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대통령, 나토 사무총장 '도전장'… "동유럽에 관심을"

김태훈 2024. 2. 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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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단일 후보' 네덜란드 총리에 제동
불가리아, 헝가리, 튀르키예 등 지지받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오는 10월 교체될 예정인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임 사무총장 후보인 마르크 뤼터 현 네덜란드 총리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민 인물이 있어 주목된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현 루마니아 대통령이 주인공인데, 나토 수장을 뽑는 과정이 서유럽 대 동유럽 대결 구도로 가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나토를 뒤흔드는 발언을 내놓는 판국에 나토가 분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일까봐 걱정된다”라는 우려 섞인 반응도 감지된다.
클라우스 요하니스 루마니아 대통령. AFP연합뉴스
27일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요하니스 대통령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나토 동맹국들에 ‘나토를 이끌고 싶다’라는 뜻을 전달했다. 나토 사무총장 자리를 놓고 뤼터 총리와 겨룰 준비가 돼 있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보수 성향의 자유당 당수를 지낸 그는 현재 64세로 2014년 임기 5년의 루마니아 대통령에 당선된 뒤 한 차례 연임해 10년째 재직 중이다. 연말이면 두 번째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 루마니아는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행정부 수반인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이원집정제 국가다.
요하니스 대통령의 나토 사무총장 도전 선언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나토 주요국 정부가 뤼터 총리 지지를 선언한 직후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폴리티코 등 외신에 따르면 현재 나토 31개 회원국 가운데 20개국 이상이 뤼터 총리가 차기 나토 사무총장을 맡는 것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반면 약 10개국은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루마니아도 그중 하나다. 외신들은 루마니아가 속한 동유럽권 국가인 불가리아와 헝가리, 그리고 나토 회원국 중 유일한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가 요하니스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본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AFP연합뉴스
1949년 출범한 나토는 애초 북미 대륙의 미국, 캐나다와 서유럽의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주축인 조직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1년 동서 냉전 종식과 소련(현 러시아) 해체를 계기로 커다란 변화를 맞는다. 과거 소련 영향권에 속했던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탈냉전의 물결 속에 앞다퉈 나토에 가입한 것이다. 폴란드를 필두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동유럽 국가들이 그렇다. 소련에서 독립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 3국’도 나토 회원국이 됐다.
문제는 러시아가 2010년대 들어 옛 소련과 마찬가지로 주변국들을 상대로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취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름반도를 강탈한 데 이어 2022년 우크러이나를 전격 침공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로 인해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유럽 국가들은 극심한 안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나토 본부 전경. EPA연합뉴스
폴리티코는 뤼터 총리가 나토 사무총장이 되면 나토는 전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란 불만이 동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뤼터 총리 지지를 주저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나토를 상대로 전면전을 일으키면 결국 러시아와 인접한 동유럽이 주요 전쟁터가 될 텐데 서유럽 국가 출신 나토 사무총장이 과연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느냐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동유럽 국가 출신의 한 외교관은 폴리티코에 “우리가 뤼터 총리를 방해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다만 누군가는 뤼터 총리에게 ‘러시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나토의 ‘주류’인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이 나토의 ‘최전선’인 동유럽 국가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려면 동유럽 출신 나토 사무총장 후보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나토로선 요하니스 대통령의 사무총장 도전으로 마치 ‘서유럽 대 동유럽’ 대결 구도처럼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 미국 대선이 차츰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에 부정적인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어 11월 선거에서 승리하는 경우 나토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전망이다. 트럼프는 방위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에 못 미치는 나토 회원국들을 ‘안보 무임승차자’로 규정하며 맹비난한 바 있다. 그가 재집권하면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식의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폴리티코는 ‘나토 새 사무총장 선출 과정이 단일 후보 추대가 아니고 두 후보 간 경쟁의 양상으로 흘러갈 경우 자칫 나토가 분열돼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라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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