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명씩 늘어난 의사들도 응급실 비울 수 있다…해법은 공공의료

한겨레 입력 2024. 2. 27. 07:05 수정 2024. 2. 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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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서영 의사·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
지난 24일 오전 119구급대가 대전권 상급종합병원인 충남대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중증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서영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기획국장(의사)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일주일을 넘기며 의료 공백이 악화일로에 처해 있다. 무기한 수술 연기로 환자와 그 가족의 불안은 가중되고,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운영에 차질이 생기며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점차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도대체 전공의란 사람들은 누구이기에 이런 파괴력을 몰고 온 걸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생이자 노동자의 신분으로 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전공의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전공의 노동시간은 주당 평균 77.7시간이고, 이들 가운데 52%는 주 80시간 넘게 근무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공의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7.8%를 차지하는 이들이 젊음을 갈아 넣는 가혹한 노동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 착취는 곧 대형병원 이윤의 바탕이 된다.

이번 집단사직에 전공의들이 결집한 주된 이유는 정부가 발표한 의사 증원 2천명 안이었다. 이들의 핵심 요구사항은 ‘의사 증원 전면 백지화’다. 물론 이들은 노동조건 개선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사안은 주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이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대형병원들이 정규직 전문의 고용을 늘리고, 일부 대형병원에 업무가 쏠리지 않도록 의료취약지역 의사를 확충하려면 의료인력을 증원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노동조건이 해소될 텐데, 전공의들은 왜 스스로를 배반하는 요구를 내거는 것일까.

길면 5년, 짧으면 4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의사들은 월급 받는 봉직의로 취직하거나, 스스로 병원을 열어 개원의가 된다. 봉직의, 개원의 연봉은 임금노동자 평균보다 각각 4.2배, 6.8배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영리 추구가 가능한 비필수·비급여 시장이 의사 소득을 끌어올린 결과다. 전공의들의 의대 증원 백지화 요구는 전문의 자격 취득 이후 노동가치를 희소하게 하기 위한, 혹은 자영 의료인으로서의 경쟁자를 줄이기 위한 요구와 일치한다. 당장은 처지가 다른 전공의와 개원의가 한목소리로 증원에 반대하는 기이한 현상 뒤에는 한국 의료체계가 만든 무한경쟁 ‘시장’이 자리한다.

의사 개개인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의료 영역이 이윤 극대화라는 ‘시장’ 논리에 지배받게 됐는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극복 가능한지가 문제다. 의사와 병원이 넘쳐나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응급환자조차 살리지 못하는 비극이 점차 잦아지는 것은 시장만능주의 의료의 모순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의사 인력이 비필수·비급여 시장에 몰리는 것은 의료공급이 ‘시장 경쟁’이라는 게임 속 개별 플레이어들의 판단에 내맡겨져 있어서다.

지금의 ‘시장 실패’는 의사를 늘리되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한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작동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 확충과 적극적인 공공의사인력 양성 제도가 그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의사단체를 향해 칼을 빼 들어 개혁에 나서는 행세를 하지만, 실상은 오로지 증원 한가지를 달성하는 데 몰두해 있을 뿐 시장주의적이고 경쟁적인 의료체계를 개혁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수가 인상, 즉 경제적 유인으로 의사 인력 배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나 이는 지금까지 필수의료 공백을 만든 시장 실패를 반복하는 잘못된 길이다.

전공의들의 파업은 그들의 요구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곧바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비우는 과도한 파업 형태를 택했다는 점 또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윤석열 정부가 이들에게 ‘환자 생명을 볼모로 파업하지 말라’고 비판할 자격은 없다. 돈벌이 의료산업 육성에만 몰두할 뿐 공공의료를 방치해 ‘응급실 뺑뺑이’를 일상화하게 한 것도, 의사들이 사회 건강이 아니라 이권투쟁에 몰두하도록 유도한 장본인도 정부다.

의사 면허의 ‘시장가치’를 높이려는 개원의(그리고 지망생들)들의 몽니와 시장 실패를 방조하는 조악한 증원안을 내놓은 정부. 이 둘의 투쟁은 시장만능주의 체제 내의 파워 게임(힘겨루기)일 뿐이다. 환자들은 이들이 정한 의료 게임에서 언제나 패배자다. 공공의료를 강화해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는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이 소모적인 싸움에 항구적으로 저당 잡히게 된다. 늘어난 연 2천명의 의사들이 ‘사다리 걷어차기’ 감원투쟁을 벌이며 또 응급실을 비울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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