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년만에 이룬 對사회주의권 외교 완결판… ‘北문제 해결에 기여’ 전망[10문10답]
韓, 20년전부터 관계개선 노력
뉴욕에서 극비리에 공한 교환
수교당일 美정부에 사실 통보
美 일단 “존중” 입장 밝혔지만
쿠바 간뒤엔 訪美 제한될 수도
韓-쿠바 상주공관 개설 등 논의
점차 고위급 협의 진전 시킬 듯
北, 외교단행사때 쿠바 언급안해
북중러연대 강화·對日교섭 추진
지난 14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가 쿠바 대표부와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국교를 수립해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한국과 쿠바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시작함으로써 양국관계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76년 만에 대사급 외교관계로 격상됐다. 쿠바는 대한민국의 193번째 수교국으로 향후 북한 문제를 비롯, 한국의 중남미 외교 등 다양한 현안을 놓고 협력하게 된다. 10개의 문답을 통해 지난 20년 이상 비밀리에 진행돼 온 한국과 쿠바 간의 협상, 전격적인 수교 결정의 의미 등을 되짚어본다.
1. 한-쿠바 수교는 리틀 미·중 수교
한국과 쿠바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한 것은 과거 동구권 국가들을 포함, 북한과 우호국가였던 대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으로 해석된다. 특히 글로벌 중추국가를 표방하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외교 지평을 넓히는 성과를 낼 것이란 점에 기대감이 있다. 특히 쿠바가 사회주의 체제 친북 국가로 인식돼 온 만큼,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유의미한 진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쿠바 수교는 지난 1979년 1월 1일을 기해 대사급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미·중 수교와도 유사점이 있다. 미·중 수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오던 미국과 소련 두 축의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미·중의 수교 결정은 당시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해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패권 경쟁자였던 소련은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걷다 1980년대 말에 결국 붕괴했다.
2. 수교논의 언제부터, 극비 협상 어떻게 이뤄졌나
한국은 20년 전부터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사회주의 혁명 성공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과 쿠바가 교류할 일은 사실상 전무했다. 그러다 1999년 한국이 유엔 총회에서 쿠바에 대한 금수 해제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하면서 쿠바는 한국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지난 2016년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이 쿠바에 직접 방문하는 등 기회가 있었지만 실제 수교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지난해 5월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과테말라에서 열린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 같은 해 9월 유엔 총회 등 계기를 활용해 쿠바 측에 수교 의사를 피력했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양 국가의 유엔 대표부를 매개로 지난 설 연휴 기간 수교 관련 협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수교를 위해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순서, 언론에 알리는 방법 등을 모두 협의한 뒤 지난 14일(현지시간) 전격 외부에 수교 합의 사실을 공개했다.
3. 윤석열 정부 007작전, 깜짝 발표
한국이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은 ‘007작전’을 연상하게 했다. 한국시간으로 지난 14일 늦은 오후에 공식 발표되기 직전까지 극소수의 핵심 관계자만 해당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 측에 이 사실을 통보한 것도 수교 당일이었다. 철통 보안을 위해 외교 공한의 교환 장소를 한국도, 쿠바도 아닌 뉴욕의 유엔 대표부로 고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박진 당시 장관은 쿠바 외교차관을 과테말라에서, 쿠바 외교장관 등을 9월 유엔 총회에서 접촉하면서 수교를 설득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주유엔 한국대표부 측으로 쿠바 측이 수교 의사를 밝혔고 그로부터 6일 만에 전격 수교가 이뤄진 것이다. 수교 직후 5분 뒤 공표 등 분 단위까지 고려했던 양측 합의에 따라 한국 외교부의 출입기자에게는 당일 오후 10시 27분쯤 관련 사실이 전달됐다.
4. 발칵 뒤집힌 평양, 북한-쿠바와 외교관계사
한국과 쿠바의 수교로 가장 충격을 받은 당사자는 다름 아닌 북한 정권이다. 냉전 붕괴와 동구권 몰락 이후에도 ‘반미’와 ‘사회주의’를 내걸고 긴밀한 연대 관계를 이어온 형제국에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북한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관영매체에서 평양 주재 외교단 행사 소식을 전하면서 쿠바를 일절 언급하지 않는 등 간접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82회 생일에 즈음해 주북 외교단이 꽃바구니와 편지를 전달하는 행사에 에두아르도 루이스 코레아 가르시아 쿠바 대사가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쿠바 국명은 관련 보도에 언급되지 않았다.
