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사카모토 준지 "일본영화계에 똥을 던지고 싶었다"

손정빈 기자 2024. 2. 2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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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오키쿠와 세계' 가지고 한국 찾아
"현 일본영화계 인내심 없고 리스크 회피"
인분 소재로 청춘영화…독특한 발상 주목
"누구도 다루지 않은 소재라 신선함 느껴"
"가장 낮고 더러운 곳에서 세계를 보고파"
흑백 화면 미학 "더 적극적인 관객 몰입"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그리고…평소 일본 영화계에 대한 어떤 불만이 있었습니다.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죠. 분뇨를 던지겠다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든 측면도 있습니다."

사카모토 준지(阪本順治·66) 감독은 새 영화 '오쿠키의 세계'를 이렇게 소개했다. 제목에선 사카모토 감독의 반항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지만, 일단 안을 들여다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정말 분뇨의 영화다. 똥으로 시작해 똥을 보여주다가 똥으로 끝난다. 아마도 '오키쿠와 세계'보다 더러운 영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런 것이다. 불쾌해야 하는 게 당연한 작품인데 산뜻하고 유쾌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종종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사카모토 감독은 대체 어떤 영화를 만들어 놓은 걸까. 이 영화 홍보를 위해 한국에 온 사카모토 감독을 만났다. 그는 영화 외적 측면에서 "누구도 다루지 않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 일본 영화계 의식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했고, 영화 내적 측면에서 "사회의 가장 더러운 곳에서 세계를 바라 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작은 프로듀서이자 미술감독인 하라다 미쓰오였다. 하라다 미술감독은 세계 각 나라 자연과학자들과 함께 100년 후 지구에 남기고 싶은 좋은 날들을 영화에 담아보겠다는 취지로 '좋은 날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그 첫 번째 작품을 사카모토 감독에게 제안했다. 평소 환경 문제나 계몽적인 영화에 관심이 없던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중 에도 시대에 인분을 거름으로 활용해 농작물을 키우고 그렇게 나온 식량이 다시 사람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 순환 경제를 보며 이 소재라면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다만 작업은 쉽지 않았다. 첫 촬영을 시작해 90분 분량 장편영화로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만 3년. 투자를 받기 위해 단편영화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단편을 하나 씩 모은 게 바로 현재의 '오키쿠와 세계'다. 19세기 말 일본이 배경인 이 작품은 똥거름 장수 야스케(이케마츠 소스케)와 츄지(칸 이치로) 그리고 몰락한 사무라이의 딸 오키쿠(쿠로키 하루)의 이야기를 그린다.

"3년 간 실제로 촬영한 기간은 12일이었습니다.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배급사를 만날 수 있을지도, 개봉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영화가 일본에서 공개되고, 영화제에 가고, 또 한국 관객을 만난다는 게 감개무량해요. 관객 연령대가 꽤나 높은 일본과는 달리 젊은 관객이 많은 한국에서 이 영화를 선보인다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관객이 가장 궁금해 할 건 아마도 분뇨라는 소재일 것이다. 사카모토 감독이 설명한 것처럼 이 영화의 시작이 환경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한 때는 거름으로도 쓰였던 인분이 활용된 건 전혀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사카모토 감독은 "영화 내에서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없는 소재라서 신선한 측면도 있었다"고도 했다. 다만 굳이 이 소재를 선택한 사람이 사카모토 감독 자신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일본 영화계를 향한 분노를 똥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금 일본 영화계는 인내심이 없고, 리스크를 피하는 데 급급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운 좋게 30편이나 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지만, 지금 젊은 감독들은 그렇지 않죠. 흑자를 내지 못하면 마치 일회용 물건처럼 한 번 쓰고 버려집니다. 그 뛰어난 재능을 육성하려는 생각이 지금 영화계엔 없는 것 같아요. 또 지나치게 리스크를 피해가려고 합니다. 새로운 도전이 없다는 거죠. 그런 현실이 답답했습니다."

사카모토 감독은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 차례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일본 대표 연출가 중 한 명이다. 그런 사카모토 감독 역시 투자 받는 게 쉽지 않은 게 일본 영화의 현재로 보였다. "제가 어떤 영화를 만드는지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제가 해외에서 상을 받아 오니까 그제서야 축하 인사를 하더군요. 메이저 영화사에서도 축하를 해줬고요. 고맙긴 한데 축하를 하기 전에 그 (잘못된) 의식부터 바꿔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오키쿠와 세계'의 사람들은 밑바닥을 뒹군다. 몰락이 있고 굴종이 있고 발악이 있고 비통이 있으며, 천하고 비루하고 박복하다. 그래도 이 영화는 삶이라는 것, 그 중에서도 청춘이라는 것엔 절망만 있진 않은 것 같다며 엷은 미소를 짓는 듯하다. 시간은 흐르고 삶은 제자리인 것 같지만, 세계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우린 아직 젊다는 것. 그래서 이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청춘이로구나!"

사카모토 감독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그는 "건방지고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며 "내 의식은 언제나 낮은 곳에서, 낮은 시점으로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가장 낮고 가장 더러운 곳에서 세계를 본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청춘들이 가진 자유를 향한 갈망이 담아냈다는 게 사카모토 감독의 설명이었다.


"팬데믹 3년 간 모두가 참 힘들었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희망이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하층 사람들이 차별 받으면서도 지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겁니다."

'오키쿠와 세계'는 극도로 절제돼 있으면서도 일본 특유의 정갈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잠시 영화를 멈출 수 있다면 그 쇼트 하나 하나가 회화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흑백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사카모토 감독은 흑백 화면엔 색 정보가 없기 때문에 관객이 캐릭터 표정에 집중할 수 있고, 풍경을 단순한 풍경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언어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흑백 화면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관객을 보다 적극적으로 영화에 몰입해 들어가게 해요. 오키쿠와 츄지가 포옹하는 장면을 보세요. 흑백이기 때문에 눈이 쌓인 모습과 그들의 움직임이 더 아름답지 않나요."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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