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카게에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 <오사카 파노라마展> 세종문화회관서 열려
후지시로 세이지 “이번 전시가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오사카>
그림자 회화(카게에) 거장으로 불리는 일본 작가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후지시로는 올해 100세를 맞는 일본 현역 작가다. 그간 모든 인류가 이 땅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메시지를 담아 작업해 왔다. 국내에서는 그룹 ‘동방신기’ 멤버 유노윤호가 영감의 원천으로 꼽았던 그림자 회화(카게에)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작가 스스로 ”이번 한국전에 가장 의미를 두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고 밝힌 이번 국내전에서는 그의 한 세기에 걸친 빛과 그림자 파노라마를 선보인다. 특히, 조선 설화를 다시 읽고 재제작한 <선녀와 나무꾼> 작품 시리즈 14점과 6m가 넘는 초대형 작품을 비롯한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후지시로는 이번 한국 전시를 앞두고 열흘에 걸쳐 <선녀와 나무꾼> 열두 작품을 새로이 제작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1958년에 다섯 작품을 제작하고 1973년에도 이 작품을 동화로 엮어 발행했는데 그 당시는 후지시로가 30대로 왕성히 작업했던 전성기였으나 일부 원화들이 작품 촬영 등을 계기로 유실됐다. 선녀와 나무꾼도 원화가 남아 있지 않아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12점을 추가로 제작해 완성한 것.
1948년부터 쿠라시노테쵸우에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가 동화로 소개됐다. 처음에는 모노크롬 작품으로 실리다 1974년부터 컬러로 연재하기 시작한 작품들은 1988년까지 40년간 220여 편에 이른다. 이 카게에 동화 인기로 당시 구독자 10만을 넘는 기록을 달성했으며. 1973년에는 잡지에 실린 카게에 동화를 모아 「お母さんが読んで聞かせるお話_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 두 권으로 삶의 수첩사에서 출판했다.
이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조선의 설화 두 편이 실려 있다. A권에는 동물의 보은을 담은 내용이자 개와 고양이의 사이가 멀어진 유래가 담긴 [개와 고양이와 구슬_1962년]을 B권에는 [선녀와 나무꾼_1958년]을 소개했다. 후지시로가 카게에로 화폭에 담은 [선녀와 나무꾼], [개와 고양이와 구슬]은「鹿からもらったお嫁さん_사슴이 맺어준 색시」「竜王国へ行ったおじいさん_용궁으로 간 할아버지」로 제목을 붙여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어느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채 그림만 그렸다. 오오카야마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이후에도 그랬다. 그런 그의 모습을 걱정한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했다. “이렇게 그림만 그려도 될까요?” 그러자 선생님은 ”후지시로는 그린 그림을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즐거워하고, 잘 웃기도 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라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모더니즘으로 이끈 후지시로의 스승들
후지시로는 게이오 보통부에서 게이오 대학 경제학부 예과에 입학했다. 입학 후 ‘팔레트 클럽’이라는 그림 동아리에 들어갔다. 팔레트 클럽에서 1년 선배인 이나무라 다츠하루(稲村立春)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 시절 파리 유학에서 돌아온 화가 이노쿠마 겐이치로(猪熊弦一郎)와 와키타 가즈(脇田和), 고이소 료헤이(小磯良平) 등 젊은 화가들은 신제작협회라는 미술단체를 만들었다. 이나무라는 이노쿠마에게 후지시로의 그림을 보여주며 “후지시로가 더 잘 그려요. 선생님, 한 번 보세요. 굉장하지요. 그리고는 인형극 이야기도 하며 후지시로가 만든 인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17, 18살의 후지시로는 이노쿠마와 와키다를 스승으로 삼았다. 이노쿠마에게서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과 참신한 색감을, 와키타에게서는 순수함과 부드러움을 배웠고 그의 화풍은 단번에 사실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 거듭났다.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돌아왔던 이나무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전쟁이 끝난 후 후지시로는 이제야 이 평화로움 속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전쟁 중에는 배급이 돼 쉽게 구할 수 있던 물감을 전후에는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빛과 그림자만 있으면 가능한 카게에가 시작됐다.
1947년 종전 후 대학을 졸업한 후지시로가 입사한 첫 직장은 영화배급사였다. 회사 일도 해가면서 그다음 해에는 쿠라시노테쵸우(暮しの手帖_삶의 수첩)이라는 여성지에 카게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때 지면으로 처음 실려 세상에 공개된 게 [완두콩 다섯 알]이다. 이땐 물자 부족으로 철사나 굴러다니는 물건을 이용해 카게에를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초토화가 된 도쿄에서 구할 수 있던 것은 골판지나 전구 따위가 전부였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일본은 여전히 정전이 잦았다. 그는 카게에를 제작하며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찾았다. 그는 10대에 이미 일본의 독립미술협회전, 국화회전, 춘양회전, 신제작파전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카게에에만 전념했다. 이후부터 그의 작품 활동은 상업과 예술의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펼쳐지기 시작했다.
NHK 일본 공영방송국 개국 방송 시, 그의 극단 <모쿠바자>가 전속으로 채택되었고, 1960년대 비틀즈가 최초 아시아 투어를 마친 부도칸에서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 케로용이 등장하는 <케로용 쇼>가 열렸다. 소니의 전신인 도쿄통신공업의 광고에는 <포도주병의 여행> 카게에가 사용되었고, 날씨 예보, 공익광고를 비롯한 상업광고에도 그의 작품이 등장했다. 쿠라시노테쵸우의 표지와 내지에도 그의 작품이 사용되었으니 작가로서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성장기 일본 대중문화예술 발전의 중심에는 후지시로 세이지가 있었다.
그림자 회화 장르를 개척한 후지시로 세이지는 일본에서 100회 이상의 순회 전시 개최, 그림자극의 상연 횟수만도 2000회가 넘는다.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을 그림자극으로 상연한 작품은 일본 문부과학성이 공인한 특별 선정 작품이 됐다.
◆그가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
이번 ‘오사카 파노라마展’은 그의 역사적 발자취를 담은 작품들과 그가 애정을 담아 아끼는 작품들로 구성돼 있으며, 후지시로가 전시 도면도 직접 그려서 그 의미를 더한다.
거장의 탄생을 알리는 모노크롬 시리즈 <서유기>와 <목단기> 시리즈를 비롯하여 일본의 국민작가이자 세계적인 동화작가인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를 소재로 한 <첼로 켜는 고슈>, <은하철도의 밤>, <구스코부도리 전기>등을 후지시로의 감각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 국민에게도 친숙한 오사카, 교토, 나가사키 등 일본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후지시로는 “이번 전시가 한·일 양국 간의 관계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더불어 내 작품이 한국 관객의 마음에 닿길 바란다”고 말한다. 4월7일까지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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