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가미카제 광기가 만들어낸 ‘독고다이’

한겨레 2024. 2. 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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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각 일간지에는 가수 이효리가 국민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축사의 내용이 게재됐다.

이효리는 "누구에게 기대고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인생 '독고다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도대체 '독고다이'라는 용어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비행기에 폭탄을 장착한 채로 미국의 군함에 충돌하는 육탄공격을 고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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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가미카제 특공대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왜냐면] 최종호 l 변호사

지난 15일 각 일간지에는 가수 이효리가 국민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축사의 내용이 게재됐다. 이효리는 “누구에게 기대고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그냥 인생 ‘독고다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여러 번 자신을 어떤 정치적 계파에 속하지 않는 ‘독고다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는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용례를 보면, ‘독고다이’를 독고(獨孤)라고 새겨 ‘홀로 외롭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는 긍정적 의미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런데 국어사전에 이런 단어는 없다. 도대체 ‘독고다이’라는 용어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진 일본은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비행기에 폭탄을 장착한 채로 미국의 군함에 충돌하는 육탄공격을 고안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 목표물을 향해 사람이 조종해 돌입하는 것이므로 높은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탑승한 사람은 탈출의 기회가 없으므로 사망률은 100%이다. 따라서 육탄공격은 자살공격과 같은 의미가 된다.

전쟁에는 필연적으로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험이 뒤따르지만, 작전을 수행하는 군인이 반드시 사망하는 작전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므로, 죽음이 곧 결론이 되는 행동을 강제하는 것은 인간성의 본질에 반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이므로, 인간을 물건인 병기의 일부분으로 취급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당시 일본군 내부에도 육탄공격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단적 현상 앞에서 이성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1944년 10월21일 출격한 일본 해군의 비행기 24기는 그 유명한 가미카제(神風)의 시작이었다. 이때 육탄공격을 실시하는 부대는 특별공격대(特別攻擊隊)로 불렸다. 이를 줄이면 특공대(特攻隊)가 되는데, 그 일본식 발음이 ‘독코타이’이다. 일본의 집계를 보면, 1945년 8월15일까지의 약 10개월 동안 ‘독코타이’의 전사자는 육군과 해군 합계 5838명이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일본에서 ‘독코타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무모하고 어리석은 전쟁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남았다. 당연히 일상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는 죽은 표현인데, 간혹 야쿠자 조직의 항쟁에서 직접 범죄를 실행하는 조직원을 ‘독코타이’라고 부르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뉘앙스의 표현이므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이를 입에 올리는 경우도 없다.

이쯤 되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독고다이’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주장처럼 우리말이 아니라, 일본어인 ‘독코타이’가 전와(轉訛, 어떤 말이 본래의 뜻과 달리 전해져 그릇되게 굳어짐)된 것이다. 시인을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람은 ‘팔할이 역사’에 있다. 이렇게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의 상당 부분은 태평양전쟁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런데 이 비극적 전쟁의 중심에서 인간의 광기가 만들어낸 ‘독코타이’의 망령은 ‘독고다이’로 창씨개명해 80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맴돌고 있다. 무지는 변명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아, 부끄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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