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정부는 의사 못 이긴다?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2. 27. 17: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몇 차례의 의정 갈등 국면에서 의사들이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핵은 보유하는 것만으로 위협인데, 의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파업한다.

무원칙한 타협론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든 것처럼, 무책임한 양비론이 의사가 정부를 이기는 희한한 나라를 만들었다.

'그래서 전쟁하자는 얘기냐'는 겁박에 질려 북핵을 이고 살게 된 것처럼 영영 의사 기득권을 이고 살아야 한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도전에 임해서
공공 이익을 정부가 판단하고
그 판단을 실행할 수 있는 것
이 원칙을 지켜야 정상국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몇 차례의 의정 갈등 국면에서 의사들이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파업이 핵처럼 '비대칭적'이기 때문이다. 핵은 보유하는 것만으로 위협인데, 의사들은 몇 년에 한 번씩 파업한다. 그때마다 의사가 이겼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한국과 주변국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경고와 제재를 언급하지만 매번 엄포에 그치고 말았다. 초기의 격앙이 가라앉으면 '그래도 전쟁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타협론이 슬그머니 부상한다. 그런 과정을 몇십 년 거치면서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고 이제는 북과 싸우려야 싸울 수도 없다.

전공의들의 현장 이탈과 거의 동시에 '1000명 증원 선에서 타협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됐다. 그들은 세상에 자신들만 온건하고 사려 깊은 사고를 하는 듯이 의사들과 정부를 동시에 꾸짖고 있다. 그 훈수는 파업 강도에 반비례해 700명, 500명, 350명으로 낮춰지면서 정부의 출구전략을 압박할 것이다. 무원칙한 타협론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든 것처럼, 무책임한 양비론이 의사가 정부를 이기는 희한한 나라를 만들었다.

'의사공화국'은 대한민국의 공화(共和)를 위협한다. 공적 이익과 공동체의 안녕을 정통성 있는 정부가 법에 따라 추구하는 체제가 공화다. 여기에는 공공재의 수급 결정권도 포함된다. 의료라는 공공재 공급을 이해당사자인 의사들이 결정하고 정부의 개입 시도를 꺾어버린다면 그것은 공화가 아니다. 오히려 귀족정에 가까울 것이다. 대한민국은 의사 귀족이 지배하는 나라인가.

2000명이라는 숫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의대 규모는 인구구조와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늘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공공이 필요로 할 때 숫자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판단은 정부가 하는 것이고 판단이 서면 실행돼야 한다. 이 원칙이 무너지면 국가는 껍데기가 된다. 누구는 북핵 국면에 '네가 죽어도 싸우자 할 것인가' 물은 것처럼 '네 가족이 아파도 원칙인가' 묻는다. 그 질문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질문이 못된다. 누군가는 원칙을 따져야 세상은 정상에 가까워진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국민 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주로 설명한다. 눈에 보이는 효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몇 명까지 늘려야 할까요'라는 질문에 나는 숫자를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나름 확신하는 기준은 있다. '이공계 주요 학과 입학 성적이 의대보다 높아질 때까지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2000명 증원도 부족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1000명으로는 의대의 '과도 매력'을 충분히 낮출 수 없고 인센티브는 더 왜곡될 위험이 있다.

1992학년도에 고교 동창 중 이과 1등은 서울대 기계공학과, 2등은 서울 의대에 갔다. 누가 더 인생에 만족하고 살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1등이 공대에 가던 시절이 대한민국에는 좋았다. 그 인재들이 반도체 1등, 조선 1등을 만들었다. 물리·화학에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인이 여럿 나오고 있다. 그때도 의사는 충분히 엘리트였다.

이런 인재 분산은 왜곡된 인센티브 시스템에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의사 희귀 현상과 독과점 부작용을 부른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는 것이 지금 국가가 할 일이다. 소요가 두려워 포기한다면 정상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전쟁하자는 얘기냐'는 겁박에 질려 북핵을 이고 살게 된 것처럼 영영 의사 기득권을 이고 살아야 한다.

[노원명 사회부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