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권위 있는 도서상, 한국 작품이 호평 받는 이유는요
‘오픈북 어워드’ 운영 비영리 온라인 서평 매체
“한국·대만, 젠더 관심과 역사적 경험 공유”
최근 대만 출판시장에서 한국 책들이 얻고 있는 인기는 여러 방면에서 확인된다. 대만의 비영리 온라인 서평 매체 ‘오픈북’(openbook閱讀誌)이 선정하는 ‘오픈북 어워드’(openbook好書奬)도 하나의 지표다. 오픈북 어워드는 해마다 문학, 번역, 논픽션, 어린이·청소년 4개 분야에서 좋은 책 10권씩 꼽아 상을 주는데,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6개의 한국 작품이 이 상을 받았다. 지난 23일 타이베이 시내에서 만난 저우웨잉(周月英) 오픈북 총편집장으로부터 대만 출판계의 상황, 한국 책에 대한 관심 배경 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대만 유력 일간지 ‘차이나타임스’(中國時報)는 계엄 해제 뒤인 1988년 주간 서평지 ‘카이쥐안’(開券)을 만들어 대만 출판·지식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2016년 이 사업을 포기했다. 당시 카이쥐안의 핵심 멤버들이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2017년부터 온라인 서평 매체로 다시 시작한 것이 지금의 오픈북이다. 재정의 절반은 정부 지원에, 4분의 1은 기업 협찬에 기대는데, 이는 오픈북에 대한 출판계와 독자들의 지지 때문에 가능하다고 했다. 저우 편집장은 “매주 신간에 대한 서평 및 출판산업문화에 대한 보도 등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해마다 오픈북 어워드를 수여한다는 점” 두 가지를 오픈북이 지닌 권위의 원천으로 꼽았다. 오픈북은 신간 서평부터 인물 인터뷰, 기획 보도 등 종합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무엇보다 영미권·아시아의 번역서들과 어린이·청소년 분야를 깊게 다룬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오픈북 어워드는 카이쥐안 시절부터 이어온, “공정성과 객관성을 인정받는 독보적인 상”이라 한다. 영역별로 전문 심사위원들을 선정해 1년 내내 매주 신간들을 검토하고, 이를 다시 두 차례 더 추려 최종적으로 40권을 선정할 정도로 선정 과정이 치밀하고 촘촘하다. 지난해 검토 대상이 된 책만 무려 2568권에 이르렀다고.
수상작을 꼽는 기준은 “‘좋은 책이면서도 재밌는 책’이어야 하며,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와 시대정신의 반영이 있어야 한다. 또 편집과 디자인, 문체 등 책으로서의 완성도, 번역의 정확성 등도 종합적으로 따진다”고 했다. 대중성과 전문성의 겸비를 추구하는 셈이다. 이렇게 꼽힌 수상작들을 홍보하는 규모도 남다르다. 200여개 오프라인서점, 16개 인터넷서점, 500여곳 도서관 등에 1년 내내 노출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해마다 인지도 높은 유명인이 ‘홍보대사’를 맡는데, 2020년 ‘천재 해커’ 출신으로 디지털부 장관이 됐던 탕펑(唐鳳), 2022년 여성 역도 스타 궈싱춘(郭婞淳), 2023년 ‘바둑 여신’으로 헤이자자(黑嘉嘉) 등이었다. 대중교통과 거리 곳곳에서 이 홍보 영상이나 간판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상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작품들이 꾸준히 받은 것은, 대중적인 인기와는 또 다르게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2018년 어린이·청소년 분야에 경혜원의 그림책 ‘공룡 엑스레이’, 2020년 어린이·청소년 분야에 이수지의 그림책 ‘파도야 놀자’, 2020년 번역서 분야에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 2021년 번역서 분야에 김숨의 소설 ‘한 명’이 선정됐다. 지난해에도 김선진의 그림책 ‘농부달력’(어린이·청소년)과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번역서) 두 권이 선정됐다.
저우 편집장은 “케이팝·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대만에서도 즉각적인 인기를 끄는 현상에 더해, 젠더 문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 공통된 역사 경험에서 비롯하는 공감대”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동성혼을 합법화한 대만 사회는 젠더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강한데, 마침 ‘미투’를 거치며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많은 한국 작품들이 대만 독자들과 만나게 됐다. 저우 편집장은 박상영 작가의 사례를 들며, “이를테면 그의 작품 속 ‘루저 감성’이 대만 젊은이들과 잘 공명한다”고 했다.
또 대만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백색 테러’ 시기를 겪었고, 중국과 일정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비슷한 역사적 경험이 공감대를 넓힌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설가 한강의 작품들은 ‘역사정의’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대만 작가 라이샹인(賴香吟)을 떠올리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김숨의 ‘한 명’은 ‘왜 대만에는 그동안 이런 작품이 없었는가’ 되새기게 만들었다고 한다.
좀 더 복합적인 풍경도 있다. 2016년 드라마 ‘도깨비’가 대만에서 인기를 끌자, 배우 공유가 출연했던 영화 ‘도가니’와 공지영의 원작 소설이 함께 소환됐다. 그런데 ‘도가니’가 다룬 실제 사건인 복지시설 장애인 인권 유린 사례는 대만에서도 있었고, 이를 다룬 천자오루(陳昭如)의 소설 ‘침묵’과 영화까지 이미 나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화제가 됐다. 그래서 한동안 이 소설을 아예 “대만판 ‘도가니’”로 홍보했다고 한다.
당시 ‘도깨비’와 공유의 인기 속에서 문학 작품인 ‘도가니’를 끄집어낸 주요 당사자가 바로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오픈북이었다. 저우 편집장은 “디지털의 확산 속에 책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대만을 포함한 전세계적 현상”으로, “대중의 독서와 연관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평론하고 보도하는 등 책 읽기를 확대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과 역량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예컨대 한국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이 대만에서 인기를 얻으면, 이를 기회로 삼아 소설가 김영하와 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보도를 내는 식이다.
최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 해마다 고유의 부스가 차려질 정도로 대만에선 독립서점·독립출판이 활발하다. 다만 오픈북 편집장 우쯔량(吳致良)은 “책 할인을 규제하는 법적 제도(도서정가제)가 없는 상황에서 대형 유통업체들의 끝모를 할인 경쟁 때문에 독립서점·출판사들의 생존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대만에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별 서점이 전체 500곳가량 있으며, 이 가운데 200여곳 정도가 독립서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 독립서점들은 2010년대 들어 대만 출판계에 새로운 흐름을 불러 일으켰으나, 낮은 수익률로 경영 성과가 좋지 않아 갈수록 생존의 문제에 부닥치고 있다고 한다. 한번은 독립서점들이 독립출판을 통해 책을 냈는데, 대형 유통업체들이 이 책을 대폭 할인해 파는 바람에 정작 당사자들이 책을 제대로 팔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했단다. 대만 출판계가 요새 도서정가제와 독립서점의 관계, 특히 한국의 모델을 주시하는 배경이다. 우 편집장은 “대만 출판계는 주로 정부 지원에 기대기 때문에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려 하는데, 한국 출판계는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정부와 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 신선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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