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의사선생님
국민의 생명권 걸린 문제에
백지화 요구는 설득력 없어
존칭만큼 책임감 필요한 때
검사, 판사, 회계사. 우리나라 직종 중에 끝에 ‘사’자가 붙는 직업을 타인이 부를 땐 보통 변호사님, 검사님처럼 ‘님’자가 따라붙는다. 우리말 사전엔 ‘님’에 대해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거나 ‘씨’보다 높임의 뜻을 나타낸다고 풀이돼 있다.
선생님의 사전적 정의로는 ‘학예가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 ‘성이나 직함 따위에 붙여 남을 높여 이르는 말’ 등이 있다. ‘선생’ 자체가 높임말인데 여기에 ‘님’자를 하나 더 붙였으니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사’자 돌림 중에서도 특히 존경을 받는 직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불리게 된 기원까진 알지 못하나 인간의 생명을 직접 다루는 영역이라는 점이 큰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환자 입장에선 나를 살릴 수도 있는 그분이야말로 ‘하나님’, ‘부처님’, ‘선생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의사선생님은 또 사전의 뜻처럼 실제 많이 배우는 직업이기도 하다. 보통의 대학생보다 긴 6년 의대 과정을 거쳐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의사면허가 생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인턴 1년 과정을 마친 뒤 전공의 시험에 합격해야 하고, 다시 또 레지던트 4년을 하고 나서야 시험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렇게 학식 풍부하고 존경을 받아온 의사선생님들 입에서 요즘 욕설이 쏟아진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 속에 9000명 안팎의 전공의들은 수련과정을 중단하고 아예 병원 밖으로 뛰쳐나왔다.
현재 전공의들을 포함한 선생님들은 향후 의사가 늘어도 성형외과 등 돈을 많이 버는 과목에 몰리고,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 병원 기피 현상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많이 배우신 선생님들의 말대로 의료 정원만 늘려서 이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그래서 정부는 지방 거점국립대 병원 육성과 필수 의료 수가 인상 등의 대책을 함께 내놨다. 그런데도 선생님들은 자신들과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했고 무시당했다며 의대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반대 이유를 들지만, 국민은 결국 힘들게 의대 가고 어렵게 자격증을 따낸 의사들이 밥그릇 지키기에 나선 것으로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부가 의대 증원 확대를 시도할 때마다 선생님들은 번번이 환자를 볼모로 한 단체행동으로 이를 막았다.
2020년 문재인정부 때는 지금보다 훨씬 소수인 매년 400명을 더 뽑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단칼에 거부했다. 당시 선생님들이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좀 더 성의 있게 협상에 임했다면 오늘의 2000명 증원 얘긴 없었을지도 모른다.
의료 공백 문제를 의대 증원만으로 풀긴 어렵지만, 의대 정원을 하나도 늘리지 않고 제도 개선만으로 해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정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제네바 선언 중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약속을 저버리고, ‘동업자를 형제처럼 생각하겠노라’는 약속만 지키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과연 그 호칭이 합당한지 생각하게 한다.
어떤 선생님은 ‘누가 그렇게 불러 달라고 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불릴 자격이 없다고 자인한다면, 지금의 단체행동이 결국 내 밥그릇 때문이라는 걸 시인하는 셈이다. 의대 정원 문제는 결코 의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권이 걸린 문제이기에 밥그릇 싸움으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선생님이란 존칭에 걸맞게 존경을 받기 위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 때다. 그제 신문에 실린, 서울 성모병원의 ‘선애치환’(先愛治患)이라고 쓴 붓글씨 작품 앞을 지나는 병원 관계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떠오른다. 이 글귀처럼 선생님들이 먼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환자의 치료를 생각해 주길 바란다.
엄형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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