쿠바는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에 성공한 지 약 1년 만인 1960년 8월 29일 북한과 수교했다. 양국은 김일성 주석과 피델 카스트로의 유대관계 속에서 서로 적극적 지지 의사를 표하며 사회주의권 핵심 우방국 관계를 구축했다. 피델뿐 아니라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쿠바의 주요 인사가 북한을 찾기도 했다. 냉전 붕괴 후에도 쿠바는 한국과 수교하지 않은 채 북한의 우방으로 남아 주요 대외정책에 보조를 맞춰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한국과 쿠바의 수교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5. 고립무원, 북한의 향후 외교전략은
북한은 한국과 쿠바의 전격 수교로 한층 심화한 외교적 고립을 타파하기 위해 일본과의 외교 교섭, 그리고 북·중·러 연대 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북·일 정상회담 추진 발언 관련, 지난 15일 담화에서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입장대로 핵·미사일 개발과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의제로 삼지 않을 것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김 부부장이 직접 나서 정상회담 가능성을 암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은 전통적 우방국인 중국·러시아와의 연대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당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대통령 선거 이후 북한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북·러 정상회담 이후 무기 거래와 군사 기술 이전을 비롯해 양국 밀착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수교 75주년을 맞은 중국과도 북·중 정상회담 등 대형 외교 이벤트가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에 새로운 교량 건설을 추진하는 등 인적·물적 교류를 확대할 채비도 갖추고 있다.
6. 한류가 수교에 한몫했다는데
한국이 쿠바와 전격 수교를 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문화 교류가 꼽힌다. 이른바 ‘한류’가 공산주의 국가 문호를 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쿠바에 한국 드라마 등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부터다. 당시 MBC ‘내조의 여왕’을 시작으로 KBS ‘아가씨를 부탁해’, SBS ‘시크릿 가든’ 등 한국 콘텐츠가 쿠바에서 호응을 받았다. 이는 K-팝에 대한 수요 확대로 이어져 한국 전통음식,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쿠바에 약 1만 명의 한류 팬클럽 ‘ArtCor’가 존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외교부는 양국 수교와 관련해 활발한 문화 교류를 통한 양 국민 간 우호 인식 확산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분석하기도 했다.
7. 경제적 영향은
쿠바가 우방국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과의 수교를 결정한 데는 경제협력으로 위기를 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쿠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최악 수준인 -10.9%를 기록한 이후 2021년 1.3%, 2022년 1.8% 등으로 서서히 회복 중이다. 인플레이션은 2022년 76.1%에서 지난해 62.3%로 둔화됐지만 매우 높은 상황이다. 한국 입장에서 쿠바는 2차전지 등 생산에 필수적인 니켈과 코발트가 풍부해 미국의 금수조치가 완화될 경우 광물 공급망 분야 협력도 가능하기 때문에 협력 가치가 크다. 쿠바 현지에서 대사관 등 공관이 생기면 기업과 교민들의 경제 활동 역시 한층 더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과 쿠바의 전격 수교에도 미국의 제재로 양국 간 민간 교역이 곧바로 늘어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8. 미 입장은, 쿠바 갔다가 미국 들어갈 수 있나
한국과 쿠바의 수교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일단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미 정부 당국자는 “국가들은 자국 외교관계의 성격을 결정할 주권적 권리가 있다”며 “한미동맹은 여전히 철통 같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우리는 자국 외교관계의 성격을 결정할 한국의 주권적 권리를 존중한다”며 같은 입장을 확인했다. 다만 적극적 지지나 환영의 뜻을 표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1961년 쿠바와 단교한 뒤 2015년 외교관계를 복원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쿠바 방문을 재차 금지하고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일부 제재가 완화됐지만, 아직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진 않은 상태다.
한국인이 쿠바를 방문하면 추후 미국 입국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미국이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2021년 1월 이후 쿠바를 방문한 사람은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한 비자 면제 입국이 불가능해진다. ESTA는 관광·상용 목적으로 미국을 최대 90일간 무비자 방문할 수 있는 제도다. 쿠바 방문 이력이 있으면 미국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거쳐 별도의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질 뿐 아니라 비자 발급이 거절될 위험도 커진다.
9. 무관 파견 조율 중. 한 - 쿠바 군사적 관계
주재무관 또는 해외무관이라고 하는 무관의 쿠바 파견 여부는 현재 정해지지 않았다. 국방부는 외교부가 쿠바 정부와 주재원 파견 관련 절차를 진행한 후 무관 파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미수교국에서 수교국으로 전환할 경우 영사관에 무관을 직접 파견하거나, 인근 국가 무관이 업무를 겸직하거나, 아예 파견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인근 국가에서 무관을 보내는 등 3가지 경우가 있다. 쿠바의 경우 무관 파견 여부가 아직 정해진 바 없어 논의가 진행 중이다. 무관은 외교공관에 머무르며 군사 관련 외교를 맡는 군인이자 외교관 신분의 장교로, 군사에 관한 주재관을 일컫는다. 주된 업무는 군사 정보의 수집과 군사 및 외교 관련 행사에 참석하며, 중요 행사 시에 외교관의 최측근 경호를 맡기도 한다.
10. 대사관 개설 언제… 남은 절차는
정부는 앞으로 상호 상주공관 개설 등 후속 조치 협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상주공관 개설 등을 위한 양국 실무진의 상대국 방문을 시작하고 점차 고위급 협의 등으로 진전시켜 나갈 예정이다. 한국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쿠바는 지금까지는 멕시코 주재 한국 대사관이 관할했다. 지난 2005년 아바나 현지에 개설된 코트라 사무소가 경제협력 업무를 위주로 담당하며 간접적으로 영사 업무를 조력해 왔다. 대사관 개설 시점과 관련해 외교부는 상대국과의 협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현시점에 예상하는 것은 이르다고 설명했다.
김유진·조재연·서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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