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이정후에 1500억 줬다… 데뷔전부터 올스타 투수 공략, 1안타+1득점 ‘성공적 데뷔전’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샌프란시스코가 왜 이정후에게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505억 원)을 투자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던 한 판이었다. 실전 감각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도 메이저리그 올스타 투수를 상대로 안타를 치며 정상적인 컨디션을 과시했다. 현지 팬들의 환영도 대단했다. 첫 경기를 무난하게 치른 만큼, 이제 메이저리그 개막을 향해 차분하게 발걸음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는 28일(한국시간) 미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시애틀과 경기에 선발 1번 중견수로 출전해 2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가벼운 옆구리 통증으로 팀의 시범경기 개막전에는 나가지 못하고 잠시 숨을 고른 이정후는 이날 첫 경기부터 리드오프로 출전하며 팀의 믿음을 보여줬고, 안타를 기록하는 등 비교적 정상적인 컨디션을 선보이며 기대치를 끌어올렸다.
이정후는 이날 첫 타석에서 시애틀 차세대 에이스이자 지난해 올스타 선정 투수인 조지 커비를 상대로 1‧2루 간을 뚫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후 상대 실책에 힘입어 2루까지 갔고, 라몬테 웨이드 주니어의 적시타 때 손쉽게 홈을 밟았다. 시범경기 데뷔전 첫 타석부터 첫 안타와 첫 득점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이정후는 2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1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4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삼진으로 물러났고, 세 번째 타석이 끝난 뒤 바로 교체돼 경기를 마쳤다. 수비에서는 이정후의 능력을 실험할 만한 이렇다 할 타구는 없었다.
양팀 선발 투수들은 모두 고전했다. 샌프란시스코 선발 조던 힉스는 1⅔이닝 동안 2피안타(1피홈런) 1볼넷 4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투구 편차가 다소 있었다. 고비를 버티지 못하고 홈런을 맞았다. 시애틀 선발 조지 커비도 나을 것은 없었다. 이날이 시범경기 첫 등판이었던 커비는 1⅓이닝 동안 4피안타 4실점(3자책점)하며 어려웠던 경기를 마무리했다.
샌프란시스코 주전 타자 중에서는 에스트라다가 2안타를 기록하며 좋은 타격감을 선보였고 베일리 또한 홈런포로 올 시즌 팀의 기대치를 증명했다. 웨이드 주니어도 1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다만 선발 힉스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나선 매디슨이 3실점했고, 네 번째 투수 아미르 개럿도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으면서 3실점하는 등 마운드에서는 숙제를 남겼다.
◆ 팀 리드오프 공인, 옆구리 부상 아무 문제없었다
2023년 시즌이 끝난 뒤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한 이정후는 많은 구단들의 관심을 받은 끝에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샌프란시스코를 선택했다. 당초 현지 언론에서는 연간 1500만 달러 수준, 4년 기준 5500~6000만 달러 정도의 계약을 예상했으나 이정후 파워는 이를 비웃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물론 샌디에이고, 뉴욕 양키스 등도 이정후 영입전에 관심을 드러냈고, 경쟁 끝에 오른 가격은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를 찍었다. 이정후는 4년 뒤 옵트아웃(잔여계약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취득)을 선언할 수 있는 권한까지 손에 넣었다.
지난해 전체 타격 지표가 내셔널리그 최하위 수준으로 처진 샌프란시스코는 코디 벨린저 등 대형 선수들과 연계됐으나 이정후를 선택해 관심을 모았다. 팀 타율, 특히 좌타자와 중견수 부문에서의 타율이 크게 떨어진 만큼 콘택트 능력이 확실한 이정후를 영입해 이를 보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1억13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받은 만큼 자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가 6년 동안 전성기를 내달릴 것으로 봤고, 새롭게 팀 지휘봉을 잡은 밥 멜빈 감독 또한 스프링트레이닝 소집 당시 “이정후가 개막전 리드오프가 아니라면 그것도 충격적인 일이 될 것”이라면서 이정후의 리드오프 중견수 투입을 못 박았다.
다만 이정후의 시범경기 데뷔는 조금 늦어졌다. 가벼운 옆구리 통증 때문이었다. 이정후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정후는 “옆구리에 알이 배겼다. 한국이었으면 뛰었다”라는 말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 당장이라도 경기에 나설 수 있을 정도의 상태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모험을 원치 않았다. 철저하게 관리했다. 자칫 잘못하면 부상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확실하게 나은 뒤 경기에 나가길 바랐다.
멜빈 감독 또한 “하루, 이틀 정도 쉬면 될 것”이라면서 이정후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렇게 멜빈 감독의 예고대로 이정후는 시범경기 개막으로부터 이틀을 더 쉬고 28일 첫 경기에 나갔다. “아팠다면 미리 말씀을 드렸을 것이다. 이정도면 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단에서 관리해주는 거니까 알겠다고 답했다”고 말한 이정후는 28일 경기에 정상적인 컨디션을 과시하며 몸에 문제가 없다는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 올스타 투수 상대로 첫 안타, 득점까지 해냈다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선발 중견수 및 리드오프로 나선 이정후를 시작으로 사이로 에스트라다(2루수)-라몬테 웨이드 주니어(1루수)-호르헤 솔레어(지명타자)-윌머 플로레스(3루수)-패트릭 베일리(포수)-케이시 슈미트(유격수)-헬리엇 라모스(우익수)-루이스 마토스(좌익수)의 라인업을 구성했다. 선발 투수는 올 시즌을 앞두고 영입된 100마일의 사나이 조던 힉스가 나갔다.
