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포스텍 교수 "매그니피센트7도 대학밸리서 태동···MIT처럼 혁신 생태계 키워야"
포스텍 1기 수석졸업후 美서 8년간 연구
모교 부임후 대학원생 대상 벤처 교육
창업 생태계 키우고 동문 네트워크 구축
포스코, 벤처 인프라 등에 4000억 투자
2030년까지 유니콘기업 15개 육성 기대
2차전지·수소 등 신산업과 상생 효과도
“미국 스탠퍼드대와 MIT처럼 포항공대(포스텍),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국내 대학도 글로벌 벤처를 키워야 합니다. 현재 포스텍·포스코·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이 포스코보다 더 큰 기업을 만들기 위해 혁신 벤처·스타트업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박성진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 겸 포스코홀딩스 자문역은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빌딩 내 포스코기술투자 사장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포항에서부터 산학연이 협력하는 혁신 생태계 모델을 만들어 전국으로 확산하면 저성장, 저출생, 지방 소멸 위기에도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수를 휴직하고 2019년 포스코의 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 산학연협력담당(전무)을 맡아 미래 먹거리 발굴과 벤처·스타트업 육성에 매진했다. 올 1월 1일 포스코기술투자 사장으로 부임했으나 교육부의 ‘교수, 기업 등기이사 겸직 금지’ 조항에 따라 포스코홀딩스 자문역이 됐다.
그는 두 차례 총 6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지금 도전 정신, 모험 정신으로 상징되는 기업가정신을 불러 일으키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산학연이 어우러져 20~30대 젊은이들에게 집중 투자해 수많은 글로벌 벤처가 나올 수 있도록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경우 스탠퍼드대·버클리대 등이, 매사추세츠 보스턴 바이오밸리는 하버드대·MIT 등이, 노스캐롤라이나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는 듀크대·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노스캐롤라이나대가 중심 역할을 한다. 당연히 교수·대학원생·학생·졸업생의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글로벌 인재도 몰려든다. 대기업도 높은 관심을 갖고 투자한다. 벤처캐피털(VC) 역시 마중물 역할은 하는 것은 물론 스케일업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글로벌 빅테크인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알파벳)·아마존·테슬라·메타·엔비디아도 여기에서 나왔다. 이들은 서부영화의 제목을 따 혁신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매그니피센트 7’으로 불린다. 박 교수는 “이들은 모두 대학 주변 혁신 밸리에서 나왔다”며 “MIT와 스탠퍼드대 등은 동문 기업들의 시가총액만 각각 수천조 원에 달할 정도”라고 전했다. 미국이 유럽·일본 등에 비해 경제성장을 더 할 수 있는 배경에는 혁신 생태계를 더 잘 갖춘 게 한몫했다는 것이다. 그는 휴대폰 CDMA(코드 분할 다중 접속 방식) 원천 특허가 있는 미국 퀄컴이 연쇄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며 샌디에이고 인구(200만 명)의 20%가 늘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캐나다 토론토의 경우 인공지능(AI)의 대가인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가 있어 200개 이상의 연구 센터를 유치했다고 했다.
포스텍 1기(1987년 입학) 수석 졸업생인 박 교수는 모교에서 석·박사까지 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원과 미시시피주립대 연구교수로 8년간 근무하며 혁신 생태계의 저력을 봤다. 그는 2001년 한 대기업에서 전문 연구 요원을 하며 분말 사출성형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창업했으나 시장이 좁아 미국으로 진출했다. “온도·압력 예측 시뮬레이션을 통해 공정의 효율화를 꾀하는 프로그램인데 정작 미국에서도 시장이 넓지가 않더라고요. 아이도 있는데 6개월가량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국내 제조·군수·의료기기 시장을 개척해 재기했지만 당시 ‘창업의 길이 참 고독하고 힘들다’고 느꼈죠.”
2011년 모교 교수로 부임한 그는 동문 최고경영자(CEO)와 VC 대표 등을 초청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벤처 교육에 나섰다. 학부생에 대해서도 수시로 상담을 통해 진로 지도를 하며 창업 등 도전 정신을 북돋았다. 이 과정에서 산학처장, 포스텍기술지주 대표 등을 맡아 창업 생태계를 키웠고 외부의 동문 네트워크를 모으는 데도 매진했다. 그는 “좋은 논문도 써야 하지만 ‘어떻게 사업화를 통해 기업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며 “미국처럼 교수들이 제자들과 함께 다양한 창업을 시도하는 문화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MIT의 로버트(밥) 랭어 교수처럼 제자들에게 약 50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하도록 하고 본인은 기술·경영 자문을 하며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례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랭어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게임 체인저였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내놓은 모더나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박 교수는 2011년 포스코가 사회 환원 차원에서 시작한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아이디어 마켓 플레이스)을 포스코의 사업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2020년부터 서울·포항·광양에 순차적으로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창업 공간인 ‘체인지업 그라운드’를 열어 150여 개(졸업사 40개 포함)의 벤처·스타트업을 입주시켰다. 체인지업 그라운드는 연구·실험 장비가 기존 창업 공간 중 매우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해 초에는 미국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 ‘체인지업 그라운드 실리콘밸리’를 열었다. 특히 포스텍 내 RIST에 혁신 제조 인큐베이팅 센터도 열도록 요청해 혁신 제조 벤처·스타트업 유치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동안 포스코그룹이 벤처·스타트업과 인프라 투자에 쓴 돈은 약 4000억 원으로 이 돈을 바탕으로 약 2조 7000억 원의 펀드가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약 1조 3000억 원이 1500곳(이 중 국내 400개 사에 80% 투자)에 투자돼 엄청난 승수효과를 일으켰다. 2030년까지 정보기술(IT)·바이오 등 유니콘(조 단위 기업가치 기업) 15개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포스코 입장에서도 2차전지 및 친환경 미래 소재, 수소 등 신산업을 키우는 입장에서 상생 효과가 기대된다.
그는 “산학연이 어우러져 ‘딥테크(근본적인 기술 혁신 기업)’를 육성한다는 소문이 나며 서울에서 창업을 준비하던 포스텍 동문이나 수도권에 공장을 지으려던 벤처기업들이 포항으로 본사를 옮기기도 한다”고 전했다. 지방의 공동화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서울의 인재와 기업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만약 지방자치단체부터 신생아를 대상으로 DNA 검사에 나서 빅데이터를 쌓으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건강 관리, 식습관, 영양소, 운동, 개인 특성 분석이 가능하고 다양한 바이오벤처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현장 연구자들의 사기가 적지 않게 꺾였다”면서도 “이런 때일수록 포스텍은 물론 서울대·KAIST 등 주요 대학의 박사들(인문학 제외)이 미국처럼 약 30%만 창업해도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특히 최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방침으로 인한 이공계 후폭풍 우려에 대해서도 이공계에 대한 지원 확대와 함께 의대와 이공대와의 융합 촉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의 공대에서 의대를 신설해 첨단 바이오를 키우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포스텍 연구자들이 창업하고 포스코 전문가들이 경영을 맡아 벤처·스타트업의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미국처럼 기업의 인재가 대학에서 교수를 겸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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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부산 △해운대고 △포스텍 기계공학 학·석·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원, 미시시피주립대 연구교수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 △포스텍 산학협력단 연구부처장, 기술사업화센터장, 창업보육센터장, 산학처장, 포스텍기술지주 대표 △포스코홀딩스 산학연협력 담당(전무) △포스코기술투자 사장 △포스텍 교수 겸 포스코홀딩스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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