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경보기 2차 사업 '번역' 파동…'영어'에 발목 잡혔다 [취재파일]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입력 2024. 2. 2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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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조기경보기 4대를 추가 도입하는 항공통제기 2차 사업이 파행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방사청은 지난 22일까지 미국의 보잉과 L3해리스, 스웨덴의 사브로부터 사업 제안서를 받았지만 업체들의 서류에 결격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오늘(27일) 사업을 재공고합니다. 추가 시한은 20일입니다. 재공고한들 결격 사유 해소의 길이 막막해 사업 장기화가 우려됩니다.

SBS 취재를 종합하면 결격 사유가 나온 업체는 2곳 이상입니다. 결격 항목은 제안서 한글본의 부재, 현지 시험평가 계획과 신용평가보고서의 부실 등입니다. 이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한글 제안서의 부재입니다. 보잉이 영어 제안서만 제출한 것입니다.

문제는 보잉이 조기경보기 2차 사업에 참여한 방식이 대외군사 판매 FMS이고, FMS를 주관하는 미국 정부는 보안 등의 이유로 제안서를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방사청은 국외 구매 시 한글 제안서를 우선하는 원칙에 따라 "보잉의 영어 제안서는 결격 사유"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보잉과 방사청의 언어 충돌입니다.

다른 나라도 자국 언어 제안서를 고집할까요? 우리 방산업체들은 사우디, 이집트, 태국에 가서 무기 팔 때 영어 제안서를 제출합니다. 사우디, 이집트, 태국의 언어로 제안서 쓰지 않습니다. 해당국 획득 기관들은 현지 언어로 번역된 제안서 안 냈다고 결격 도장을 찍지 않습니다.

21세기 첨단 무기 도입에 영어가 걸림돌


일반적인 상업판매 방식으로 참여하는 사브, L3해리스와 달리, 보잉은 FMS라는 방식으로 우리 공군 조기경보기 2차 사업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FMS는 우방국 지원의 의미를 담아 무기를 판매하는 방식이어서 미국 정부가 미군 기준에 의거해 가격과 각종 조건을 결정합니다. 관련 서류도 모두 미국 정부가 작성합니다. 서류는 오직 영어로만 씁니다. 보안, 오역 등의 우려에 절대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외국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전 세계 획득 기관 중 유일하게 한국 방사청만 영어 제안서를 기피한다", "재공고 기간을 200일로 늘려도 미국 정부는 제안서를 한글로 번역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보잉의 한 임원은 "미국 정부는 FMS를 하면서 제안서를 번역해본 적 없다", "FMS는 G2G(정부 대 정부)이기 때문에 방사청과 미국 정부가 번역 이슈를 풀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미국 정부와 보잉은 재공고 기간에 한글 제안서를 내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그동안 외국 무기 제안서의 한글 번역 관행을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제안서는 전문용어 투성이인데다 1,000~2,000페이지를 가볍게 넘습니다. 무기의 상세 내역에 정통한 번역 인력이 드물어 오역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점은 사업 참여국과 우리 군의 기밀이 번역자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방사청은 "한글 제안서 없으면 탈락"이라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제안서 내용을 꼼꼼히 파악하려면 한글로 쓰여야 한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브와 L3해리스 사정은?


한글 제안서 부재 외에 방사청이 지목한 결격 사유는 현지 시험평가 계획과 신용평가보고서의 부실 등입니다. 글로벌아이 조기경보기의 사브와 G6500 조기경보기의 L3해리스 중 한 업체의 결격 사유입니다. 특히 현지 시험평가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순 결격이 아니라, 100% 탈락 조건입니다.

이와 별도로 우리 군의 작전요구성능 ROC를 충족하지 못하는 조기경보기도 2차 사업에 발을 디뎠습니다. 조기경보기 자체의 성능은 나쁘지 않지만 우리 군 특유의 ROC를 맞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역시 탈락 조건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기경보기 2차 사업이 제대로 굴러갈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ROC 미달과 시험평가 부실은 묵과할 수 없지만 영어는 어떻게 좀 해결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방사청 고위직을 역임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공군과 해군 장교들은 군종 특성상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 "방사청이 공무원과 육군 장교 위주로 운영되면서 영어를 멀리하게 됐다"고 꼬집었습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개발도상국의 획득 기관들도 모두 영어로 제안서 받습니다. 영어 제안서는 방산의 글로벌 스탠다드입니다. 세계 4대 방산강국을 노린다면 방산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좇아야 합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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