒤 다시 대규모 군사보호구역을 해제했다. 이런 정책이 총선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이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선거와 무관한 일을 한다고 생각할까?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이며, 윤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었다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대런 애스모글루(다론 아제모을루)는 몇년 전 포퓰리즘 정치를 이론화한 논문을 발표했다. 우파 정치인이 중도 혹은 좌파와 유사한 포퓰리즘적 정책을 선택하는 이유에 관한 그의 설명이 흥미롭다. 정치인이 재벌과 같은 이익집단에 의해 포획되었다는 의심을 받을 경우, 이를 감추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패했다는 국민의 의심이 클수록 그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그러면 포퓰리즘 정치지도자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 경제학계 최고의 학술잡지에 포퓰리즘에 관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1900년부터 최근까지 약 1500명의 대통령이나 총리들의 정치 언어를 분석해 포퓰리즘 지도자를 판별했다. 최근에 포퓰리즘이 급격히 확산해 전세계의 25%가 포퓰리즘 정부라고 한다. 좌-우파 비중이 비슷한데 우파 비중이 증가 추세다. 포퓰리즘의 장기적 영향을 분석한 결과, 15년 뒤 국민소득은 일반 정부에 비해 약 10% 정도 낮아진다. 좌-우 모두 비슷하다. 국가부채 비율은 10%가량 늘고, 물가도 10%가량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는 걱정하지 않고 단기 득표에만 집중하는 정책이어서다. 정치적 자유 역시 침해되는데 특히 언론자유가 악화된다고 한다. 더 슬픈 예측은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끝이 종종 순탄하지 않다는 통계가 위안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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