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사업가 ‘식용견 구세주’로 인생 2막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한 한국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어요. 한발 더 나아가 지구촌 차원에서 국제 협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한국이 더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지난 23일 본지와 만난 젠린(65) 세계애견연맹(WDA·World Dog Alliance) 창립자는 “빨라야 연말에나 (개 식용 금지) 법이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에 놀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김창준·로드니 데이비스·제프 데넘·조 크롤리 전 미국 연방 하원 의원 등과 함께 방한해 이 법안 발의자 중 한 명인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등과 만나 향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WDA의 핵심 활동은 개를 지구촌 인류의 먹거리 목록에서 지우는 것이다. 각국의 식용견 농장과 음식점에 있던 개들을 데려와 입양시키거나 여생을 돌봐주는 게 일선 비영리단체의 일이라면, 이들의 활동을 후원하고, 개 식용 금지의 당위성을 홍보하며, 입법이 이뤄지도록 각국 정치인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이는 게 그의 일이다.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그는 전기·전자·물류업을 중심으로 하는 굉마그룹을 일구며 사업가로 성공했다. 2009년 경영 일선에서 내려온 후에는 개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글로벌 로비스트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홍콩과 일본·미국을 오가면서 살고 있는 그는 거주지에 도합 20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그는 이런 활동을 벌인 이유에 대해 “10년 전의 기억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4년 아버지의 고향인 중국 구이저우의 한 시장을 방문했다가, 매대에 진열된 식용견들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 한국 등 식용견 문화가 남아있는 나라들을 방문해 현장을 찾았어요.”
그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우리 속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평생을 갇혀 지내야 하는 개들의 눈빛과 마주했을 때의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지원 등으로 만들어진 현장 동영상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일각의 비판 속에서도 여론을 환기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WDA와 협업해 농장 식용견을 데려와 입양시키거나 돌봐온 동물 단체 케어의 김영환 대표는 “각국 의원 등 정치권을 겨냥해 꾸준히 진행해온 젠린의 로비 활동이 그간 우리의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젠린은 “한국은 식용견 문화가 남아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국제사회에 깊이 각인돼 있다는 점에서 세계는 이번 조치로 ‘역시 한국은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개를 음식으로 먹는 풍습이 남아있는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돼 있지만 그 나라들은 공산당 일당독재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그래서 더 쉬울 수 있다. 윗선에서 한번 마음만 먹으면 바로 톱다운(top-down)식으로 실행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이렇게 법제화가 속속 실행될 경우, 궁극적 목표인 ‘개·고양이 식용 금지 국제 협약’ 체결에 다가갈 수 있다고 그는 기대한다.
‘각국에서 식용견을 사육·유통·조리해온 업자들은 대부분 생계형 서민들인데 이런 조치가 가혹하다는 여론도 있다’는 지적에 그는 “그런 비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법안 실시까지 주어진 유예 기간 동안 생계 수단 전환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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