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길진균]끊임없는 대통령들의 ‘선거 개입’ 논란

길진균 논설위원 2024. 2. 2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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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해지는 대통령들의 선거지원
윤 대통령 총선 앞 ‘민생토론회’… 전국 각지서 지역숙원사업 약속
盧 대통령 탄핵소추 헌재 결정… “특정 당 지지 발언은 선거법 위반”
이후 대통령들, ‘말’은 아끼고 ‘행동’ 으로 선거지원 전략
《2000년대 이후 당선된 대통령들은 모두 선거개입 시비에 휘말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에 소추되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크고 작은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말’로 인해 탄핵 사건에 휘말린 후,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여권의 전략이 바뀌었다. 일부 접전 지역구 방문에 머물렀던 대통령의 ‘선거 지원성’ 행보가 문 전 대통령의 재난지원금 지급, 윤석열 대통령의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 등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는 차이도 있다. “정당한 국정 운영”이라는 여당과 “선거 개입”이라는 야당. 선거 앞 대통령과 정부의 ‘선거 중립 의무’ 논란을 짚어봤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은,…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2004년 5월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한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7대 4·15총선을 앞두고 각종 기자회견에서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특히 방송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나온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정말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습니다”라는 발언은 큰 논란이 됐다. 야당은 “대통령이 특정 정당을 위한 불법적 사전 선거운동을 계속해 왔다”며 탄핵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탄핵소추안을 기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은 인정했다. 탄핵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위반’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게 헌재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이후 대통령들은 선거 중립을 지켜 왔을까.

● 尹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 논란

윤 대통령은 올 들어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고 지역 민심을 겨냥한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다. 1월 4일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겸해 시작된 민생토론회는 2월부터 지방으로 무대가 옮겨갔다. 윤 대통령은 설 연휴 직후인 13일 부산을 찾았다. 총선을 57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16일 대전, 21일 울산, 22일 경남, 25일 충남에서 민생토론회를 연이어 열었다. 수도권에서도 10차례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토론회에 참석하면서 해당 지역 전통시장도 5번 방문했다.

부산에서 윤 대통령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을 차례로 언급하며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또 구덕운동장 재개발, 사직야구장 재건축, 센텀2지구 도심융합특구 조성 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여야 후보들의 반응은 바로 엇갈렸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께서 우리 부산을 서울과 함께 양대 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발전의 열쇠라고 보고 계신다”며 ‘대통령님의 부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반면 야당에서는 “승부처를 찾아다니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건 노골적으로 총선에 영향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말’은 자제하되 ‘행동’은 더 강하게

공직선거법 9조 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선거법 9조의 ‘공무원’에는 대통령 등 선출직 공무원은 물론이고 국무총리 등 정무직 공무원도 포함된다고 해석했다. 대통령은 대상이 누구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헌재 결정 이후에도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은 계속 불거졌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이 ‘특정 정당’(열린우리당)을 지칭한 부분을 헌재가 명시적으로 ‘선거법 위반’으로 적시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6년 4·13 20대 총선을 28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붉은 옷을 입고 부산을 방문한 것이 한 예다. 그는 총선 격전지인 부산을 찾아 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둘러봤다. 이보다 6일 전에는 역시 붉은 옷을 입고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방문했다. 당시 청와대는 경제 행보일 뿐 정치적 의미는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으나,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상징색인 붉은 옷을 입고 지방을 연이어 방문했다는 점에서 ‘노골적 선거 지원’이란 논란에 휩싸였다. 박 전 대통령은 붉은 옷을 입고 투표소에 방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말보다 행동’ 전략은 지지층에게 명확한 메시지는 전하면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피해 가기 위한 노림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이 특정 후보나 특정 정당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한 헌재 결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 선거 보름 前 재난지원금 지급 발표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문 전 대통령은 2021년 2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부지를 직접 찾아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이 가덕도를 찾은 시점은 4·7 부산시장 보궐선거 40여 일 전이었다.

문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의 일환으로 2020년 4·15총선을 약 보름 앞두고 ‘100만 원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을 내렸을 때도 선거 개입 논란이 거셌다. 당시 청와대는 “야당 논리대로라면 대통령과 정부는 선거 기간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얘기냐”고 반박했다.

재난지원금 지급 발표를 선거법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정치권 인사도 동의한다.

전직 선관위 고위 간부는 “선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다분했다”며 “선거 중립 의무를 좀 더 엄격하게 고려했다면 선거가 끝난 뒤 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하는 게 옳았다”고 말했다.

● 국정 운영? 선거 개입? 모호한 선거법

전문가들은 여권이 헌재의 결정을 애써 축소 해석하고 있다는 점과 공직선거법 자체가 모호한 것을 문제점으로 들고 있다.

“선거 때라 하여 국정 운영을 중단할 수는 없으나 선거가 임박한 시기(통상 투표일 3개월 전부터)에 ○○○한 행위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므로 공명선거를 위해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선거 이후에 시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정책 발표 또는 지방 행보로 인해 선거 개입 논란이 일 때 선관위는 종종 이 같은 협조 공문을 청와대로 보냈다. 선관위에 따르면 대통령 또는 정부의 정당한 정책 집행이라고 해도 반드시 총선 전에 시행해야 할 만큼 시급하지 않거나, 선거 홍보성 성격이 짙은 행사일 경우 자제해 줄 것으로 요청했다. 헌재 역시 “대통령은 평소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지만 선거에 임박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선관위는 노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 대통령의 지방 행보나 정책 발표에 대해 논란이 일 때마다 “특정 정당이나 선거 관련 발언이 없었기 때문에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선관위의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주문하는 의견도 제기된다. 전직 선관위 고위 관계자는 “‘선거법 위반 소지’라는 선관위의 판단 자체가 선거 민심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여당도 선거 개입 논란을 빚을 수 있는 행보를 자제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전례로 볼 때 선관위가 윤 대통령의 민생토론회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은 작다는 전망이 많다. 그렇지만 민생토론회를 놓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공직선거법 취지와 충돌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매번 논란이 반복되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 논란에 대해 공직선거법 개정 또는 대통령의 당적 이탈 의무 명시 등을 통해 명확히 정리하고 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재는 탄핵소추사건 결정문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선거 중립으로 인해 얻게 될 ‘선거의 공정성’은 매우 크고 중요한 반면에 대통령이 감수해야 할 ‘표현의 자유 제한’은 상당히 한정적”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스스로 선거개입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행보를 자제하는 게 공명선거의 첫걸음일 것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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