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이 떠오를 만큼 양측의 극명하게 상반되는 기억과 진술…그럼에도 오지영의 징계는 최고수준인 ‘자격정지 1년’

남정훈 2024. 2. 27. 14: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라쇼몽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영화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가 만든 영화 ‘라쇼몽’에서 유래된 말로, 기억의 주관성에 대한 얘기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당사자마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되곤 한다. 완벽한 객관성이란 있을 수 없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사건 양측의 의견과 입장을 다 들어봐야 한다.
오지영.
최근 여자 프로배구 페퍼저축은행에서 제기된 구단 내 괴롭힘 논란도 ‘라쇼몽 효과’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피해를 주장하는 선수들과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의 입장이 완전히 상반되는 상황이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7일 서울 상암동 사옥에서 페퍼저축은행 선수 간 괴롭힘과 관련해 2차 상벌위원회를 열었다. 지난 23일 열린 1차 상벌위원회에 출석했던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 오지영과 피해자 2명 중 1명(B)가 출석했고, 이날도 두 선수가 출석해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소명했다. 페퍼저축은행 구단 관계자도 출석해 구단에서 파악한 내용과 구단의 의견을 소명했다.

◆ 명백하게 갈리는 양측의 입장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오지영의 A,B 선수에 대한 괴롭힘을 인지한 것은 지난해 11월 쯤으로, 구단 내 자체 조사를 통해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을 확정지었다. 이후 한국배구연맹 고충처리센터에 신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지영은 괴롭힘 사례로 지적된 대부분을 부인했다. 상벌위가 끝난 뒤 오지영이 선임한 법률 대리인 정모 변호사는 “오지영 선수의 진술에 기반해 소명할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해 소명하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B선수가 피해 사실로 제기한 16가지, C선수가 피해 사실로 제기한 6가지에 대해 사실관계 자체를 대부분 부인하는 내용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
게다가 오지영의 주장은 구단은 물론 피해를 주장하는 선수들과는 정면 배치됐다. 정 변호사는 “오지영 선수에 따르면 구단 내 자체 조사 때 오지영 선수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오지영 선수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연맹 고충처리센터에 신고 됐다는 것만 15일 통보받았다”라고 덧붙였다. 오지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구단이 피해를 주장하는 선수들의 주장만 듣고 고충처리센터에 신고한 게 된다.

이에 대해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11월쯤 인지해서 지난 15일 고충처리센터에 신고하기까지 약 3개월여의 기간 동안 자체 조사하는 과정에서 분명 오지영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오지영과 피해 주장 선수 A는 A가 팀을 나가기 전까지는 절친한 사이를 유지했다고 주장했다. 정 변호사는 “피해자 A의 진술 증거들을 탄핵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둘 사이에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이나 인스타그램 DM 등을 소명 자료로 제출했다. 여기에 오지영 선수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A에게 선물한 팔찌나 의류, 향수, 에어팟 등 약 200만원에 달하는 선물에 대한 영수증 내역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장호 상벌위원장.
◆ 양측의 의견이 이렇게 갈리는데도 징계는 최고수준인 ‘자격정지 1년’

오지영과 피해 주장 선수들의 의견이 이렇게 상반되는 데도 연맹 상벌위는 오지영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최고수준인 자격정지 1년을 내렸다. 사실상 피해 선수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징계의 근거는 선수인권보호위원회규정 제 10조(징계·제재금) 1항의 4호 ‘폭언, 그밖에 폭력행위가 가벼운 경우 : 1개월 이상 1년 이상의 자격정지 또는 1백만원 이상 1천만원 이하의 벌금’다. 1년은 상벌위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징계다. 1988년생으로 어느덧 30대 중반인 오지영에게는 사실상 선수생활이 끝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는 중징계다. 

이에 대해 이장호 상벌위원장은 “양측의 입장을 다 소명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오지영 선수의 직장 내 괴롭힘 등 인권침해 행위가 인정되어 1년의 징계를 결정했다. 양측의 소명뿐만 아니라 구단 사무국장이나 동료 선수들의 확인서도 제출이 되어 있다. 이를 종합해볼 때 인권침해가 맞다는 게 상벌위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오지영.
오지영의 법률 대리인 정 변호사는 징계에 대해 재심을 청구한다는 입장이다. 재심 청구는 27일 기준으로 열흘 이내에 할 수 있다. 정 변호사는 “괴롭힘에 대한 진술 증거를 탄핵할 만한 물적 증거를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암동=남정훈 기자 ch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