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서른아홉 번째[출판 숏평]
■단테 ‘신곡’ 읽기(프루 쇼 지음 / 오숙은 옮김 / 교유서가)
교유서가는 절판된 책을 복간하는 ‘교유서가 어제의 책 시리즈’를 2022년부터 펴내고 있다. “단테 ‘신곡’ 읽기”는 시리즈의 여섯 번째 도서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을 다룬다. ‘신곡’은 몇 세기에 걸쳐 사랑받는 명작이지만, 100곡의 서사시로 이루어져 읽는 데 어려움이 있다.
“단테 ‘신곡’ 읽기”는 단테 연구자인 프루 쇼가 ‘신곡’을 일반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집필한 해설서다. ‘신곡’은 ‘지옥’ ‘연옥’ ‘천국’으로 구성되며, 주인공인 단테가 한 세계씩을 거쳐가며 진행된다. 이 책은 ‘신곡’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7가지 키워드(우정, 권력, 인생, 사랑, 시간, 수, 말)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본다.
“희망 없이 열망 속에서 살고 있다(sanza speme vivemo in disio).”
단테는 한 세계를 거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진다. 단테 연구자이면서 해설가인 프루 쇼가 초대하는 ‘신곡’ 여행길에 함께 올라, 단테가 던지는 질문에 답해 보길 권한다. (김선진 / 출판마케터, 9N비평연대)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헤르만 헤세 지음 / 유영미 옮김 / 뜨인돌)
‘데미안’은 모두가 알다시피 헤세의 인생론이 거짓 없이 담긴 철학적이고도 상징적인 고전문학이다. 헤세는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하고 탐색하며 고유의 삶을 추구해 왔다.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기도한 경험이 있음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예민하게, 집요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헤세가 건네는 조언은 예상과는 다르게 마냥 부드럽고 말랑말랑하지 않다. 하지만 가끔씩 그의 따갑고 냉정한 조언이 떠오르고, 그 조언들은 우리를 다시금 움직이게 만들 것이다. 우리도 한때는 머릿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던 꿈이 가슴속에서 뜨겁게 불타오르던 열정이 있지 않았는가. 매일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새롭게 눈뜨고 싶은 이들은 ‘헤르만 헤세의 나로 존재하는 법’을 읽지 않아선 안 된다. 2024년, 내가 나로 존재하려면 이 책의 책장부터 펼쳐야 할 것이다. (김정빈 / 출판 칼럼니스트,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역사를 품은 역, 역세권(박은주 지음 / 미디어샘)
서울의 지하철역 정거장에서 걸어서 5분이면 찾아갈 수 있는, 우리 근현대 역사의 공간 17곳을 탐방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에세이다. 책을 쓴 박은주 작가의 직업은 TV 프로듀서다. ‘TV책방 북소리’ ‘만권의 북살롱’ ‘공간사람’ ‘5분 다큐 사람’ ‘역사스테이 흔적’과 같은 인문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만들었다. ‘오일팔 증명사진관’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으로 북미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제56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고, 연이어 ‘이탈리아 국제 필름 페스티벌 2024’에서 Honorable Mention 부문도 수상했다. ‘역사스테이 흔적-우리 누이, 순이’라는 프로그램으론 한국PD연합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PD상’을 받았다.
‘역사스테이 흔적’은 매주 우리 근현대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구성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분들이라면 서울시 지하철역 여기저기에 달린 모니터에서 이 프로그램을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역사학자 심용환 씨가 진행했다. 저자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우리 역사의 흔적에 대해 많은 자료를 축적했다. 그런데 방송이라는 매체는 순간 집중력과 화제성을 만들기엔 좋은 매체지만 휘발성이 강한 단점이 있다. 방영 시점을 지나면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저자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이 새롭게 알게 되고 축적한 소중한 근현대 역사를 영상 외의 기록으로 남겨야 할 필요성을 느낀 모양이다. 책을 펼치면 저자의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저자는 지하철역 근처에 자리 잡은 역사 공간을 찾아 소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역사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더해 더욱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낸다. 가령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에서는 1970년대 어린이 식모살이를 하거나 버스안내양으로 가족을 부양했던 당시 수많은 ‘순이’들을 직접 찾아가 그분들의 증언과 인터뷰를 담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멋진 역사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멋진 책이다. (김성신 / 출판평론가, 9N비평연대)
■멀고도 가까운(리베카 솔닛 지음 / 김현우 옮김 / 반비)
인생에서 쉽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이것이 깊은 고통을 준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리베카 솔닛에게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영원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수수께끼였다.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얼어붙었고 오래도록 살아 있었다. 이제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돼 자신의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어머니 앞에서 선 채로 그 고통을 다시 마주한 그녀는 ‘이야기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음으로써 인생에서 마주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다루는 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는 갑자기 얻게 된 수많은 살구를 해치우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이슬란드에 방문하게 된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모든 과정에서 수많은 매듭이 만들어지고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지닌 ‘고통’과 ‘원망’은 ‘이해’와 ‘사랑’으로 진화한다. ‘멀고도 가까운’은 얼음처럼 차가운 땅에서도 언젠가 사랑의 꽃이 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아름다운 에세이다. (현다연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내 안의 악마를 꺼내지 마세요(이진숙 지음 / 행성B)
용돈을 주지 않자 아버지를 살해한 학생, 학교 폭력, 연인 간 가스라이팅 및 불법촬영 등의 사건을 프로파일러인 저자의 시선으로 소개한다. 범죄 발생 원인과 이유가 진술서처럼 서술돼 문체가 건조하나 묘사가 세세한 책이다.
읽으면서 ‘인내가 무너진 사회’란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키우길 포기하고 필요성을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악마(범죄자)가 탄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 범죄에 속할 때 인식하고 수렁에서 벗어나는 법을 잊기 힘든 이유는 뭘까, 관계의 감각이 무뎌지거나 혹은 고립감이 심해진 사회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비대면·비접촉 시대엔 직접 관계를 맺고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기 어려워졌다. 사람의 감정을 읽고 알아차리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마음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사람마다 다른데 그 차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개인이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할수록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혹은 나고 자라면서 인정과 관심이 부족하거나 어려움을 극복하는 법조차 알지 못한 채 자랐기 때문에 범죄 노출에 취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범죄 예방은 최소한의 예방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책의 한계점도 존재한다. 피해자가 피의자에게 연인 관계를 정중히 거절했음에도 가해자의 2차 가해로 이어진 사례같이 교묘해지거나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범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도움을 딛고 나아가려면 범죄 환경을 조성하지 않도록 사회의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분노를 표출하는 시대에 이런 책이 나온 건 분명 시사할 점이 크다. (최상현 / 서점원, 9N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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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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