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선 긋는데…"전공의 빈자리 채워주겠다" 손드는 한의사들

박정렬 기자 2024. 2. 27. 14: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의사들이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의료 공백이 현실화한 이후 연일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3만명의 한의사가 의사들이 떠난 필수·지방 의료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의대 정원을 줄여 그만큼 의대로 넘기자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도 했다. 의료정책에 소외된 한의계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의료 패러다임 전환과 새로운 시장 창출을 아울러 꾀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27일 성명서를 내고 "국가 의료체계 붕괴의 비상사태에 한의사를 투입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대한한의사전문의협회, 대한한의과전공의협의회, 대한공중보건한의사협의회 등 세 단체가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 한의사단체가 나서겠다"고 공동 성명을 낸 지 5일 만이다.

이번 성명서에서 한의협은 '양의계의 비이성적인 집단행동' '보건의료체계 붕괴위기' 등 전공의 집단 이탈을 강한 논조로 비판하면서 "현재 초유의 진료 공백 사태는 양의계의 의료 독점과 양의계 일변도의 정책 및 제도에 기인한다"며 "불공정을 바로잡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의사들의 1차 의료(필수 의료) 참여를 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의계는 진료 참여로 국민의 불편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한의사 업무와 1차 의료(필수 의료) 참여 확대 △응급의약품 종별 제한 폐지 △한의대-의대 졸업생의 교차 수련을 조속히 허용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한의협은 "현재도 전국 한의원과 한방병원, 한의대부속병원들이 평일 야간·공휴일 진료를 확대하며 1차 진료는 물론 응급환자의 효율적인 처치와 연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한의계 지원을 통해) 고질적인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병폐를 말끔히 치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도별 면허 한의사 수/그래픽=윤선정


한의계가 정부 의료 정책에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확대한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에도 한의협은 "의사가 10년 뒤에나 비로소 공급이 시작됨을 감안하면 당장 의료인력의 수급 배치에는 도움이 안 된다"며 "향후 인구감소와 이공계 인력 부족 현상, 한의사의 공급과잉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한의대 정원을 축소해 양방 의대 정원 증원에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한의대 정원을 줄여 의대로 넘기자고 먼저 제안한 것이다.

전공의 이탈 국면에 한의계가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쓰는 것은 의료 정책에서 오랜 시간 소외된 데 대한 반발과 함께 '포화상태'에 처한 업계의 활로를 뚫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연간 한의대 졸업생은 800명 안팎으로 의사(3000여명)와 비교해 규모는 적지만 전체 수가 적다 보니 증가율은 더 높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2020년 면허 의사 수 연평균 증가율은 2.46%이지만 한의사는 3.19%에 달한다. 전북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 한의사는 "우리 시(市)에만 100개가 넘는 한의원이 있다. 새로 한의원을 개원하려고 해도 자리가 없을 정도"라며 "일본은 편의점만큼 치과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한의원이 그렇다는 우스갯소리를 동료들과 하기도 한다"고 자조했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홍주의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출생 극복을 위한 국가 난임치료 지원 활성화 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의 발표를 듣고 있다. 2023.5.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근 대규모 한방병원이 개원하면서 전체 한의사의 80%가량이 몸담은 한의원의 수익은 점점 줄고 있다. 꾸준히 상승하던 한의사 임금도 2020년 1억800만원으로 전년(2019년 1억1600만원)보다 10%가량 줄며 하락 전환했다. 필수 의료 분야 중 '폐과 선언'까지 한 소아청소년과(1억35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A 한의사는 "다이어트와 같은 비급여 처방 시장도 코로나19 이후 경제 위축으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며 "이대로 한의사가 충원되기만 하고 빠지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모두가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한의계의 요구들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이전부터 양의계와 한의계는 갈등이 첨예했는데, 정부가 직역 간 역할 조정에 나설 경우 의사단체가 반발해 향후 협상 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의사가 투입돼야 할 응급실·중환자실 등에 한의사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한의사들의 역할 확대 방안을 검토하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을 드린다"고 답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