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아기, 병원서 영양실조 사망…먹을 게 동물 사료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에 극심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구호품 차량에 대한 공격으로 식량 공급이 끊긴 가운데 가자지구 북부에선 생후 두 달 된 아기가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지난 25일(현지시각) 마무드 파투라는 이름의 생후 2개월 아기가 가자지구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에서 급성 영양실조로 23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파투는 숨을 헐떡이는 상태로 병원 중환자실에 도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고 알려졌다. 병원 관계자는 알자지라에 “영아를 위한 분유가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동난 탓에 아기가 수일 동안 분유를 전혀 먹지 못했다”고 전했다.
창백한 신생아…분유가 없다
가자지구에선 파투뿐 아니라 수많은 영유아가 영양실조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카말 아드완 병원의 후삼 아부 사피야 병원장은 알자지라에 “많은 아이들, 특히 신생아들의 사망을 목격했다”면서 “불행히도 지난 몇 주 동안에만 여러 아이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산모의 영양실조로 인해 신생아들도 허약하고 창백한 경우가 눈에 띄게 많다. 적절한 지원이 긴급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더 많은 상실과 더 많은 영양실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래도 극심했던 식량난은 구호 차량 이동이 멈추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는 가자지구 북부 지역에 대한 식량 공급이 지난 23일 이후 완전히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달 초 가자지구 중심부에서 제빵에 필요한 밀가루 등 필수 구호 식량을 싣고 가자지구 북부로 향하던 유엔의 식량 호송 차량이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는 등 긴급 구호 차량을 향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자 세계식량계획(WFP) 등 구호 단체들이 안전을 위해 식량 이송을 일시 중단했다고 한다.
세계식량계획은 지난 18일 가자지구 북부에 대한 식량 수송을 재개하려 했지만 이틀 뒤인 20일 이스라엘군이 식량 지원을 기다리던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최소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자 계획을 철회했다.
이스라엘은 구호 물품 대부분이 하마스에 흘러간다고 주장하며 차량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 유엔은 이스라엘이 올해 1월1일부터 2월15일까지 77건의 인도주의 지원 가운데 단 12건만 승인했다고 밝혔다.
썩은 옥수수, 나뭇잎밖엔 먹을 게 없는 곳
기근이 이어지자 일부 주민들이 가축으로 기르던 말을 도살해 식량으로 삼거나 썩은 옥수수, 동물 사료, 나뭇잎 등을 먹어 가며 간신히 목숨을 이어 가고 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과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이 24일 보도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어린이와 주민들이 23일 “우리는 공습 때문이 아니라 굶주림 때문에 죽고 있다”, “기근이 우리 살을 갉아먹는다” 등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HRW)는 26일 이스라엘 정부가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명령을 어기고 가자지구로 향하는 인도주의적 식량 지원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앞서 유엔아동기금(UNICEF)과 세계보건기구(WHO) 등 기구들도 식량난과 전염병 등으로 가자지구 내 아동 사망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니세프의 인도주의 활동 담당 부국장인 테드 차이반은 최근 낸 성명에서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 가자지구 내 어린이 사망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지금 분쟁이 끝나지 않는다면 어린이들의 영양 상태가 계속해서 나빠질 것이고, 이는 우리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망 또는 건강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은 가자지구 북부의 2살 미만 어린이의 15% 이상이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이며, 3%는 생명이 위태로운 수준의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혔다. 남부의 경우에도 2살 미만 어린이의 5%가 심각한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걸로 조사됐다. 전쟁 전에는 가자지구의 5살 미만 어린이 가운데 0.8%만이 심각한 수준의 영양실조를 겪은 것과 대비된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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