이에 맞서는 시애틀의 선발 투수는 2023년 올스타에 빛나는 팀의 차세대 에이스 조지 커비(26)였다. 커비는 201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시애틀의 1라운드(전체 20순위) 지명을 받았으며 아마추어 시절부터 기대가 컸던 특급 유망주 중 하나다. 마이너리그 단계를 빠르게 통과한 커비는 2022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해 곧바로 진가를 드러냈다. 2022년 25경기에서 8승5패 평균자책점 3.39로 팬들을 흥분시키더니, 지난해에는 첫 풀타임 시즌을 치렀다. 시즌 31경기에 나가 190⅔이닝을 소화하며 13승10패 평균자책점 3.35로 대활약하며 생애 첫 올스타까지 선정됐다. 자타가 공인하는 시애틀의 차세대 에이스다.
그런 커비도 이날이 시범경기 첫 등판이었다. 상대하는 첫 타자가 이정후였던 셈이다. 커비는 포심패스트볼 평균 96.2마일(약 155㎞), 싱커 평균 95.9마일(약 154.3㎞)을 던지는 등 선발 투수로서는 빠른 공을 가지고 있다. 포심과 싱커의 비중을 합치면 지난해 기준 60%가 넘어갈 정도로 힘 있는 패스트볼을 자랑한다. 여기에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를 주로 섞는다. 완성형 선발 투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정후의 적응력이 더 좋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선발로 나선 힉스가 1회부터 흔들리며 2실점했다. 전광판에 100마일이 찍히는 패스트볼의 구속은 여전했으나 1회 1사 1루에서 미치 가버에게 투런포를 맞고 실점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반격이 필요한 시점에 이정후가 선봉장으로 나섰다. 0-2로 뒤진 1회 첫 타석부터 안타를 신고했다.
이정후는 불리한 카운트에 몰렸다. 초구 커비의 패스트볼을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선언이 났다. 2구째 공에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으나 파울이 됐다. 2S의 불리한 카운트. 하지만 KBO리그 시절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았던 이정후는 굴하지 않았다. 3구째 커비의 공을 받아쳤다. 타구는 빠르게 1루수 옆을 빠져 나가는 우전 안타로 이어졌다. 1루수가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으나 타구를 잡지 못했다. 빠른 타구였다. 삼진을 잘 당하지 않고 콘택트 능력이 좋은 이정후의 장점이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돌격 대장 이정후가 나가자 샌프란시스코 타선도 불을 뿜었다. 커비를 두들기며 계속 점수를 뽑아냈다. 에스트라다의 유격수 땅볼 때 실책이 나오면서 무사 1,2루가 됐고 웨이드 주니어가 이정후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적시타를 쳤다. 빠르게 타구를 본 이정후는 3루를 돌아 비교적 여유 있게 홈을 밟았다.
샌프란시스코는 솔레어가 뜬공으로 물러났으나 플로레스가 유격수 방면 내야안타를 쳐 1사 만루를 만들었다. 1회에 투구 수가 너무 많았던 커비가 관리 차원에서 마운드를 내려가고 제러드 베이리스가 마운드를 이어 받았다. 여기서 베일리가 역전 만루 홈런을 치며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고 5-2로 앞서 나갔다.
시애틀도 2회 3점을 뽑아내며 단번에 동점을 만들었다. 안타 2개로 만든 기회에서 도미닉 캔존이 동점 3점 홈런을 터뜨리며 5-5 균형을 맞췄다. 이정후의 두 번째 타석은 2회였다. 5-5로 맞선 3회 선두 마토스가 3루수 땅볼로 물러난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연습경기 특성상 투수 교체는 자유다. 1회 투구 수가 많아 잠시 휴식차 내려갔던 커비가 2회 다시 마운드에 올랐고 이정후는 4구째 공을 공략했으나 이번에는 1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시애틀은 4회 대포의 힘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선두 테일러가 볼넷을 고르자 차비스가 좌월 2점 홈런을 터뜨리며 7-5로 앞서 나갔다. 당초 두 타석 정도를 뛰고 경기에서 빠질 것으로 보였던 이정후는 한 타석을 더 소화하기로 했다. 5-8로 뒤진 4회 샌프란시스코는 1사 후 라모스가 볼넷을 골라 출루했다. 다만 마토스가 1루수 뜬공에 그쳐 2사 1루 상황이 됐고, 이정후도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며 기회를 놓쳤다. 이정후는 4회 공격이 끝난 뒤 타일러 피츠제랄드로 교체돼 경기를 마쳤다. 이날 최종 성적인 3타수 1안타 1득점 1삼진이었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현지 라디오 중계진은 이정후에 대해 “(샌프란시스코의) 새 리드오프 중견수다. 이번 오프시즌 한국에서 건너오면서 6년 계약을 맺었고 오늘 캑터 스리그(애리조나 스프링트레이닝 시범경기) 출전한다”면서 “캑터스리그 데뷔가 며칠 늦어졌는데 가벼운 옆구리 통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중계진은 “이정후는 51번을 입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스즈키 이치로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KBO리그에서부터 51번을 입었다”면서 첫 안타 후에는 “샌프란시스코 선수 소속으로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는 순간이다. 헬멧이 날아가는 장면에 이제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이게 이정후의 야구다. 이정후는 커리어 내내 공을 방망이에 맞히는 능력을 보여줬다. KBO리그 통산 타율이 0.340에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은 선수다. 밥 멜빈 감독은 이미 이정후를 리드오프로 1년 내내 기용하겠다고 밝혔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시애틀은 8-5로 앞선 5회 1점을 더 추가했다. 2사 후 차비스가 다시 안타를 치고 나갔고, 빌리스의 적시 2루타로 1점을 보탰다. 경기는 5회 현재 시애틀이 9-5로 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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