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붕의 디지털 신대륙] 디지털 문명 시대 최고 자산은 휴머니티… 100억원보다 귀하다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입력 2024. 2. 28. 03:02 수정 2024. 3. 2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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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곧 권력인 디지털 시대, 대중이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 높아져
이강인 향한 비난, 공감 능력 부족했던 평소 행동이 증폭시켜… 100억 손해
‘휴머니티’라는 기초 자산의 위력 실감… AI 시대에도 ‘인성 천재’가 우선
일러스트=박상훈

이강인 쇼크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 9살이나 형인 주장 손흥민에게 대들다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욕먹을 만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요즘 MZ 세대들에게 나이나 직급을 거스르는 건 큰 잘못도 아니다. 오죽하면 ‘제가요? 이걸요? 왜요?’가 신세대의 상징처럼 농담으로 회자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이가 많다고, 주장이라고 탁구 치는 후배들한테 조금 과한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여론은 중립 정도가 아니라 이강인에 대한 지탄 일색이다. 흥분한 축구 팬들은 심지어 이강인을 광고 모델로 쓴 기업들에 찾아가 악플로 도배해 버렸고, 광고 계약 해지로 이강인이 입은 손해만 1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 화들짝 놀란 이강인이 급히 런던으로 날아가 손흥민에게 사과하고 화해하면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려 사건은 일단락하는 듯했지만 팬들의 분노는 여전히 사그라들 줄 모른다. 왜 이렇게 대중은 이 사건에 예민한 것일까?

그러고 보면 디지털 문명이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은 더욱 높아져만 가고 있다. 디지털 문명이 더 도덕적인 것도 아닌데, 대중이 요구하는 우리 사회 도덕적 잣대는 왜 더 강화되는 걸까? 이강인뿐만이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후보 검증이 진행되는데 그 기준들이 과거에 비해 훨씬 강화되었다. 특히 성희롱이나 차별, 갑질 등 휴머니티(Humanity)에 위배되는 행동이나 발언은 아주 치명적이다. 국민 감정이 이렇다 보니 상대방을 비방할 때도 그 행위의 심각성을 떠나 도덕적으로 조금만 문제 있는 행동을 했다면, 더구나 영상 같은 증거만 있다면 정말 총공세를 펴는 게 요즘 우리나라 정치판의 일상이다. 심지어 있지도 않았던 일을 실제처럼 이야기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그래도 한다. 그만큼 효과가 좋다는 반증이다.

그래픽=박상훈

이강인은 잘못했다. 그런데 요즘 20대들이 어른들한테 당돌하게 대들거나, 조직보다는 개인 위주로 생각하는 건 늘 겪는 일상이다. 이런 MZ의 반응에 화가 난다면 ‘당신은 꼰대’라는 소리까지 듣는 세상으로 바뀐 지 오래다. 작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가 소셜미디어상에서 서로 설전을 벌이다 ‘그러지 말고 우리 UFC 케이지에서 한판 붙자’라고 해서 전 세계가 난리가 난 바 있다. 머스크가 71년생, 저커버그가 84년생이니까 같은 업계 13살 위 형님을 크게 들이받은 셈이다. 그런데 어른한테 대든다고 욕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팬들은 정말 한판 붙으라고 열광했다. 그런데 이강인이 9살 형인 손흥민에게 대든 것은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서 지탄을 받는 중이다. 왜 비슷한 사건인데 이번에는 대중이 쿨하게 넘어가지 못하는 걸까? 본질이 달라서다.

문제의 핵심은 ‘휴머니티(Humanity·인간성)와 공감(sympathy)’이다. 디지털 문명 시대의 가장 큰 자산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심, 그리고 그걸 통해 이룰 수 있는 공감 능력이다. 디지털 문명은 소비자가 곧 권력이다. 식당을 갈 때도 평점을 보고, 물건을 살 때도, 펜션을 찾을 때도, 카페를 고를 때도 리뷰를 먼저 본다. 유튜버도 조회수로 먹고 사는데 곧 ‘공감’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고, 웹툰 작가도 ‘공감’이 되는 실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야말로 공감의 표현인 ‘구독’과 ‘좋아요’가 모든 걸 결정하는 시대가 디지털 문명 시대다. 나이나 학벌, 직급으로는 ‘구독과 좋아요’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상명하복이나 조직 우선의 복종 문화가 수그러든다. 소위 ‘리스펙’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은 실력이다. 그렇다면 실력 있는 이강인도 좀 봐줘야 하는 것 아닐까?

문제는 ‘공감’의 기준이 아주 예민하다는 것이다. 대중의 공감을 사려면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라 마음에 대한 아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일단 평소의 행실이 중요하다. 무조건 선배들한테 복종하는 건 불필요하지만 동료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매우 중요한 공감 덕목이다. 개인 실력이 중요하다지만 축구는 팀 스포츠다. 축구 팬들은 축구에서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안다. 그걸 이끌어내는 게 ‘구독과 좋아요’를 만드는 덕목이고 그걸 해치면 당연히 악플이 붙기 마련이다. 공감 능력은 이 디지털 신대륙에서 살아가는 스타, 아니 모든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기초 자산이다. 머스크와 저커버그는 그 기초 자산이 비슷했지만, 손흥민과 이강인은 이것이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강인에 대한 부정적 자료가 폭주했지만 손흥민은 좋은 인성 자료만 가득했다. 이번 사건만의 잘잘못을 떠나 그간 쌓아 둔 기초 자산이 ‘좋아요’의 향배를 결정한 것이다. 이 자산은 더구나 내 실력에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가 되어 작동한다. 공감을 일으키는 휴머니티가 마이너스라면 곱하기한 금융 자산도 마이너스가 된다. 결국 100억원의 광고 수익도 마이너스로 무너져 내렸다. ‘휴머니티’라는 기초 자산의 엄청난 위력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중이 휴머니티를 중시하는 문화는 세계 어느 곳보다 강력하다.

‘공감’이 배려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거라면 이 자산은 어려서부터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과 애정이 있어야 하고, 실천을 통해 익혀야 하는, 품이 많이 드는 쌓기 어려운 자산이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주식을 선물해 금융자산을 쌓아주라고 조언하는 시대다. ‘따뜻한 배려심으로 공감을 만드는 휴머니티’라는 디지털 문명 시대 최고의 자산은 어떻게 쌓아줘야 할까? 이어령 선생은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공감이 자산인 시대’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축구 천재 이전에 인성 천재가 먼저라는 이야기다. AI 시대라지만 보편적 인류는 휴머니티를 원하고, 휴머니티의 근간은 삶에 투영되는 진정성이다. 우리 아이들 교육에 기술 이전에 ‘공감의 휴머니티’를 어떻게 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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