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경제는 웃는데…日 시민은 물가 올라 ‘죽을 상’ [엔저의 명암]

2024. 2. 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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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회복 기대감과 달리 분위기 처참
물가 오르니 지갑 닫는 일본인들
관광객은 ‘호화 덮밥’ 일본인은 ‘짠테크’
일본 물가가 오르면서 소비지출을 줄이는 일본 청년이 늘면서 자신의 짠테크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이 지난 6일 발표한 2023년 가계조사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은 월평균 29만3997엔으로 물가변동 영향을 제외한 실질로 전년 대비 2.6% 줄었다. [유튜브 캡처]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하루 식비 600엔(약 5000원) 사나이 절약 자취 브이로그”, “28세 회사원의 1000엔(약 8845원)으로 주말 보내기”

일본 유튜버 스가타니는 직장인이지만 아침·점심·저녁을 가급적 집에서 먹는 ‘짠테크족(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다. 하루 식비는 600엔. 외식은 꿈도 못 꾸는 예산이라 보통 집에서 덮밥과 같은 간단한 요리를 한다. ‘최저가 요리’를 보여주는 것 외에 특별한 내용이 없음에도 스가타니 브이로그는 최고 조회수 53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다. 브이로그에는 “대단하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지하고 있다”는 응원 댓글이 달렸다.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했다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정작 일본인들의 소비심리는 얼어붙고 있다. 역대급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정체돼 일본의 소비 지출은 3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기록적 엔화 약세에 외국인 관광객들은 일본에서 비싼 음식과 명품을 즐기는 것과 달리 현지인들은 저렴한 음식에 더 매달리는 내·외국인 소비 양극화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가 오르니 지갑 닫는 일본인들

27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1월 근원소비자물가지수는 106.4로 전년 동월보다 2.0% 올랐다. 3개월 연속 둔화세를 이어갔만 시장 예측치인 1.8%를 웃돌았다.

지난해 일본의 전체 소비자물가지수는 105.2로 전년 대비 3.1% 상승해 41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1982년 2차 석유파동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았던 상황과 유사한 수준이다.

물가 상승을 견인한 건 엔저에 따른 식품값 인상이다. 교도통신은 “신선식품을 제외한 지난해 식품 물가는 전년 대비 8.2% 올랐다”며 “48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맥도날드가 메뉴의 30%를 인상하는 등 일본인이 자주 먹는 음식 가격이 크게 올랐다. 교도통신은 “식품업체들이 재료·운송비 상승을 가격에 반영하는 움직임이 지속된 영향”이라 분석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숙박요금도 크게 올라 전년과 비교했을 때 숙박 부문은 17% 가량 상승했다.

물가가 오르자 가계 지출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인 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은 월평균 29만3997엔으로 집계됐다. 물가 변동 영향을 제외한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2.6% 줄었다. 코로나19 확산과 고물가로 인해 5.3% 감소했던 2020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됐다.

관광객은 ‘3만원 호화 덮밥’ 일본인은 ‘짠테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

물가 부담에 지갑을 닫은 일본인들과 달리 방일 관광객들은 엔저 덕에 씀씀이가 커졌다. 지난 21일 블룸버그통신은 “홋카이도의 한 식당에서는 장어덮밥을 3500엔(약 3만3000원), 야키토리덮밥을 2000엔(약 1만8000원)에 파는데 손님의 95%가 외국인”이라며 “이런 모습을 전국 관광 명소에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하세가와 요시유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도쿄무역관은 “외국인들은 호화 소비를하지만 일본인들은 국내 여행이나 출장 때에도 물가가 비싸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했다.

이같은 모습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일본 증시 등 국가 경제상황과는 대조적이다. 닛케이지수는 22일 거품경제 최고점이었던 1989년 12월 이후 34년만에 3만8000대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6일 닛케이지수는 3만9233엔으로 마감하며 4만대에 바짝 다가섰다.

엔저를 바탕으로 수출 기업 실적이 증가하고, 중국 경제 부진으로 글로벌 자금이 일본으로 몰린 덕분이다. 여기에다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지난해 2507만명으로 코로나19 확산 전 수준을 회복하는 등 청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반면 일본인들의 주머니는 더 가벼워졌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5인 이상 업체의 노동자 1인당 월평균 명목임금은 전년보다 1.2% 오른 32만9859엔(약 296만원)이었으나, 실질임금은 오히려 2.5% 감소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20년 실질임금을 100으로 가정했을 때 지난해는 97.1로 비교 가능한 1990년 이후 가장 낮았다”고 전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지난달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노사정 회의에서 “작년을 웃도는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청한다”고 호소하기도 말했다.

하지만 여론은 비관적이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7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일본 국민 79%가 ‘올해 물가상승을 웃도는 임금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자민당 비자금 등 각종 부정적인 이슈에 고물가를 잡지 못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한 달 전보다 7%포인트 하락한 14%로 집계됐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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