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20] 고양이들의 왕
화가 발튀스(Balthus, Balthazar Klossowski de Rola·1908~2001)는 프로이센 출신의 유복한 부모 아래 파리에서 태어났다. 92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평생 생일은 스물두 번뿐이었다. 4년에 한 번 오는 2월 29일에 태어났는데, 그나마 2000년은 윤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 태어나서 그런지 그는 어릴 때부터 특별한 예술적 재능이 있었다. 열두 살에 길고양이를 돌보다가 잃어버려 찾으러 나섰다가 겪은 사연을 그림 40장으로 그렸는데,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 표현력에 감탄한 나머지 직접 서문을 쓰고 책으로 출판했을 정도다.
성인이 된 뒤로도 발튀스는 유난한 애묘인(愛猫人)이었다. 늘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았고 당연히 그림에 수많은 고양이가 등장한다. 자신을 ‘고양이들의 왕’이라고 명명한 자화상에서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화가가 과거 왕들의 초상화처럼 허리에 한 손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옷깃을 잡은 채 거만한 태도로 서 있다. 큰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를 바짝 세우고 다가와 종아리에 머리를 부비는데, 고양이의 이런 행동은 주인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믿음을 표현한다. 상체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길게 뻗은 화가의 다리는 아마도 아래서 올려다보는 고양이의 시점일 것이다.
화가 옆 의자 위에 채찍이 있다. 고양이란 인간에게 애착이 있으면서도, 야생성을 버리고 완전히 길들여지지는 않는 오묘한 존재다. 고양이왕을 자처한 발튀스는 끝없이 자유와 일탈을 꿈꾸지만, 인간 사회에 적응해 살고 있는 스스로의 내면을 채찍으로 다스리고자 했던가 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사회 통념을 벗어난 자극적 주제로 논란을 빚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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