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통일 거부 선언’을 생각한다[세계의 눈/오코노기 마사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첫 번째 관점은 핵 억지력이다. 현재 김 위원장은 한반도 유사시 즉시 대응하기 위한 핵전력 강화(화성-17형, 화성-18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각종 단거리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정찰위성, 핵무기 탑재 잠수함 등 개발)와 전쟁 준비 체제 완성에 매진하면서 한반도에 상호 억지 상황이 나타났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 유사시에는 “핵전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을 동원해 남조선의 전 영토를 평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둘째, 김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 이래의 ‘연방제 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양국 관계’ 또는 ‘전쟁 중인 양 교전국 관계’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남북한의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한 기존의 ‘우리 민족 제일주의’는 전술핵무기의 대남 선제 사용이라는 북한 핵 독트린의 신빙성을 의심케 했다. 그것을 ‘우리 국가 제일주의’로 대체하고, 나아가 남한을 굳이 ‘대한민국’으로 정식 호칭했다.
셋째, 김정은 정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제 유지의 관점이다. 1994년 7월 북한 건국의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후계자인 김정일에게 남은 것은 작은 파탄 국가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것은 한국이 민주화를 달성하고 19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시킨 뒤의 일이며,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체제를 전환한 뒤의 일이었다.
또 북한은 1995∼1997년 3년 연속 자연재해를 당해 수십만 명의 국민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틀림없이 북한은 이때 체제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이 선택한 것은 선군 정치와 ‘고난의 행군’이라는 군대를 앞세우는 내부 결속 강화이자 핵무기 개발 추진이었다. 마치 핵무장이 북한의 체제 위기를 해결하는 듯했다.
따라서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이 이를 계기로 남한과 화해나 교류로 갈 것인지, 아니면 남북 분단을 더욱 심화시킬 것인지는 흥미로운 문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딜에 실패한 김정은은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대한 강한 집착이 북한의 개혁 개방과 남북 교류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넷째, 통일 거부 선언이 김정은의 최종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분명 북한의 단호한 태도로 인해 당분간 남북 대화나 협력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거기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한다면 한국을 패싱하고 군비관리(비핵화가 아닌) 협상을 개시할 것이라는 김정은의 기대가 담겨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통일 거부 선언은 북-미 협상에서 한국을 배제하기 위한 전술적 속임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장기적 권력 승계라는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2022년 11월 18일 ‘화성-17형’(ICBM) 발사를 딸 김주애와 함께 시찰한 후 김정은은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나 국가 행사에 주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대외 노선의 탄생은 김정은 이후의 장기적인 후계 체제 마련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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