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J ‘집단학살 방지’ 명령 한달…인권단체 “이스라엘, 법원 판결 무시”

최서은 기자 2024. 2. 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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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공습으로 26일(현지시간) 가자지구 칸유니스의 집이 파괴되어 있다. UPI연합뉴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이스라엘에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방지 명령을 내린 지 한달 만에 가자지구에서 35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단체들은 2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이 ICJ의 명령을 준수하지 않고, 최소한의 조치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이날 ICJ에 집단학살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한 조치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소로 이뤄진 재판에서 ICJ가 지난달 26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대량 학살 행위를 방지하는 조처를 해야 한다”고 판결하며 한 달 뒤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한 데 따른 것이다.

ICJ는 당시 이스라엘에 ▲집단학살 협약에 반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 ▲이스라엘군이 앞서 언급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 ▲가자지구에서 전쟁범죄 증거를 보존할 것 ▲집단학살에 대한 직접적이고 공개적인 선동을 방지 및 처벌할 것 ▲가자지구 민간인들에게 기본서비스와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것 ▲이번 명령을 준수하기 위해 취한 모든 조치에 대해 한 달 이내에 ICJ에 보고서를 제출할 것 등 6가지 잠정 조치를 명령했다.

그러나 이같은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계속됐고, 민간인 피해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ICJ의 판결이 내려진 1월26일부터 2월24일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352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 120명꼴로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최근 이스라엘의 공격은 피란민들이 몰려있는 가자지구 남부와 중부에 집중적으로 이뤄졌고, 병원·학교·주거지역·난민캠프 등 시설을 가리지 않고 표적이 되고 있다. ICJ 명령에도 불구하고 가자지구에서 수많은 고문, 살해, 민간인 주택 방화 등 사례가 보고됐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구호품 전달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가자 주민들은 심각한 기근과 인도주의적 위기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기본적인 구호 활동을 방해하고 기아를 전쟁 무기로 사용하면서 ICJ 명령 조치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HRW는 “이스라엘 정부는 법원 판결을 무시했고, 어떤 점에서는 구호 지원을 더욱 저지하는 등 탄압을 강화했다”면서 “이스라엘 정부는 230만 가자지구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으며, ICJ의 명령 이전보다도 훨씬 더 그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직원들이 하마스에 연루됐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이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이 상당수 중단돼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2월 동안 하루 평균 100대 미만의 구호 트럭이 가자지구에 도착하고 있으며, 전달보다 절반에 불과한 수준의 구호품이 주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RW에 따르면 ICJ의 명령이 나오기 전 3주 동안은 하루 평균 147대의 트럭이 가자지구에 진입했다.

HRW는 성명을 통해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와 금수 조치를 통해 이스라엘 정부가 명령을 따르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앰네스티 역시 이날 “ICJ가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집단학살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조치를 시행하라고 명령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이스라엘은 최소한의 조치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앰네스티는 “이스라엘은 국제법에 따라 가자지구 주민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야 할 명백한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호 지원을 방해해왔다”면서 “이는 ICJ 판결을 명백히 무시하고 집단학살 방지 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ICJ의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이 임시 조치를 준수하도록 요구할지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게 된다고 알자지라는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이를 거부할 경우 경제 제재, 무기 금수 및 여행 금지 등의 유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유엔 헌장은 또 안보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무력 개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이 이러한 제재 조치에 대해서도 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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