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성 잃은 지도자의 만기친람…의대 증원은 시민 숙의에 맡겨야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최근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보면서 '정치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다.
공자는 '논어'의 위정(爲政)편과 안연(顔淵)편에서 정치는 바름을 추구하는 것이며, 모든 정치 주체들을 바름으로 이끄는 과정을 '덕'이라고 가르친다.
여러 정치 주체의 미덕을 일깨우는 숙의의 공간과 그 결과에 귀를 기울일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 행위로서의 숙의는 여러 주관성의 접점인 '간주관성'을 빚어내는 과정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재준 50대·서울 양천구
최근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보면서 ‘정치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된다. 공자는 ‘논어’의 위정(爲政)편과 안연(顔淵)편에서 정치는 바름을 추구하는 것이며, 모든 정치 주체들을 바름으로 이끄는 과정을 ‘덕’이라고 가르친다. 그 과정이 정당성을 잃으면 정치는 실종되고 나라는 혼란에 빠진다. 공자는 혼란의 해법을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는 구절에 담아낸다. 겉뜻은 군주는 군주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녀는 자녀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화의 전후 맥락을 따져 그 속뜻을 추려보면 정치의 부재, 특히 군주의 정치적 각성을 촉구하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정치 주체 각각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저마다의 이익과 그 침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 자체만으로는 비난의 대상도 아니다. 그러나 국가라는 사회는 공동선의 영역이 없으면 국민에게 결코 좋은 삶을 보장할 수 없다. 여러 정치 주체의 미덕을 일깨우는 숙의의 공간과 그 결과에 귀를 기울일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는 반드시 승패를 가려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숙의 공간 마련을 전제로 의학계를 설득하고, 야당은 구경꾼처럼 선거에 미칠 득실을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자녀로 두고 있다. 주관적 당사자인 셈이다. 정치 행위로서의 숙의는 여러 주관성의 접점인 ‘간주관성’을 빚어내는 과정이다. 정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과정의 아름다움, 즉 공자가 말한 덕의 싹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이다. 이제 필자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의대 정원 확대라는 거대한 슬로건에 묻힌 작은 이야기를 풀어놓고자 한다.
첫째, 의료인력 부족, 특히 응급의사 부족 문제는 정원 확대로 풀 수 있는 1차 방정식인가? 아니면 기존의 불합리한 의료체계 내지 제도가 얽힌 고차 방정식인가? 우리 아이는 사명감인지 아니면 어떤 현실적인 이유인지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지망했다. 아마도 공중보건의 봉직 때 경험한 응급실 근무가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욕설과 폭력, 주취 난동, 공포가 난무하는 응급실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병원은 치료의 공간이지 물건을 흥정하는 시장이 아니다. 따라서 시장 논리가 아닌 의료 논리, 즉 환자의 인도적 치료와 의료인 인권존중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왜 지역 환자들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서울에서 진료를 받으려고 하는가? 지방 의료인력 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제3의 요인이 존재하는가? 지방에 사는 가족 중 최근 이른바 서울의 5대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가 있다. 상당 기간 지역 대학병원에서 진단과 치료를 병행했으나 명쾌한 결과를 얻을 수 없어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지역 의사들의 의료역량보다는 고가의 첨단 진단장비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료민영화와 그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질 제고라는 허울을 추구하는 현재의 의료체계에서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시장 논리에 따라 환자가 없으면 수익이 나지 않고, 수익이 나지 않으니 투자를 할 수 없고, 진료환경이 열악하니 지방 의료는 고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 근본적 원인이 아닌가?
만기친람(임금이 모든 정무를 직접 챙기는 것), 최고 지도자는 디테일할 필요가 없다. 허울 좋은 슬로건에 취해 장막 뒤에 숨지 말고, 의료 본연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디테일은 합리적인 행정가, 이성적인 의료인, 미덕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숙의에 맡기는 것이 어떤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최후통첩 D데이’ 버티는 전공의…정부 “만나 대화하자”
- 민주당 3차 경선 발표…박민규·안도걸에 현역 유기홍·이병훈 탈락
- 정세진·김원장·박종훈 등 KBS ‘간판 언론인’ 퇴직…“사내 자괴감 팽배”
- 280조원 써도, 자식 안 낳는다…성평등·노동단축 없인 효과 한계
- 국민의힘 지역구 ‘현역 불패’ 깨져…장예찬·김희정·권영진 본선 티켓
- 이재명 “탈당은 자유”…홍영표·임종석 “당 결정보고 거취 결정”
- 불에 손 넣고도 태연…그런 결기, 일제 겨눈 30살 송학선의 삶
- 쿠팡, 14년 만에 연간 흑자 냈다는데…과로사·블랙리스트는요?
- 장기체류 외국인 189만명…인구위기에 이민·정착 지원 ‘필수’
- ‘김건희 리스크’ 회피하는 한동훈...“본인도 부끄러울 것” [막전막후 총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