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고독사 시대… 간병비·49재까지 은행에 맡겨요”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4. 2. 2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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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김하정 하나銀 리빙트러스트센터장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추세로 사후 상속을 유언장보다는 은행에 맡기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은행에 신탁하는 목적도 노후 간병 비용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물론, 장례와 봉안, 49재 등 점점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김하정(52)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지난 26일 유언대용신탁(리빙트러스트)의 흐름을 이같이 전하며 “은행 신탁은 고객의 명확한 의사가 확인될 때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건강할 때 미리미리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2010년 금융권 최초로 ‘하나 리빙트러스트’ 브랜드로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해 15년째 확대 운용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2000년 하나은행에 입행한 이후 자산가 고객을 담당하는 PB(프라이빗 뱅킹) 업무를 주로 담당해왔다.

김하정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인터뷰에서 "사별, 이혼, 자녀 해외 체류 등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노후와 사후의 재산 관리에 관한 다양한 상담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훈 기자

- 유언대용신탁이 뭔가?

“개인들은 재산을 자기 뜻대로 사후에 상속하기 위해 대체로 유언장을 많이 쓴다. 하지만 유언장 작성은 법적 요건이 까다롭고, 수증자가 집행인인 경우 심리적 압박감이나 당사자 간 의견 불일치 때문에 유언대로 집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위탁자인 피상속인과 금융기관이 맺는 계약에 따라 금융기관이 상속 배분을 하게 된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직접 재산을 관리할 수 있고, 상속인, 상속 비율, 상속 재산 지급 시기 등을 자기 뜻대로 설계할 수 있다.”

- 어떤 사람들이 찾아 오나?

“70대 A씨 부부는 4남매를 두었는데, 그중 3자녀는 모두 전문직 등이어서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막내아들은 다른 사람 말에 잘 속기도 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 부모 사후에 제 몫의 재산 관리를 못 하고 형과 누나에게 휘둘릴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작은 상가와 금전 등의 재산을 은행에 맡기면서 막내아들이 65세 될 때까지는 매년 일정액을 주다가 그 후에 상가 소유권을 넘겨주도록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했다.

초등학생 자식을 둔 30대 엄마 B씨가 암에 걸렸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입학해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자식에게 마음이 쓰였다. 남편이 있어 안심이지만 아직 젊으니 재혼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지금 본인 명의로 된 재산은 어린 자식에게 주어 성인이 되었을 때 든든한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은행에 금전을 맡기고 자식이 30세가 되었을 때 이전해 주기로 계약했다.”

일러스트=김의균

- 또 다른 사례가 있다면?

“치매 등 질병에 걸렸을 때 재산과 치료비 관리가 걱정인 1인 가구, 미성년자나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생전에 쓰다 남은 재산을 사후에 특정한 곳에 기부하고 싶은 사람, 기업을 특정인에게 승계하고 싶은 오너, 사후에 49재를 지내달라는 사람 등 다양한 고객들이 상담을 신청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이라고 하면 사후 상속 재산 배분만 생각하는데, 요즘에는 미성년 자녀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찾는 사람도 많다.”

- 자녀들에게 노후나 사후를 맡기면 되지 않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화목하게 지내던 자녀들이 상속이 시작되면 서로 의견이 갈라져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또 요즘에는 세계 곳곳에 자녀들이 흩어져 있고 노부부만 국내에 거주해 재산을 관리하기 힘든 사례도 많다. 재혼 후 새로 생긴 자녀와 재혼 이전 자녀 간에 재산 분쟁을 걱정하는 등 가족 형태의 변화로 새로운 현상이 많이 생기고 있다. 자녀가 해외 거주 중이라면 은행 신탁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치매 이후 간병과 재산 관리에 관심을 갖는 고령층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기억키움 쉼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라남도 장성군 치매안심센터. /뉴시스

- 다양한 고객 요구에 어떻게 일일이 맞추나?

“일일이 맞춤 컨설팅을 한다. 예를 들어 치매에 걸렸을 경우 신탁 재산을 간병비 등 치료비로 먼저 쓰고 사후에 남은 재산을 상속인들에게 특정 비율로 상속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상속인이 특정 나이가 될 때까지 은행이 관리할 수도 있다. 병원 치료, 사후 기부나 상속, 봉안과 49재, 후견인 지정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시해 고객의 선택 폭을 넓혀준다.”

- 매년 상담 건수는?

“전담 인력 22명이 전화나 대면으로 대략 2500~3000건을 상담한다. 계약 체결 건수를 공개하기는 어렵지만, 매년 약 110% 정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작년 계약 건수를 고객 연령별로 분류해 보면 65세 미만이 25%, 65세 이상~80세 미만이 25%, 80세 이상이 50% 정도 된다.

출산율 저하로 1인 가구 신탁 시장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부부 고객은 서로 상의하지만 자녀에게는 알리지 않고 오는 일이 많다.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돌볼 방법을 묻는 고객도 간혹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 신탁의 장점은?

“수탁자인 금융기관은 위탁자인 고객이 사망하면 계약대로 상속 재산을 분배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상속 절차가 객관적이며 빠르다. 금융기관이 위탁자 뜻대로 상속을 집행한다는 장점이 있어 이미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신탁을 통한 상속이 활성화되어 있다.”

- 고객들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신탁은 내 재산을 보호하고 제대로 쓰이기 위해 은행과 계약하는 것이므로 고객의 명확한 의사가 확인될 때 계약이 가능하다. 건강할 때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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