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풍경] 자연에 이름 붙이기

한겨레 입력 2024. 2. 27. 19:35 수정 2024. 2. 28.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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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감수성이 없는 필자이지만 중학교(또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김춘수의 시 '꽃'에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얼마 전 분류학의 역사를 다룬 책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학명을 얻었을 때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공룡이라는 이름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메갈로사우루스는 '최초로 명명된 공룡'이 됐고 200년이 지나 한 학술지 사설에까지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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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학명이 붙여진 메갈로사우루스는 도마뱀 머리에 포유류 몸을 합친 것 같은 어색한 모습으로 그려졌다(아래 왼쪽과 가운데). 그 뒤 화석이 많이 발견되고 다른 공룡들의 형태를 참고하면서 지금은 전형적인 수각류 공룡으로 묘사되고 있다(아래 오른쪽). 위키피디아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적 감수성이 없는 필자이지만 중학교(또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김춘수의 시 ‘꽃’에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과학 논문이나 책을 읽다가도 위 구절이 떠오를 때가 가끔 있다. 얼마 전 분류학의 역사를 다룬 책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종 각각에 학명을 붙이고 종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확립하는 과정이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고 논쟁이 치열했음을 알았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에 실린 사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꽃’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꼭 200년 전인 1824년 2월 영국의 신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윌리엄 버클랜드는 존재의 증거라고는 돌이 된 뼈(화석) 몇 점에 지나지 않는 생물종에게 ‘거대한 도마뱀’이란 뜻의 메갈로사우루스(Megalosaurus)라는 이름(학명)을 붙인 논문을 발표했다. 커다란 넓적뼈와 척추뼈, 턱뼈와 이빨 형태로부터 이 생물이 멸종한 대형 파충류라고 본 것이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842년, 영국의 고생물학자 리처드 오언은 메갈로사우루스와 그 뒤 추가된 두 종의 멸종된 파충류가 현존하는 파충류와는 다른 무리로 묶인다며 이들을 공룡(영어로 dinosaur)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분류학에서는 파충강(Reptila) 아래 공룡아강(Dinosauria)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7단계 분류에 따르면(‘계문강목과속종’을 기억할 것이다) 강(綱) 아래가 목(目)이지만, 장차 공룡이 꽤 다양하게 나뉠 것으로 보고 그 사이 단계인 ‘아강’(亞綱)에 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선견지명이다.

학명을 얻었을 때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공룡이라는 이름이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메갈로사우루스는 ‘최초로 명명된 공룡’이 됐고 200년이 지나 한 학술지 사설에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메갈로사우루스는 그렇게 이름이 알려진 공룡은 아니고 대중적 인기도 없다. 필자 역시 메갈로사우루스는 한번도 다뤄본 적이 없고 어떻게 생긴 공룡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처음 보는 유형의 공룡이었다. 너무 이상해서 좀 더 알아보니 1860년대 그린 상상도로 현존 파충류인 도마뱀을 바탕으로 덩치를 키운 것이다. 당시까지 발굴된 뼈만으로는 형태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 뼈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는 다른 공룡들의 화석이 발굴돼 지금 우리가 익숙한 여러 공룡 몸의 구조가 밝혀지고 메갈로사우루스 화석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이족보행을 하는 전형적인 수각류 공룡의 형태로 다시 그려졌다. 몸길이 8미터에 몸무게 1톤으로 추정되는 육식공룡으로 메갈로(megalo)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다만 초거대 수각류인 티라노사우루스(몸무게가 7톤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만일 티라노사우루스보다 뒤에 학명을 지었다면 결코 메갈로사우루스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오늘날 많은 공룡 종들처럼 공룡 마니아를 뺀 대다수는 평생 그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할 것이다. 메갈로사우루스 명명 200주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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