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1만명 증원 어떻게 결정?…정부 ‘근거의 정치’ 펼쳐야

한겨레 2024. 2. 2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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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대 증원에 반발한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관련해 10개 국립대병원장과 긴급 영상 간담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상준 | 런던정경대 박사·일반의(왼쪽사진)
정웅기 | 존스홉킨스대 박사·서울대 의학연구원 연구조교수

의과대학 정원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대치하면서 환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몇 가지 근거를 들어 1만명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번이 그 마지막 기회라 주장하는 반면, 의료계는 정부가 제시하는 근거들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의정 간 논의가 상호비방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근거의 활용에 대한 공통의 언어와 이해가 부재한 탓이 크다. ‘근거의 정치’(2017)를 쓴 저스틴 파크허스트는 효과적 정책 과정에 필수적인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이는 현재 논의 지형의 문제점을 보다 명료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첫 번째 기준은 ‘좋은 근거’의 여부로, 과학적 충실성과 주어진 문제에 대한 적절성을 점검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핵심 근거는 보고서 세 건과 해외 사례다. 세부 방법론 확인이 어려운 서울대 보고서를 제외한 두 기관의 보고서에는 가장 긴요한 필수과의 추계 결과와 여러 정책 대안에 대한 탐색이 미비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1년 보고서는 과목 추계가 아닌 내과계, 외과계 등 계열별 추계를 보고했고, 지역 불균형에 대한 심층 분석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는 이론에 근거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했으나 건강상태 개선 등 변수에 따라 추계의 폭은 크게 변하며, 과목별 추계는 선택적으로 기술됐다. 또한 건강 개선 효과와 의사 생산성 향상 등 모형에 사용된 변수들의 불확실성이 큰 경우, 유관 학회나 지역 전문가의 공식적인 견해를 청취하고 이를 결과의 해석에 반영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두 보고서 모두 이 과정이 부족하며, 정책 대안에 대한 폭넓은 검토와 영향 분석 또한 빠져있다. 과목별, 지역별 불균형이 필수의료 이슈의 핵심임을 감안하면, 이를 정책 판단의 적절한 근거로 보기는 어렵다.

정책 입안의 근거로 주요 선진국의 경험을 선별적으로 인용하는 관행 또한 문제적이다. 근거로서 힘을 가지려면 해당 사례들을 왜, 그리고 어떻게 선정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행정‧재정역량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본의 지역의사제를 거론하거나, 대기시간이나 의료비에 대한 국제 비교 없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의사 수 평균을 근거로 드는 관행은 그런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전형적 예다. 또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들은 검토 대상인 6개국을 선택한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그 내용 역시 인력 수급방식을 단순 기술하고 있다. 요컨대, 정부가 제시한 근거의 범위와 내용은 의대 정원 증원이라는 정책 목적을 뒷받침하는 데 한계가 있다.

파크허스트가 제시하는 두 번째 기준은 근거의 ‘좋은 사용’으로, 이는 근거가 정당한 방식으로 활용되는지를 묻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는 증원 결정에 활용한 보고서들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시민이 정책의 근거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애초에 차단하는 조치다. 그런 가부장적 태도는 근거의 ‘좋은 사용’ 여부를 평가할 또 다른 사례와 직결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최근 여론조사의 결과는 증원을 압도적으로 지지하지만, 보건의료 이슈는 보통 대중적으로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기술적으로 복잡한 사안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민이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해당 주제를 숙고할 기회를 가질 때 그 의견의 대표성을 얼마간 담보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결여한 평면적 조사에 크게 의존하는 것은 정책 결정의 정당성을 보장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마지막 세 번째 기준은 근거 활용을 위한 ‘좋은 거버넌스’가 구축돼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이는 근거의 좋은 사용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과제를 가리킨다. 예컨대, 정부는 1년간 총 28차례의 ‘의료현안협의체’ 회의가 열렸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회의 대부분 양자의 입장차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또한 지난해 8월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가동하고, 그 산하에 2개 전문위원회를 운영했다. 하지만 그 활동은 본격적인 근거 생산보다는 기존 문헌 일부에 관한 의견 교류에 머물렀다. 이마저도 정례화하지 않고 12월에 마지막 회의가 열린 이후 중단됐다. 두 기구의 활동 내역은 공개된 바 없으며, 회의록이나 합의문처럼 시민이 이를 판단할 근거 역시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

보건의료 개혁은 과학적 근거에 충실히 입각하는 동시에 그에 관한 정부, 의사, 시민 모두의 숙의가 가능한 제도를 구축해가는 정치적 과제다. 더 나은 개혁의 전망은 그로부터 비로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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