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만 자수, 사망한 '日전범기업 폭탄범' DNA로 신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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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 등 연쇄 폭파를 벌인 급진 무장투쟁 단체인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조직원이라고 49년 만에 자수했으나 사망한 기리시마 사토시(桐島聡·70) 주장 남성이 본인으로 확인됐다.
이 연쇄 폭파와 관련된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조직원 가운데 기리시마는 한 번도 체포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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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예진 기자 = 1970년대 일본 전범 기업 등 연쇄 폭파를 벌인 급진 무장투쟁 단체인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조직원이라고 49년 만에 자수했으나 사망한 기리시마 사토시(桐島聡·70) 주장 남성이 본인으로 확인됐다.
27일 현지 공영 NHK,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 공안부는 이날 기리시마 주장 남성이 기리시마 본인임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유전자(DNA) 검사 결과 본인으로 단정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안부는 이날 1970년대 일어난 연쇄 기업 폭파 사건 중 5개 사건에 기리시마가 관여했다고 보고 이미 사망한 그를 폭발물단속벌칙위반과 살인미수 혐의로 서류송검(사건 서류 송치)했다고 밝혔다.
기리시마 용의자는 1975년 4월 18일 밤 도쿄(東京) 긴자(銀座)의 빌딩 5층 '한국산업경제연구원' 입구 문에 수제 폭탄 1개를 설치했다. 이후 다음날 새벽 시한장치로 이를 폭파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1975년 5월 지명 수배됐다.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지주의를 내건 무장투쟁그룹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은 1974년, 1975년 등 12차례 연쇄 폭파 사건을 저질렀다며 성명을 냈다. 이 가운데 미쓰비시(三菱)중공업 폭파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하고 380명이 부상했다.
이 연쇄 폭파와 관련된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 조직원 가운데 기리시마는 한 번도 체포되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49년 간 잡히지 않았다. 그는 히로시마현 출신으로 사건 당시 메이지가쿠인(明治学院)대학 4학년생이었다.
현지 언론을 종합하면 그는 본명을 숨기고 '우치다 히로시(内田洋)'라는 가명으로 가나가와(神奈川)현의 토목회사에서 수십년 간 일해왔다. 임금도 현금으로 받았다. 공안부는 그가 신원 발각을 피하기 위해서 현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 계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지난달 상순 회사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 말기 위암으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기리시마는 병원에 입원할 당시에도 '우치다 히로시'라는 가명을 썼다. 보험증, 면허증도 없어 자비로 치료를 받았다.
이후 지난달 25일 병원 측에 "나는 기리시마 사토시다"고 밝혔다. "마지막에는 기리시마 사토시로 죽고 싶다"고 했다. 병이 악화된 그는 1월 29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기리시마 용의자는 사망 전 공안부 조사에서 한국산업경제연구원 폭파 사건과 관련 "모른다"며 관여를 부정했다. 다른 일부 폭파 사건에 대해서는 관여를 인정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ci2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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