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을’ ASML 원전 배제 요구에 ‘반도체 동맹’ 영향받나
정부가 경기 용인 반도체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들어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건설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원자력발전소 전력을 끌어오는 방안도 추진한다. 그러나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은 고객사에 ‘재생에너지로만 탄소중립 달성’을 요구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의 부담만 커지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7일 서울 서초구 한전 아트센터에서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전력공급 유관기관 TF’ 발족식을 열고 신속 인허가 등 특화단지의 전력 적기공급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정부는 7개 특화단지에 필요한 전력량이 15기가와트(GW) 이상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용인 반도체 특화단지에만 약 10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용인 특화단지 내 3GW 규모의 LNG 발전소를 건설키로 하고, 다음달 발전소 건설 공동추진단을 발족해 부지 조성, 토지 보상 등에 나설 계획이다.
나머지 7GW 전력은 장거리 송전선로를 통해 대응하기로 했다. 영동권의 한울·신한울 원전, 호남권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한 전력을 끌어오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력 수급계획이 세계적 기업의 탄소중립 달성 요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은 최근 발표한 연간 보고서에서 “2040년까지 고객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ASML은 LNG나 원전 없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만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ASML은 대만과의 전력구매계약(PPA) 체결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는 계속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PPA는 발전사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기업이 직접 구매하는 것으로, 탄소 감축의 주요 수단으로 꼽힌다. ASML은 올해 대만 사업장에서 사용할 전력의 75%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할 계획이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유일한 기업으로 ‘슈퍼 을’로 불린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초미세 공정·고성능 경쟁이 치열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ASML의 탄소중립 달성 요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넘어, 반도체 동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직접 ASML을 방문해 1조원 규모의 차세대 EUV 기반 초미세 공정을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 R&D센터’ 구축 등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저조한 상황이다. 김경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에너지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는 2022년 기준, 국내 전력사용량(2만1731기가와트시·GWh) 중 재생에너지 사용(1959GWh) 비율은 9.0%에 그친다. 주요 반도체 생산시설이 국내에 있는 SK하이닉스 역시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특화단지에서 청정수소를 활용해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업부는 “수소터빈 상용화 진행 상황과 수소 배관 등 인프라 여건 성숙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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