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이라 부르지 말라는 정부

한겨레 2024. 2. 2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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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23년 12월11일(현지시각)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에 탑승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준일 | 뉴스톱 대표

지난 22일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는 일명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논평하면서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에스비에스(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 대해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했다. 방송에서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김건희 특검에 대해 명확한 자기 입장을 밝히시길 바란다”고 말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손형기 위원은 “대통령 영부인에 대해 ‘여사’도 안 붙이고 ‘씨’도 안 붙였는데 이런 것은 진행자가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백선기 위원장은 “대통령 부인에 관련해서는 아무리 야당 인사라고 해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위원 9명 중 ‘문제없음’ 의견을 낸 것은 야권 추천위원 1명뿐이었다고 한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들은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김건희 특검’이라고 말해왔다. ‘김건희 특검(법)’은 일종의 고유명사이자 관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왜 여사라는 존칭을 법안 명칭에 넣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선거방송의 중립성과 여사 호칭 간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법안에 있지도 않은 ‘여사’란 단어를 넣기보다는 법안을 줄여서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특검법’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기왕 선방위가 가이드라인을 줬으니 함부로 존칭과 직함을 생략하는, 예의 없는 언론의 언어를 고쳐보자. 2007년 12월 비비케이(BBK) 특검은 이명박 특검으로도 불렸지만 이젠 ‘이명박 대선 후보님 특검’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다. 2016년 11월 국정농단 특검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으로도 불렸는데, 앞으로는 ‘박근혜 대통령님-최순실 게이트 특검’으로 표기하도록 하자. 윤석열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님 정부, 조국신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님 신당, 장제원 불출마는 장제원 의원님 불출마, 김종인 매직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님의 마술로 교체해야 한다.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한국 사회가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님을 방증하는 사례다. 초기 자유민주주의 역사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확보하는 투쟁의 역사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표현의 자유를 박탈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핵심적인 인권의 하나로 여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표현의 자유도 일부 제한될 수 있다고 원칙이 수정되었다. 1919년 미국의 홈스 대법관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을 판례로 제시했다. 언론과 출판이 국가 기밀을 누설하거나 타인의 명예 혹은 사생활을 침해하려는 경우, 언론의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은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 행사에 대한 사후 처벌을 위한 원칙이지만 일상생활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많이 쓰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여한 최근 행사에서 소위 세번의 ‘입틀막’ 사건이 발생했다. 국회의원과 카이스트 졸업생 그리고 의사가 윤 대통령 앞에서 본인의 주장을 말하려 하자 대통령 경호실 직원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끌어낸 것이다. 경호실은 대통령 경호를 위한 부득이한 조치고 매뉴얼에 따른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그들의 외침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말’이라는 무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호실은 대통령의 귀를 경호한 셈이 됐다. ‘김건희 특검법’이란 표현에 대한 선방위의 규제도 마찬가지다. 설령 ‘김건희 특검법’이란 표현이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 표현이 선거 중립을 위배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선방위 위원들은 선거의 중립을 지킨 것이 아니라 김건희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의 심기를 지킨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이 이 사안에 침묵하고 있으며 어떤 시정 조치도 지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인이 직접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임명한 사람들로 인해 기본권이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다. 지난해 미국 의회 연설 43분간 46번이나 자유를 외친,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대통령이라면 더욱 그렇다. 가짜 자유민주주의자의 특징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거다. 3연속 입틀막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 표기를 강요하는 윤석열 정부에 묻는다. 당신들은 자유민주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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