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맑고 향기로움을 품은 군자 ‘경포’

이상균 입력 2024. 2. 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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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에게 그 원뜻이
잘 전달되고 이로움을 주는
호명이라면 어떻게 불러도
경포에게 원망 들을 일은 없을 것
▲ 이상균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경포와 경포대는 동아시아의 명승으로 칭송받아 왔다. 지역민들에게는 아낌없이 내어주는 군자이고, 호수에 일렁이는 달은 출향민들이 향수에 사무쳐 하는 고향에 홀로 두고 온 어머니다. 경포는 담고있는 심상이 깊고 오묘하다. 근자에 명칭 문제가 화두이다. 어쩌면 벌써 생각해 봤어야 할 문제고, 화두의 시작은 경포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에서일 것이다. 경포는 여러 호명(湖名)이 있고, 모두 전근대 사료에 용례로 등장하며 깊은 상징성이 함의되어 있다. 사료에서 단연 많이 등장하는 호명은 익히 알고 있는 경포·경호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호명은 경포인데, ‘한송정곡’에서다. 다만, 시어로 사용된 경포는 호수인지 경포대를 약칭·대칭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간파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경포대의 명칭이 경포에서 온 것임을 생각한다면 경포는 호명이다. 명확한 용례는 고려 안축의 ‘경포신정기’와 이곡의 ‘동유기’에서다. 모두 호수를 칭하는 경포와 누정을 칭하는 경포대를 구분한다. 경포는 호명이고, 경포대와 상징성을 같이한다. 경포의 ‘포’는 우리말 ‘개’이다. 강·내에 조수가 드나드는 곳이다. 이런 곳에 형성된 호수를 석호라고 하지 않는가. 경포는 석호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지역민들은 자연 섭리를 놓치지 않고 ‘어진-개’라 불렀다. 삼일호·화진호 등은 삼일포·화진포로 더 익숙하다. 포는 석호가 형성되는 수순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포(개)로 배가 드나들면, 그 의미가 포구로 확장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주 만물의 원리를 자연 명칭에 반영한 선조들의 혜안이다.

문헌상 경포를 경호라 칭한 용례는 이곡의 시 ‘강릉 객사의 동헌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가 처음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이곡은 시의 주석에 호명을 경포로 사용했고, ‘동유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경호는 호수 이미지 강조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그가 경포대에 올라 지은 ‘경포대에서 안근재의 시에 차운하다’ 시에서 의도가 좀 더 명확해진다. 이 시에서 당나라 문인 하지장의 고사를 인용한다. 하지장은 사명산에 은거하며 ‘사명광객’이라 자칭하였다. 현종은 그가 은퇴할 때 그의 고향 절강성 회계산 기슭 호수를 하사한다. 그 호수가 ‘경호’이고, ‘감호’ 등의 별칭이 있다. 이곡은 경포를 하지장 경호에 비견한다. 이어 백문보·정몽주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경포를 하지장 경호에 빗대며 치사객으로서의 소망을 노래했다.

물론 시문에 나타나는 경호는 하지장과 무관하게 호수를 강조한 용례도 많다. 경포는 하지장 경호와 많이 비견되며, 경호·감호라는 상징을 부여받는다. 경호는 호수와 하지장 경호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그리고 경포는 각종 지리지에 표기되며, 호명의 전통이 유지된다. ‘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서 경포의 ‘또 다른 이름이 경호’라 밝히고 있어 경포가 원래의 호명이었을 가능성을 더욱 시사한다.

군자호 용례는 이병운·강헌규·송병선 등 조선시대 문인들이 경포 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역민들에게 듣고 적은 내용에 나타난다. 유익함을 내어 주지만 익사와 같은 해악을 끼치지 않는 군자의 덕을 지녔다는 의미로, 지역민이 부르던 ‘어진-개’를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경포호는 심언광·이달·송시열·김정호 등 명망이 있는 인물들도 사용했다. 김정호는 ‘대동지지’·‘여도비지’에서 강문 쪽은 조수가 드나드는 이미지인 ‘포(개)’, 경포대 쪽은 호수의 이미지인 ‘호’를 곁들여 설명하며 경포호라 했다. 호수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하더라도, 호수 하구의 강문은 여전히 포의 현상이 나타났다. 함경남도 광포호(廣浦湖)도 석호로, 포·호를 같이 쓴다. 지금 우리가 호수 명칭을 화두로 끄집어냈듯이 선조들도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포의 호명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대신 자연 섭리를 포괄·복합적으로 담은 경포호라는 명칭을 쓴 것이 아닐까. 선조들의 재치와 명안(名案)이 돋보인다. 그리고 필자의 정황적 주장이긴 하지만, 경포대가 관동팔경 최고의 명소로 입에 오르내리면서 경포호는 ‘경포대가 위치한 호수’라는 의미로도 확산하지 않았을까 한다. 일제강점기 신문에서도 경포호로 쓰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역사 속에서 지명이 수차 변경되는 것은, 문화적 상례이다. 경포의 모든 호명은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연원과 상징이 부여되며 면면히 의미를 이어왔다. 경포와 우리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유익함을 던져주는 것이라면, 과연 호명을 따지는 게 옳은 일인지를 필자부터 반성해 본다. 경포에게나 경포를 향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원뜻이 잘 전달되고 이로움을 주는 호명이라면 어떻게 불러도 경포에게 원망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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