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64년 전, 오늘의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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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오늘(28일), 대구의 수성천변에서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 연설이 있었다.
64년 전 오늘, 대구 학생들에 의해 이승만 정권을 몰락시킨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사실 대구는 1956년 선거에서 장면 후보에게 82%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낼 정도로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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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오늘(28일), 대구의 수성천변에서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선거 연설이 있었다. 당시 대구는 서울과 함께 야당의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마침 유세가 열리는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이승만 정권은 대구지역 학생들이 유세장에 몰려갈 것을 우려해 등교할 것을 지시했다. 학교측에서는 임시 시험을 치른다고도 하거나, 영화 관람이나 토끼 사냥을 해야 한다면서 학교에 나오도록 강요했다.
이승만 정권의 등교 강요에 학생들은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면서 항의했다. 유세날인 28일, 학교에 모인 학생들은 당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가두시위에 나섰다. 이날 대구의 8개 학교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고, 경찰은 이들 중 120여 명을 체포했다.
이날 대구 학생들의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 3월 5일과 8일에는 서울과 대전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했고, 10일에는 수원과 충주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시위는 정·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확산됐다. 운명의 3월 15일이 됐다. 마침내 자유당 정권은 최악의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전 국민은 봉기했다. 64년 전 오늘, 대구 학생들에 의해 이승만 정권을 몰락시킨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사실 대구는 1956년 선거에서 장면 후보에게 82%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낼 정도로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그런데 오늘날 대구가 ‘보수의 심장’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대구 민심이 바뀐 것은 1963년 대통령 선거가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민주당 윤보선 후보는 박정희 후보가 남로당원이었다며 색깔론을 제기했는데, 이것이 대구 시민의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박정희에 대한 ‘종북몰이’가 대구 보수화의 원인이 됐다는 것인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80대가 된 대구 학생들의 민주주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승만의 치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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