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산재 카르텔’ 감사, 다친 노동자 마음만 더 아프게 했다

기자 2024. 2. 2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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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0일 산재보험제도 특정감사 결과 브리핑에서 “노무법인 등을 매개로 한 산재 카르텔 의심 정황, 각종 부정 사례 등을 적발했다”고 말했다.

브리핑 내용은 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각시키는 사례 위주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된 산재 처리기간 장기화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산재보험제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공정하고 신속한 보상을 통한 노동자 권리구제다. 업무상 질병의 산재 승인율은 2021년 63.1%에서 계속 하락해 지난해엔 57.9%였다. 근로복지공단 처분이 심사 청구에서 위법성이 확인돼 취소되는 비율은 2021년 14%, 2022년 14.9%다. 행정소송에서 공단의 실질 패소율은 2021년 31.8%, 2022년 34.4%다. 결국 공단의 처분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속한 보상도 법문에 불과하다. 지난해 업무상 질병 처리 소요기간은 2022년도 182일에 비해 32.5일이 증가한 214.5일이다. 정신질환 산재 판정을 받으려면 최소 205일, 직업성 암은 289일, 난청은 333일을 기다려야 한다. 노동자들이 어렵게 산재 신청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포함하면 1년을 고통 속에 인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부는 일부 사례를 들어 산재보험제도가 문제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사무장 노무법인이나 불법 브로커의 경우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알고도 방치했다면 직무유기고, 몰랐다면 무능한 행정이다. 감사로 적발한 부정수급액 113억원도 지난해 산재보험급여액 7조2489억원의 0.16%에 불과하다.

노동부가 손보겠다고 지목한 질병 추정의 원칙도 실효성이 형해화된 지 오래다. 지난해 전체 근골격계 질환 중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 것은 610건으로 전체의 4.2%에 불과하다.

노동부는 소음성 난청에 대한 과도한 보상도 지목했다. 청구권 소멸시효가 소음작업장을 떠난 날에서 진단일로 바뀐 것, 산재 인정 시 연령별 청력손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소멸시효가 바뀐 것은 노동부와 공단의 행정이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위법하다고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령별 청력손실 정도를 고려하는 것도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수차례 나왔다.

노동부는 장기요양 환자 문제도 부각시키면서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의 부재, 요양 연장을 위한 의료기관 변경 제도 이용, 저조한 집중재활치료 실적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상병의 동일성만 가지고 표준요양기간을 설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구체적 상병 상태·특징·재활복귀 등을 고려해야 하는 산재보험 취지를 몰각한 것이다. 의료기관 변경은 공단의 승인·심사 없이는 불가능한데도 이를 자의적 변경으로 단정했다. 집중재활치료 재해자 비율이 감소하는 것은 제때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산재 처리기간이 장기화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뇌혈관질환 재해자가 현재 78세의 나이에도 월 675만원의 장해급여를 받고 있다”며 과잉보상 문제도 지적했다. 2024년 최고보상기준금액은 1일당 25만3354원이다. 장해 1급의 경우 329일치이므로, 사례로 나온 월 수령액과 비슷하다. 1일 간병비가 20만원에 육박하는 현실에서 사지가 마비된 노동자와 그 가족이 받는 금액으로 과다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노동부 감사는 “조 단위 혈세가 새는 정황”(대통령실)을 확인하는 성과 대신 산재 피해 노동자가 ‘나이롱환자’ ‘카르텔 주범’으로 몰려 마음만 크게 다치는 역효과만 남겼다.

권동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

권동희 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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