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 응급 호출만 5번… 이러다 하늘에서 개원?

서보범 기자 2024. 2. 27. 04:2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산서 병원 근무하는 성수환씨
26일 부산 중구 미소안의원에서 근무 중인 의사 성수환씨가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 성씨는 지난 9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캐나다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에서 ‘닥터콜’을 받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비행기를 긴급 착륙시키자고 제안했다. /김동환 기자

지난 9일 오후 8시(한국 시각)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캐나다 토론토행 에어캐나다 항공편. 북극 상공을 지나던 비행기 안에서 한 20대 여성이 오른쪽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복도에 쓰러졌다. 비행 중 응급 환자 치료를 위한 ‘닥터콜’을 받은 성수환(36)씨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성씨는 “처음에는 오른쪽 다리에만 증상이 있었지만, 20분 뒤 왼팔과 왼쪽 다리에 통증을 호소했다”며 “이는 혈전이 계속 혈관을 돌아다닌다는 걸 의미하는데, 혈전이 뇌나 심장으로 가면 급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20대 여성 승객을 살리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는 성씨의 주장에 따라 비행기는 미 알래스카 앵커리지국제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환자는 증상이 시작된 지 약 2시간 만에 앵커리지 공항에 나온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이송됐다고 한다.

부산의 한 병원에서 일하는 성씨는 세미나 참석차 캐나다 토론토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성씨는 “닥터콜을 받았을 때 생각할 새도 없이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며 “그저 환자를 살리자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2년 전 똑같은 증상을 호소한 혈전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어 강한 확신을 갖고 기장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성씨는 “앵커리지를 경유하면서 5시간이나 항공편이 늦어졌다”며 “토론토에 밤 12시가 돼서야 도착했지만, 항의 한 번 없었던 290여 명의 다른 승객들이 고마웠다”고 했다.

성씨는 지난 17일 토론토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에서도 닥터콜을 받았다. 당시 환자는 20대 한국인 유학생이었는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황이었다고 한다. 성씨는 “환자가 과거에도 실신해 쓰러진 적이 있다는 점을 듣고 ‘잠시 안정을 취하면 의식을 되찾고, 1시간 정도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승무원과 환자를 안심시켰다”고 했다. 이 유학생은 이후 의식을 되찾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고 한다.

미국·캐나다 등 북미 국가들은 의사 상대 민사 소송이 많아 닥터콜에 선뜻 응하기 어렵다고 성씨는 전했다. 성씨는 “함부로 환자를 건드렸다가 상태가 악화할 경우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도 ‘골치 아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웬만하면 닥터콜에 응하지 않는 게 낫다’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아니면 환자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닥터콜에 응했다고 한다.

성씨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닥터콜을 받았다. 주변 의사 지인들 사이에서도 드문 경우라고 한다. 의대생 시절이었던 2015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처음으로 닥터콜에 응했다. 2019년과 2022년에도 닥터콜로 응급 환자를 구했다. 주변에서는 “환자를 몰고 다니냐” “비행기에서 개원해야겠다”는 농담 섞인 반응도 나왔다. 그는 “항상 반사적으로 닥터콜에 응했고,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나설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성씨는 전북 익산의 한 보육원을 20년째 후원하고, 아이들을 위한 멘토링 봉사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전공의 파업과 관련해 “의사 집단 전체가 환자를 이용한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커지는 상황에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의사분들이 환자와 이웃을 위해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고 있다”며 “이처럼 선의의 의술을 펼치는 분들이 현장에 많다는 점을 우리 국민이 헤아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