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고독사 시대… 간병비·49재까지 은행에 맡겨요”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추세로 사후 상속을 유언장보다는 은행에 맡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은행에 신탁하는 목적도 노후 간병 비용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물론, 장례와 봉안, 49재 등 점점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김하정(52)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지난 26일 유언대용신탁(리빙트러스트)의 흐름을 이같이 전하며 “은행 신탁은 고객의 명확한 의사가 확인될 때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건강할 때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2010년 금융권 최초로 ‘하나 리빙트러스트’ 브랜드로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해 15년째 확대 운용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2000년 하나은행에 입행한 이후 자산가 고객을 담당하는 PB(프라이빗 뱅킹) 업무를 주로 담당해왔다.
- 유언대용신탁이 뭔가?
“개인들은 재산을 자기 뜻대로 사후에 상속하기 위해 대체로 유언장을 많이 쓴다. 하지만 유언장 작성은 법적 요건이 까다롭고, 수증자가 집행인인 경우 심리적 압박감이나 당사자 간 의견 불일치 때문에 유언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인 피상속인과 금융기관이 맺는 계약에 따라 금융기관이 상속 배분을 하게 된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직접 재산을 관리할 수 있고, 상속인, 상속 비율, 상속 재산 지급 시기 등을 자기 뜻대로 설계할 수 있다.”
- 어떤 사람들이 찾아 오나?
“70대 A씨 부부는 4남매를 두었는데, 그중 3자녀는 모두 전문직 등이어서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다른 사람 말에 잘 속기도 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 부모 사후에 제 몫의 재산 관리를 못 하고 형과 누나에게 휘둘릴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작은 상가와 금전 등의 재산을 은행에 맡기면서 막내아들이 65세 될 때까지는 매년 일정액을 주다가 그 후에 상가 소유권을 넘겨주도록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했다.
초등학생 자식을 둔 30대 엄마 B씨가 암에 걸렸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해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자식에게 마음이 쓰였다. 남편이 있어 안심이지만 아직 젊으니 재혼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금 본인 명의로 된 재산은 어린 자식에게 주어 성인이 되었을 때 든든한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은행에 금전을 맡기고 자식이 30세가 되었을 때 이전해 주기로 계약했다.”
- 또 다른 사례가 있다면?
“치매 등 질병에 걸렸을 때 재산과 치료비 관리가 걱정인 1인 가구, 미성년자나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생전에 쓰다 남은 재산을 사후에 특정한 곳에 기부하고 싶은 사람, 기업을 특정인에게 승계하고 싶은 오너, 사후에 49재를 지내달라는 사람 등 다양한 고객들이 상담을 신청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이라고 하면 사후 상속 재산 배분만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미성년 자녀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찾는 사람도 많다.”
- 자녀들에게 노후나 사후를 맡기면 되지 않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화목하게 지내던 자녀들이 상속이 시작되면 서로 의견이 갈라져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또 요즘에는 세계 곳곳에 자녀들이 흩어져 있고 노부부만 국내에 거주해 재산을 관리하기 힘든 사례도 많다. 재혼 후 새로 생긴 자녀와 재혼 이전 자녀 간에 재산 분쟁을 걱정하는 등 가족 형태의 변화로 새로운 현상이 많이 생기고 있다. 자녀가 해외 거주 중이라면 은행 신탁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 다양한 고객 요구에 어떻게 일일이 맞추나?
“일일이 맞춤 컨설팅을 한다. 예를 들어 치매에 걸렸을 경우 신탁 재산을 간병비 등 치료비로 먼저 쓰고 사후에 남은 재산을 상속인들에게 특정 비율로 상속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상속인이 특정 나이가 될 때까지 은행이 관리할 수도 있다. 병원 치료, 사후 기부나 상속, 봉안과 49재, 후견인 지정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시해 고객의 선택 폭을 넓혀준다.”
- 매년 상담 건수는?
“전담 인력 22명이 전화나 대면으로 대략 2500~3000건을 상담한다. 계약 체결 건수를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매년 약 110% 정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작년 계약 건수를 고객 연령별로 분류해 보면 65세 미만이 25%, 65세 이상~80세 미만이 25%, 80세 이상이 50% 정도 된다.
출산율 저하로 1인 가구 신탁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부부 고객은 서로 상의하지만 자녀에게는 알리지 않고 오는 일이 많다.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돌볼 방법을 묻는 고객도 간혹 있다.”
- 신탁의 장점은?
“수탁자인 금융기관은 위탁자인 고객이 사망하면 계약대로 상속 재산을 분배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상속 절차가 객관적이며 빠르다. 금융기관이 위탁자 뜻대로 상속을 집행한다는 장점이 있어 이미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신탁을 통한 상속이 활성화되어 있다.”
- 고객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신탁은 내 재산을 보호하고 제대로 쓰이기 위해 은행과 계약하는 것이므로 고객의 명확한 의사가 확인될 때 계약이 가능하다. 건강할 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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