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파장] 오늘도 합법과 불법 사이 '외줄타기'…벼랑끝 간호사들

황지향, 이윤경 2024. 2.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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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떠난 병원 지키는 간호사들 눈물의 고백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내고 떠나면서 병원에 남은 간호사들은 업무 가중은 물론, 불법진료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을 하소연하고 있다. /서예원 기자

[더팩트ㅣ황지향 기자·이윤경 인턴기자] "제게 주어진 권한으로 환자 상태가 좋아지면 너무 좋은데, 상황에 떠밀려 제 일도 아닌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 외줄 타기 하는 느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 추진에 반대하며 사직서를 내고 떠난 전공의들 빈자리를 메우는 간호사들이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위급한 환자들 목숨을 구하기 위해 묵묵히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지만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피로도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불법진료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라 간호사들은 불법과 합법 사이 모호한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 전공의 업무라고?…불법진료는 암묵적 관행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근무 중인 김경모(가명) 간호사는 28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전공의들이 떠난 이후 현장은 매 순간 고민의 연속이라고 털어놨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넘어 불법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김 간호사는 "'처치를 해야 하나, 혹시 잘못되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 교수님한테 한 번 더 전화할까' 등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간다"며 "이런 상황이 순간순간 계속되고 결국 번아웃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대학병원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PA 간호사다. 임상 전담 간호사, 수술실 간호사 등으로도 불린다. 약물 처방부터 채혈, 봉합, 절개 등 전공의가 주로 하는 업무 전반을 대신한다. 현행법상 PA 면허가 별도 규정돼 있지 않아 의사를 대리하는 간호사의 의료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의사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간호사들의 불법진료는 사실상 암묵적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경북에 있는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7년째 근무 중인 임종혁(가명) 간호사는 "상급 종합병원에서도 PA들이 의사 아이디를 갖고 처방을 내고 있다"며 "전공의들은 PA라는 간호사들한테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임 간호사는 "그래서 공백이 없게 하려고 필요시 처방(PRN)으로 다 받아 놓고 있다"며 "특히 간호사들은 밤에 환자를 돌보는데 과장인 전문의한테 밤에 전화하는게 얼마나 부담스럽겠냐"고 말했다.

서울의 한 국공립병원에서 근무 중인 박은아(가명) 간호사도 "이른바 '빅5' 병원도 다 간호사들이 처방을 넣는다"며 "홍보실에서 아무리 거짓말로 안 한다고 해도 다 하고 있다. 맹세코 다 넣는다고 본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금 당장 환자가 넘어가는데 약은 타와야겠고, 약을 타려면 오더가 있어야 하는데 오더가 없으니 약국에서 약을 안 내줄 것 아니냐"며 "결국 환자가 넘어가야 하냐. 어떡해야 하냐"고 되물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이후 '의료공백 위기대응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 접수된 간호사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불법진료 행위 지시'로 나타났다. /서예원 기자

전공의 집단 이탈 이후 간호사가 의사 대신 처방을 하는 상황은 이전보다 몇 배 많아졌다고 한다. 의사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아픈 환자를 사지에 내몰 수는 없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이후 '의료공백 위기대응 현장간호사 애로사항 신고센터'에 접수된 간호사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불법진료 행위 지시'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접수된 곳은 상급 종합병원으로 62%를 차지했다. 이어 종합병원 36%, 병원 2% 등 순이었다.

김 간호사는 "전공의가 없다 보니까 원칙적으로 교수님들을 호출해야 하는데 사실 교수님들이 잘 할 줄 모르기도 하고 전공의들보다는 직접 연락하기도 꺼려진다"며 "그렇다 보니 간호사가 도맡아서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 환자 살리고 책임도 져야?…법적 분쟁 시 병원은 '떠넘기기'

더 큰 어려움은 간호사의 불법진료로 환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다. 이전까지 전공의가 하던 설명이나 해명을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까지 닥치면서 불법진료에 앞서 하루에도 수백 번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선 의사가 아닌 간호사의 설명이란 이유로 믿지 못하고, 폭언까지 들어야 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 간호사는 9년차 베테랑이지만 최근 동맥혈가스 검사(ABGA)를 하기 전 수없이 '이게 맞나'를 스스로에게 되묻는다고 했다. 김 간호사는 "압력이 센 동맥을 찔렀는데 지혈이 잘 안되거나 다른 곳을 찔러 피가 화산 분출하듯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며 "그렇게 되면 부종이나 혈종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스트레스까지 안아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채혈 과정에서 환자 몸에 작은 멍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전에는 의사들이 '의학적 판단에 따른 처치를 하다가 발생했고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든다'고 보호자에게 설명했다"며 "지금은 설명할 의사가 없다 보니 간호사인 우리가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 간호사도 비슷하다. 임 간호사는 ABGA에 대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응급실에 환자가 들어왔는데 시간을 지연시켜 잘못되면 어떻게 하겠냐.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환자를 생각하면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촉즉발 상황의 연속인 응급실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어렵다"며 "심전도 검사(EKG), 수동 산소공급(embu-bagging) 등도 응급실 간호사들이 많이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병원에 남은 간호사들은 법적 책임에 대한 스트레스도 크다고 토로했다. 사진은 지난 2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 /서예원 기자

책임 스트레스는 더욱 짓누른다. 특히 전공의들이 평소엔 간호사들에게 도움을 받고 의지하면서도 정작 법적 분쟁이 생겼을 경우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 2020년 전공의 파업 당시에도 간호사들은 대체 인력으로 일했다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의사들에게 고발 당한 바 있다.

임 간호사는 "일이 진짜 커지면 병원에선 '시키지도 않았는데 너희가 먼저 했다. 교수님한테 계속 전화해서 해달라고 했어야 했다'는 식으로 떠넘기긴다"며 "그럴 때 차단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정말 밤마다 교수님한테 계속 전화해서 '왜 안 오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드블루'(심정지 환자 발생) 때는 간호사들이 심폐소생술을 하게 된다. 그때는 법적인 문제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하고 본다. 주치의가 와서 처치를 시작하면 한숨 돌리지만 법적인 선을 넘은 건 아닌지 하는 걱정과 환자가 살아났다는 안도감이라는 양극단에 서게 된다. 박 간호사는 "그래도 전공의들이 있을 땐 코드블루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등 병원 어디서든 달려오는 발소리가 쿵쾅쿵쾅 났다"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숨 쉬었다.

이에 정부는 27일부터 전국 종합병원과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진료지원 인력 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PA 간호사의 의료행위를 한시적으로 합법화한 것이다. 그러나 현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불법진료에 따른 처벌이 두렵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는 "PA 간호사가 시범사업으로 도입된다고 해도 (소송 위험까지) 면책된다고 볼 순 없다"고 지적했다.

김 간호사는 "우리 업무를 벗어나는 건 안 했으면 좋겠지만 실제 현장에선 부서장인 수간호사가 그날의 공지사항을 전달할 때 '좋게 좋게 하자'는 식으로 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며 "간호협회에서도 간호사들 권리를 끝까지 지키고 우리 업무로 넘어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고선 이런 얘기가 나오니까 뭐가 맞는지 현장은 혼란스럽다"고 하소연했다.

hy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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