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25년 걸린 '문신', 불친절하기로 마음먹은 작품"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이번 작품이 '필생의 역작'이라는 표현은 수긍이 가요. 그만큼 모든 힘을 기울여서 노력 끝에 얻어낸 작품이니까요."
집필부터 탈고까지 25년이 걸린 장편소설 '문신'을 완간한 소설가 윤흥길(82)이 "쓰다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을 정도로 악전고투를 했다"고 말했다.
27일 장편소설 '문신'(전5권) 완간을 기념해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윤 작가는 "소설 집필 막박지에는 너무 건강이 나빠져서 작품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이 있었다"며 버텨온 지난한 시간을 회고했다.
소설 '문신'은 윤 작가의 건강 문제도 있었지만 여러 불운이 겹치면서 완간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89년 첫 연재를 시작한 문예지가 갑작스럽게 폐간됐고 이후 두번째 연재를 진행했던 문예지도 폐간되면서 소설 완성에 걸림돌이 됐다. 이후 2018년 1~3권을 출간했지만 건강이 악화돼 5년 뒤에야 4, 5권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문신'을 처음 집필하게 된 계기는 "선배 작가인 박경리 때문이었다."
그는 "박경리 선생님이 만날 때마다 저보고 큰 작품을 써야한다고 했다"면서 "큰 작품을 '토지' 같은 대하소설로 생각하고 아주 일찌감치 대작을 구상했고 지금 나온 '문신'이 (당시 구상에서) 1부였고 '낫'이 2부, 나머지 3부는 사할린 현지를 취재해서 쓸 계획이었다"고 말다.
다만 2005년 '낫'이 단권의 장편소설로 출간되고부터 계획이 깨졌다. 이후 박경리 작가를 찾은 윤 작가는 "도대체 왜 큰 작품을 쓰라고 하셨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큰 작품은 긴 작품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인간이 사는 사회에 대해서 깊은 애정을 갖고 통찰력으로 진실을 바라보는 그런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집필 방향을 바꿨다.
윤 작가는 "'중하소설'이라는 신조어로 내 작품을 부르고 싶다"며 "(대하소설을 생각했으나) 줄어들어 5권이 됐으니 중하소설이 딱 어울리는 말"이라고 말했다.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징용이 한창인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혼돈으로 가득한 폭력적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통과해나간 다양한 인물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려냈다.
제목인 '문신'은 전쟁에 나갈 때 반드시 살아서 가족들에게 돌아오고 싶다는, 죽을 경우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 풍습에서 가져왔다.
윤 작가는 "6·25 당시 동네 형들이 위병 되기 직전에 팔뚝이나 어깨에 문신을 새기는 걸 자주 봤다. 당시엔 저 형들이 왜 저럴까 의문을 가졌는데 그게 부병자자의 일환이라는 걸 알게 됐다"며 "'부병자자 풍습'과 '밟아도 아리랑'이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설에 대해 윤 작가는 "독자들에게 불친절하기로 마음먹고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판소리의 율조를 흉내내기 위해 문장의 조사(토씨)를 생략했고 문장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어순을 바꾸기도 했다. 소설 속 지문에는 표준어이지만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고 대화문은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윤 작가는 "전에는 최소한 독자들의 편에서 가독성을 생각해서 작품을 썼다"며 "이제 나이도 많고 앞으로 작품을 많이 쓸 기회도 없고 하니 마음먹고 불친절하게 썼다. 그게 나에겐 특색이기 떄문에 의미있는 작업이었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요즘 출판계 트렌드와 맞지 않는 "불친절한" 소설을 출간한 것에 대해 윤 작가는 "문학적 경향이 패션화되는 것에 굉장히 반대하는 입장"임을 드러냈다. 그는 "문학적 경향이 한여름에 검정 옷 일색으로 입는 현상처럼 된다면 그건 한 나라의 불행"이라며 "작가 개인의 성향, 문학관이 다르다면 백인백색의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학작품이 골고루 나오고 골고루 읽힐 때 그 나라의 문학 풍토가 풍요해지고 큰 수확을 거두게 된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문신'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윤흥길은 여전히 소설과 뗄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스스로를 "소설을 써서 창작욕을 충족시켜야만 연명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그는 "한 작품을 매번 끝낼 때마다 원고 말미에 끝 자를 집어넣는 그 순간이 작가한테는 가장 흥분되고 행복하고 또 떨리는 시간이다. 그때가 창작의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이다"라고 말했다.
"이 작품이 '필생의 역작'이라고 스스로 믿으면서도 그걸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제 나이가 82세인데 앞으로 써야할 장편을 지금 구상 중입니다. 다음 작품을 빼놓고는 현재까지 '문신'이 필생의 역작이라고 자신해요."
☞공감언론 뉴시스 shin2r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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