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비야디·지리車만 사라”… 中 전기차, 도미노 파산 속 옥석 가리기 본격화
파산 위기 제조사들, 부품 등 AS 나 몰라라
“우리는 중소 브랜드 전기차는 아예 취급도 안 해요. 전기차 회사들이 줄줄이 망하고 있어서 물건을 잘 가려받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요. 지금은 괜찮아 보이는 회사도 나중에 갑자기 AS가 안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전기차를 꼭 사고 싶다면 테슬라, 비야디(BYD), 지리자동차 같이 대기업 브랜드 중에서 고르는 것을 추천할게요.”
지난 27일 오전, 중국 베이징 최대 중고차 시장인 ‘베이징시 구(舊)자동차 교역 시장’. 이곳에서 만난 중고차 판매상 왕모씨는 “다른 업체를 가더라도 웨이마(WM), 가오허(하이파이)만큼은 절대 사면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때 중국 전기차 업계의 미래로 꼽히던 웨이마는 지난해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 하이파이 생산 기업 화런원퉁은 자금난으로 인해 지난달부터 6개월간 생산 중단에 돌입한 상태다.
중국 전기차 시장에 구조조정 파고가 거세게 일고 있다. 공급 과잉으로 시장 성장이 둔화하자 끝없는 가격 경쟁이 시작됐고, 자금력이 약한 기업부터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올해 말 상위 3개 업체가 70%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시장 재편은 더욱 속도가 붙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 과정에서 차량 품질보증, 부품 관리 등 애프터서비스(AS)가 어려워질 수 있어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 “올해 말 상위 3개 업체가 시장 70% 차지”
중국 전기차 기업 리오토의 최고경영자(CEO) 리샹은 지난 26일 컨퍼런스콜에서 “올해 4분기까지 상위 3개 회사가 20만위안(약 3700만원) 이상 전기차 시장의 70%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계면신문은 “이렇게 된다면 내연기관차 시장보다 더한 과점 체제이며, (애플, 화웨이 등이 꽉 잡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2018년 한때 487개에 달했던 전기차 업체가 지난해 기준 40여개까지 쪼그라들었는데도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원인으로는 공급 과잉이 꼽힌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 리서치는 중국 전기차 업계의 생산 능력이 지난해부터 2025년까지 3년간 370만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비야디만 봐도 올해 12월까지 연간 400만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 지난해보다 100만대 더 많은 수준이다.
반면 중국 내 전기차 수요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1월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차·수소차) 생산 및 판매량은 각각 78만7000대, 72만9000대로 한달 전보다 32.9%, 38.8%씩 급감했다. 중국 토종 브랜드 중 1월 한 달간 전기차 판매량이 10만대를 넘어선 곳은 비야디(20만6904대) 뿐이었고, 2·3위인 지리(6만4285대)차와 창안(5만1109대)차는 비야디의 20~30% 수준에 불과했다.
중국 전기차 업계가 가격 경쟁으로 실적 둔화에 대응하면서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는 형국이다. 중국 전기 승용차 할인율은 지난해 말 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말연시와 일부 명절 등에만 실시하던 할인 행사가 점차 잦아져 ‘연간 상시 할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전기차 업계는 향후 몇 년 내 중국에서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수백만대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할 준비를 마쳤다”며 “많은 기업이 매출 증가에도 (가격 경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일부 기업들은 파산하거나 추가 자본 투입이 필요한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 AS 어려워져 소비자 피해… 물량 처분 급급한 중고차 업체
문 닫는 전기차 기업이 늘어나면 소비자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중국 내에서는 파산했거나 파산 위기인 전기차 기업들의 AS가 논란이 되고 있다. 웨이마의 경우 파산 신청 1년 전인 2022년 11월부터 이미 부품 교체가 어려워졌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공장과 AS 센터의 문을 대거 닫은 탓이다. 중국 경제매체 매일경제신문은 “다수의 신흥 전기차 제조사들이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AS 문제에 직면한 자동차 소유자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일부 중고차 업체들은 AS 논란이 본격화하기 전 문제가 될 전기차를 처분하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이날 한 중고차 업체는 기자에게 생산이 중단된 ‘하이파이X’ 모델을 판매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그는 “2022년에 출시됐고, 3만㎞밖에 타지 않아 새 차나 다름없다”며 “24만위안(약 4400만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출시 당시 57만~80만위안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반값도 채 안되는 수준이다. 나중에 AS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하이파이가 지금 망하기라도 했느냐”라며 “전혀 문제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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