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암·뇌졸중… 주목받는 '고압산소치료'

이병문 매경헬스 기자(leemoon@mk.co.kr) 2024. 2. 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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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공간에 2기압이상 압력
100% 산소 흡입시켜 치료
혈장내 산소농도 평상시 10배
수술후 상처치료 등에 큰 효과
항노화·만성질환 치료도 활용
아이벡스, 고압산소치료기 국산화
베트남 등 해외 시장 공략 속도
고압 산소 치료는 몸 안의 산소 농도를 평소보다 10배 이상 증가시켜 손상된 환부를 치유하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이벡스

"고압 산소 치료는 아침에 일어나 좋은 커피를 드립해 한잔 마시면, 잠시 후 온몸에 퍼지며 기분 전환과 함께 활기를 선물하는 '카페인의 마술'과 같습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피부가 검게 되고 피로와 무력감으로 기운이 없었지만, 고압 산소 치료 체임버(chamber)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내 몸 안의 세포가 살아나고 피부도 활기를 되찾는 느낌입니다."

이는 60대 말기 암 환자 A씨가 몇 개월 전 죽음을 앞두고 윤석호 아이벡스메디칼시스템즈 대표에게 보낸 문자다. A씨 남편은 "암 환자가 하루를 살아도 살고 싶은 상태에서 사는 게 중요하다. 처음 암이 발병했을 때 고압 산소 치료를 받았으면 좋았을 걸 아쉽다"며 "다른 암 환자들에게 고압 산소 치료의 효과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2011년 창업한 아이벡스(ibex)는 국내 고압 산소 치료기 분야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회사로, 수입에 의존하던 고압 산소 치료기 국산화와 함께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부작용 예방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벡스는 지난해 6월 기술보증기금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았고 의료기기종합지원센터(원주)에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입주했다.

고압 산소 치료(Hyperbaric Oxygen Therapy·HBOT)는 2기압 이상 압력을 가하는 밀폐된 공간(체임버)에서 100% 산소를 흡입하게 해 혈장 내 산소 농도를 평상시의 10배 이상 증가시켜 손상된 환부를 치유한다. 고압 환경에서 공기 내 산소가 체액에 잘 용해되는 원리를 이용한 치료법이다. 산소 공급이 필요한 암, 뇌졸중이나 외상성 뇌손상, 족부질환, 일산화탄소 중독, 화상,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수술 후 상처 치료, 돌발성 난청 등 다양한 질환에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최근에는 줄기 세포 치료, 항노화, 만성질환에도 접목돼 피부·성형외과, 피트니스 등에서도 고압 산소 치료기가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윤석호 대표는 "잘 낫지 않는 상처들은 대부분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공통된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고농도 산소를 조직 내로 공급해 쉽게 회복되지 않는 상처나 조직의 세포를 활성화시켜 치료를 돕고 괴사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고압 산소 치료는 별도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산소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부유층은 개별적으로 구입해 집 안에서 사용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고압 산소 치료에 대한 인식이 낮다. 고압의학회나 응급의학과, 일부 외과 이외의 의료진조차 잘 모른다. 암 환자들이 고압 산소 치료를 문의해도 주로 냉랭한 답변만 듣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고압 산소 치료기를 산소캡슐과 동일한 기기로 오해하고 있다. 두 제품은 효능, 기능, 제조 규격에서 완전히 다르다.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한 고압 산소 치료 사이트도 미국은 약 1700개, 일본은 약 700개 이상 존재하지만, 우리나라는 약 30개 남짓에 불과하다. 주요 선진국은 고압 산소 치료가 상처 치료에 활용되는 비율이 전체의 70%를 넘고 보험을 적용해주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건강보험 적용 질환이 16개에 그치고 있다. 보험수가는 미국·일본에 비해 턱없이 낮지만 그래도 2016년 이후 꾸준히 올라 현재 회당 약 17만원 안팎이며 이 중 환자가 30~40%를 부담하고 있다.

고압 산소 치료는 의학적으로 2기압(ATA)이 넘어야 효과가 있다. 2기압은 수심 10m 압력이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구 대기는 1기압이며 수심이 1m 내려갈 때마다 0.1기압씩 올라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기압 이상만 효과를 인정하고 2기압 이하는 질환 치료에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일본은 1.5기압 이하를 의료기기에서 제외했다.

각국이 고압 산소 치료의 '의학적 효과'를 강조하는 것은 인구 고령화와 100세 시대를 맞아 활짝 열린 다양한 질환의 치료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고압 산소 치료가 줄기세포의 증식과 분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혀져 주목받고 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연구팀은 단 3개월간의 고압 산소 치료로 텔로미어(세포 수명 결정) 길이가 최대 20% 증가하고, 노화 세포가 약 37%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환부를 도려내고 근치(광범위)절제술을 해왔던 현대의학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당뇨병성 족부궤양(당뇨 합병증으로 발 조직 괴사)을 예로 들면, 우리나라는 악화 정도에 따라 와그너 0~5등급으로 나뉘는데 3등급부터 다리를 절단하기 시작한다.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건보 적용은 발이 썩어서 뼈가 보이는 3등급부터 해준다. 건보 적용 기간도 한번 시작하면 14일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의료진과 환자는 족부궤양은 초기 0~2등급부터 고압 산소 치료를 하면 절단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당뇨병학회는 2018년 고압 산소 치료가 당뇨병성 발궤양 환자의 절단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미국은 당뇨병이 아니라도 상처가 잘 낫지 않으면 산소 공급 부족에 따른 '문제성 상처(problem wounds)'로 보고 보험을 적용해주고 있다.

고압 산소 치료의 효과를 체감한 국내 족부 환자들은 '다리 절단'을 막으려고 비급여 부담을 하더라도 원정 치료를 마다하지 않고, 일부 환자는 자비로 직접 구매해 사용하기도 한다.

고압 산소 치료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국산화에 성공한 우리나라에 관심이 높다. 대한고압의학회와 베트남고압의학회가 지난해 '아시안고압의학회'를 설립하자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약 40년간 의료기기 업계에 종사한 박현구 전 지멘스헬스케어코리아 대표는 최근 아이벡스에 합류(직책 부사장)해 고압 산소 치료기 수출 지원에 나섰다. 박현구 부사장은 "아이벡스는 웰에이징 및 케어 분야에서 독보적인 제품력, 글로벌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를 비롯해 인도, 대만 등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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