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가난’에 대한 기만과 낭만 너머의 이야기

한겨레21 입력 2024. 2. 27.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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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봄비][청년 소비 프레임 놀이] ‘MZ 소비 생활’ 못다 한 이야기 ①
영화 <소공녀>(2018)에서 주인공 ‘미소’(이솜)는 집을 포기하더라도 자신의 위스키와 담배 취향을 지키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를 두고 청년 빈곤에 대한 안일한 관점이라는 비판도 있다. CGV 아트하우스 제공

‘우아한 가난’, 그러니까 ‘평소에 아껴 취향에 소비한다’는 설명은 지금 엠제트(MZ) 소비를 설명하는 매력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이기적인 청년의 이미지를 고착하거나 ‘진짜 가난’에 대한 기만과 폭력이 되기도 쉽다. 지난 <한겨레21> 표지이야기(제1499호 ‘20대 소비 리포트, MZ는 무엇으로 사는가’ 참조)에서 이런 정치적 효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을 절감하며, 21 토크(제1500호 ‘MZ라는 이름의 출처’ 참조)에서도 못다 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소비, 세계를 탐색하는 ‘습득’ 실천

MZ 세대가 분수에 맞지 않게 명품을 산다는 비난은 꾸준하다. 하지만 표지이야기 취재로 만난 인터뷰이들은 오히려 명품을 가치 절하했다. “생활과 관련 없는 거, 옷·귀고리·명품 이런 거는 별로 안 사는”(박미리), “명품을 좋아하진 않는데 그런 건(희귀한 게임 아이템) 좀 탐이 나더라고요”(이은빈), “누가 뭐 명품 백을 샀다고 올려도 나는 별로 욕심이 없어서”(이미현), “명품같이 비싼 물건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는 편이라, 평소에 아껴서 이런 것들(캐릭터 굿즈) 사는 데 쓰는 편”(이승연) 등.

‘패밀리레스토랑-백화점’의 시대는 저물고, 바야흐로 ‘오마카세(맡김 차림)-십화점(숫자 십(10)과 백화점을 더한 말)’의 시대다. 고유한 취향이나 진정성이 담긴 스토리 없이 구매하는 명품은 ‘지루한 소비’가 된다. 이는 독일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레크비츠가 말한 ‘큐레이션의 삶’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삶은 주로 대학 졸업자이면서 일상에서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를 선취하는 ‘신중간계급’이 누리는데, 여러 소비 품목을 두고 선택하는 것을 넘어 세계의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조합하는 ‘습득’이 강조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삶에 극단적인 절약과 소비가 모두 나타날 수 있다.

표지이야기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소개됐던 이정화씨는 이 ‘습득’이 맥시멈이었다. 기부와 세액공제라는 두 가치를 잡거나(“옷 같은 건 많이 기부하거든”) 소극적 차원에서라도 정치적 의미를 지향하거나(“자본주의도 좋고 돈도 너무 좋지만 너무 그것만, 그게 전부이고 싶지 않다는 거”) 친환경이라는 윤리적 측면까지(“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그런 것도 관심이 생겨”) 다양한 차원의 소비를 실천했다.

이 소비 실천들은 불안정한 현실 속 ‘자기실현’의 감각으로 이어진다.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후) 내가 나를 알아주게 되니까 (중략) 이제 뭐 살 때도 나를 계속 생각하는 거지. 내가 왜 사고 싶은지, 욕심인지 필요인지, 지금 어떻게 살고, 이걸 사면 내 삶에서 어떻게 쓰일지.” 같은 기사에서 맥시멀리스트로 소개됐던 이미현씨도 소비 품목이 많은 것 이상의 실천 의미가 있었다. “내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게” 현금흐름을 관리하려고 통장을 40개가량 굴리면서, “실물 돈을 만지면서 (내 지출 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가짜돈’까지 구매해 관리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철저한 협상과 계획하에 실현해낸다.

다만 이러한 실천은 언제든 변화 가능(“내 라이프스타일은 항상 변할 수 있잖아”, 이정화)하고 비교 가능(“저렇게 돈을 엄청 많이 버니까 저렇게 사는 거겠지”, 이미현)하기에 불안정이 잠재돼 있다. 이 실천을 할 여력조차 고갈된 청년은 자기실현의 “문화적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여성 청년 ‘꾸밈 소비’는 타인의 시선 탓?

그런데 이렇게 소비를 통한 자기실현의 주체가 ‘여성 MZ’일 때, 우리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소비란 생산을 위한 부수 활동으로만 인정돼왔다. 노동의 보상(‘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재생산(휴식 및 기분 전환), 내수경제 활성화 등의 명목일 때만 정당성을 얻는다. 여기서 노동의 중심 주체는 남성 생계부양자이기에 가계에 기여하지 않는 여성의 소비는 ‘김치녀’ ‘된장녀’처럼 쉽게 허영과 사치라는 낙인이 찍힌다.

특히 여성의 ‘꾸밈 소비’가 그러한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거짓 우아함’ 프레임이 있다. 하지만 여성 인터뷰이들(14명 중 10명)의 소비 품목 중 화장품이나 의류가 언급되더라도, 맥락이 많이 달랐다. 우선 20대 후반 여성들은 “(꾸밈이) 부질없다고 생각”(이정화)해서 절약하고, 자기관리 차원에서도 노동을 뒷받침할 건강이 확보되는 운동에 투자했다. 20대 초중반 여성들은 꾸밈 소비도 중시했지만, 이는 타인의 인정 외에 자기실현 의미가 강했다. 이는 20대 초중반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인정욕구를 위한 소비의 예를 든다면 옷을 구입하는 것”(이필헌), “그 자체(화장)가 나에겐 자존감”(서희원))

그러나 여성의 꾸밈 소비는 남성보다 더욱 복잡하다. 간호조무사인 이은빈씨는 비싼 브랜드 미용실에 가는 것을 스스로 ‘허영’으로 표현했지만, 이는 은빈씨의 ‘비공식적’ 업무 역량과 이어지기도 했다.(“병원 입장에서는 쏟아져나오는 간호조무사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더 어리고 예쁘고 그런 사람들을 뽑고 싶어 하는”) 또 그가 브랜드 미용실에서 얻는 것은 사회적 대우도 있었다.(“웰컴 드링크랑 간식 같은 것도 주고, 두피 진단부터 시작해서 머리 샴푸하면서 마사지도 해주고, 그런 거 한번 갔다 오면 되게 대접받는 기분”) 은빈씨가 경험한 간호조무사를 둘러싼 편견이나 열악한 일터와 상반되는 대우다. 그는 이전 동료들로부터 “가서 간호사 (자격증) 따서 좋은 대우 받아요, 너무 축하해요”라는 말을 듣는 간호대 진학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결국 MZ의 소비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연결된 노동, 젠더, 자아 등을 함께 보지 못하면 ‘거짓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다음 편에는 ‘입시-(병역)-취업 준비-근로’처럼 사회적 욕구의 유예와 맞물리는 청년의 소비 양상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허세’라는 프레임에 대해,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한 “스타벅스가 서민들이 오는 곳은 아니죠”라는 발언과 함께 이야기하려 한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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