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라라 하더니 급할 때만 찾나”… 또 소방수로 동원된 공공병원
"지원엔 무관심, 급할 땐 동원" 비판
공공의료 비중 5% "불균형 개선해야"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집단 사직서를 내고 떠난 빈자리에 공공병원들이 소방수로 또다시 긴급 호출됐다. 정부는 전국 114개 공공병원에 평일 연장 근무, 주말·휴일 근무 지침을 내렸다. 건강보험 수가 인상, 각종 평가에서 불이익 방지 등 보상책도 제시했다. 하지만 평상시엔 고사 직전인 공공병원을 나 몰라라 하다가 코로나19 대유행에 이어 위기가 닥칠 때만 찾는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각 지역의 의료원과 적십자병원에서도 전공의들이 빠져나가 전문의들이 야간 당직 등 비상진료에 투입되고 있다. 공공병원은 대학병원과 협력해 전공의를 파견받는데 인원이 많지 않고 수련병원이 아닌 곳도 있어서 상급종합병원만큼 타격이 크진 않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서울시립 공공병원 3곳은 의사 45명을 충원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26억 원을 긴급 지원받았다.
하지만 민간병원에 비해 인력·재정 면에서 허약한 공공병원들이 의료공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전공의 집단 이탈이 장기화되면 남은 의료진의 업무 과부하와 체력 소진이 심해질 수 있어서 장기적으로 당직 의사 채용을 고민하고 있다”며 “하지만 연봉 4억 원을 줘도 의사가 오지 않는 상황이라 어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공공병원이 전공의 이탈에 연장 진료까지 겹친 악조건에도 버틸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환자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다. 병원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진료 건수는 평상시와 비슷한 수준이고, 오히려 주말에는 경증환자들이 응급실 방문을 자제해 응급실 내원 환자 수는 다소 줄어든 곳도 있다고 한다. 환자들의 상급종합병원 선호 경향이 강해진 데다 공공병원이 코로나19 기간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하면서 일반 병원 기능이 위축된 탓이 크다.
공공병원들은 아직도 코로나19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최전방에서 감염 확산을 막고 환자를 치료하는 동안 일반 환자는 받을 수가 없어서 단골 환자들이 떠났고 수술을 하던 의사들은 수술을 못해 병원을 나갔다. 코로나19는 끝났지만 인력 결손은 메워지지 않았다. 일부 병원에선 의사가 없어 환자를 받지 못하는 진료과도 있다.
재정도 크게 악화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공개한 2022년 회계연도 결산서에 따르면, 공공병원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일반 병상을 운영하지 못해 큰 손실을 봤다. 일례로 국립중앙의료원은 ‘의료 손실’이 2019년 340억 원이었지만, 2020년 703억 원, 2021년 577억 원, 2022년 727억 원으로 늘어났다. 서울적십자병원의 의료 손실도 2019년 54억 원에서 2020년 354억 원, 2021년 116억 원, 2022년 239억 원으로 불어났다.
올해 정부는 공공병원 회복을 위해 국비와 지방비를 더해 1,000억 원가량 배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35개 지방의료원의 적자 3,200억 원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일부 지방의료원은 심각한 경영난에 도청과 시중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국립중앙의료원은 공공병원 경영 정상화에 최소 3.9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가뜩이나 사람도 없고 돈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전공의 이탈로 비상진료 책임까지 떠맡은 공공병원 입장에선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민재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국가가 안정적인 공공의료 운영 구조도 만들지 못하면서 매번 위기 상황에서만 공공병원을 동원해 소모시킨다는 박탈감이 쌓여 있다”고 전했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도 성명을 통해 “공공병원은 비상진료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며 “정부가 그간 경제성을 이유로 공공병원을 무책임하게 방치해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공병원 육성 정책이 제대로 마련돼 공공의료와 민간의료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기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남짓이고 병상 수는 9.7%에 불과한데도, 정부가 의대 증원과 함께 추진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병원 지원 방안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공공의료 비중이 30%만 됐어도 전공의 이탈로 의료시스템이 마비되는 일은 없었을 거란 비판도 많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필수의료·지역의료 강화는 공공병원을 튼튼하게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공공병원 기능이 강화돼야 재난 상황에서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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