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독자에게 불친절해보자 마음 먹고 썼다···'필생의 역작' 수긍할 작품"

정혜진 기자 2024. 2. 2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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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완장'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 등 반 세기 넘게 걸출한 작품을 쓴 소설가 윤흥길(82)이 돌아왔다.

대하 소설이 드문 시대에 1600페이지 분량의 장편 소설 '문신(전 5권)'을 완간하면서다.

소설 '문신'의 모티브는 오래 전부터 작가 안에 있었다.

야간에 주로 소설을 쓰는 그는 여전히 밤을 새고 하루에 최대 수십 장의 원고를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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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부터 집필까지 25년 걸린
대하소설 '문신' 완간 기념 간담회
내년부터 다음 작품 집필 들어가
여든 줄 소설가의 동력은 '체력'
윤흥길 소설가가 2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설 ‘문신’ 완간 기념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혜진 기자
[서울경제]

“이번 소설은 독자들에게 불친절하게 써보자고 마음을 먹고 썼어요.” (윤흥길 소설가)

‘장마’ ‘완장’ ‘아홉 켤레 구두로 남은 사내’ 등 반 세기 넘게 걸출한 작품을 쓴 소설가 윤흥길(82)이 돌아왔다. 대하 소설이 드문 시대에 1600페이지 분량의 장편 소설 ‘문신(전 5권)’을 완간하면서다.

윤 작가는 2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 나이도 많고 앞으로 이런 작품을 쓸 기회도 없을 것”이라며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써보자는 생각에서 벗어나 문장 특색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소설 ‘문신’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욕망과 엇갈린 신념을 다룬다. 누구보다 먼저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 시대 법의 빈틈을 파고들어 천석꾼이 된 최명배와 아버지 뜻과는 다른 삶을 사는 세 자녀 최부용·귀용·순금의 역동적인 삶이 끊임 없이 겹쳐졌다 갈래가 바뀌는 지류처럼 펼쳐진다. 완간 전인 2020년 제10회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한 뒤 ‘21세기의 새로운 고전’, 윤흥길 필생의 역작’ 등 수식어도 따라왔다. 간담회 내내 겸양을 보이던 그는 “‘필생의 역작’이라는 말에는 수긍할 수 있다”며 “내 모든 힘을 기울여서 노력 끝에 낸 작품”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불친절한 문장’은 우리 민족 특유의 정서를 담는 판소리의 율조를 최대한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지만 문장에 익숙해지면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윤흥길 소설가가 2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설 ‘문신’ 완간 기념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정혜진 기자

소설 ‘문신’의 모티브는 오래 전부터 작가 안에 있었다. 윤 작가는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 갖고 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내용은 증발하고 형태만 남아있는 게 있다”며 “어릴 적 6·25 전쟁 때 입영 통지를 받은 동네 형들이 팔뚝이나 어깨에 이름을 새기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남았던 광경이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먼 훗날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을 읽으면서다. 제목 '문신'은 전쟁에 나가 죽으면 시신으로라도 고향에 돌아와 묻히고 싶다는 염원으로 몸에 문신을 새기는 '부병자자' 풍습에서 따왔다.

윤 작가는 “살아 돌아오면 다행이고 전쟁터에서 죽더라도 가족들이 시신을 식별해 고향 선산에 묻어주길 바라는 소망이 투영된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그 풍습이 있었다고 추측해 발상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구상부터 자료 조사, 집필까지 25년이 걸렸다. 윤 작가는 원동력을 두고 어디까지나 생활이 원동력이라면서도 “돌아 보니 안 쓰고는 배기지를 못했다”고 말했다.

윤흥길 소설가가 2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설 ‘문신’ 완간 기념 소회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문학계의 유행화된 경향성에 대해서는 “어느 날 여름에 거리에 나갔더니 모든 여성들이 새까만 복장을 하고 있어 놀라서 물어보니 검은 옷이 유행이라고 하더라”며 “한 나라의 문단이 ‘한 여름 검은 옷’ 일색처럼 유행이 대세를 이룬다면 불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작가는 등단 56년차를 맞았다. 비슷하게 등단했던 많은 소설가들이 작고하거나 절필한 가운데 계속해서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체력도 한 몫 한다. 그는 “다른 예술은 접한 게 없지만 기계체조부터 축구, 배구까지 운동을 즐기며 체력을 길렀다”며 “밤낮 바꿔가며 쭉 쓸 수 있는 것도 체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야간에 주로 소설을 쓰는 그는 여전히 밤을 새고 하루에 최대 수십 장의 원고를 쓰기도 한다. 그는 “조선 말 무렵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준비 중”이라며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설이 ‘어떤 문제를 다뤄야 하는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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