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79] 통영 너물비빔밥
정월대보름이면 할머니는 대문 밖에 짚을 깔고 고사리나물, 무나물, 호박나물, 취나물 등 나물을 놓고 그 위에 흰밥을 내놓으셨다. 산골이라 바다 것은 올릴 수 없었다. 이를 물밥이라 했다. 객사나 횡사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잡귀, 잡신을 달래는 밥이다. 이를 객귀밥, 까치밥, 바가지밥, 거리밥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랜만에 물밥을 만났다. 지난 2월 중순 거제시 죽림마을 별신굿에서다. 그런데 할미당 미륵불에게 올린 제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난밤 통영에서 먹었던 ‘너물(나물)’이 올려져 있었다. 죽림마을 할미당은 곤발네 할매가 기도를 드리던 미륵불을 모신 곳이다. 이 할매는 1885년 을유년 대흉년 때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직접 가꾼 수수와 조로 엿을 만들어 먹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 안녕과 풍어를 점지해 주는 마을 신이다. 할미당굿이 끝나자 제주 아내가 먼저 너물을 챙겨 물밥을 만들었다. 바다에서 비명횡사한 잡귀, 잡신에게 주려는 것이다.
너물은 탕국이 자작해야 한다. 여러 너물을 한 그릇에 담아 국과 찬을 겸해 밥 한술 뚝딱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너물을 섞어서 먹으면 너물밥이 된다. 안동이나 진주 헛제삿밥과 비슷하지만 잔치 음식으로도 먹는다. 너물밥 근원을 따지는 것은 어렵다. 다만 통영에서 너물밥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섬과 바다를 아우르는 따뜻한 남쪽이라는 지역성을 꼽을 수 있다. 섬에서 나오는 미나리, 도라지, 고사리, 쑥, 배추, 방풍, 무, 부추 등 육지 것과 갯벌에서 나오는 개조개, 조개, 굴, 미역, 청각, 톳 등 갯것이 만나 너물밥이 된다. 계절에 따라 텃밭과 갯밭에서 쉬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곤발네 할매가 그랬듯이 산 자의 주린 배를 채우는 음식이요, 망자를 위한 제물이다. 별신굿처럼 의례에서는 마을 신은 물론 온갖 잡귀, 잡신에게도 나누어준다. 너물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다. 돈을 주고 사는 대신에 발품과 손맛에 시간을 더해야 한다. 정성이 가득하다. 이보다 귀한 음식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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