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비욘드 유토피아' 김성은 목사"젊은이들 북한 가서 살아 봐야"

이은지 입력 2024. 2. 27.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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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4년 02월 25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김성은 목사, 최대원 프로듀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오늘 모실 분은 실제 탈북 과정을 고스란히 촬영해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주인공들입니다. 김성은 목사 그리고 최대원 프로듀서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성은 목사 : 안녕하세요.

◎ 최대원 프로듀서 : 안녕하세요.

◆ 이성규 : 예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 이게 어떤 영화예요? 우리 목사님부터 말씀해 주시죠.

◇ 김성은 목사(이하 김성은) : 이 비욘드 유토피아는요. 사실 간단하게 말하면 북한을 탈북한 탈북자 가족, 그런데 그 가족 중에 탈북에 성공한 케이스와 또 탈북하다가 체포돼서 잘못된 케이스죠. 이 두 가지를 나눠서 이 영화에 담고 있는데요. 지상 낙원이라는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탈북 과정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 이성규 : 그거 좀 소감이 좀 남다르시겠어요?

◇ 김성은 : 지난 2014년 동안 제가 다큐멘터리를 한 10편 정도 했는데요. 그중에 여러 작품도 있었지만 이 작품에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그 옆에 나오신 우리 최대원 감독님, 굉장히 저하고 이 다큐멘터리로 친하게 됐는데요. 과거에는 탈북 과정이 그래도 현재보다는 조금 쉬웠다고 할까요? 물론 그때도 어려움은 컸지만 지금보다는 진짜 그래도 조금은 숨 쉴 만했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어려운 가운데 우리 최 감독님, 24시간 동안 같이 밀림을 넘고 생사를 가르면서 굉장히 좀 저에게는 뜻깊은 그런 작품입니다.

◆ 이성규 : 예 그렇게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한 5년 제작을 하셨다면서요? 아까 막 힘든 말씀 많이 하셨는데 특히 어떤 게 그렇게 어려웠어요?

◎ 최대원 프로듀서(이하 최대원) : 힘든 거는 다 이제 다큐멘터리니까 다 힘들었죠. 저희 버짓도 많이 없었고 그리고 중간 중간에 이제 저희가 원래 계획이라는 게 다큐멘터리는 이제 촬영하면서 바뀌게 마련인데 계획했던 거랑 자꾸 바뀔 때랑 근데 다행히 저희가 목사님이랑 연결이 됐고 목사님께서 많이 도와주셔가지고 끝까지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 네 그런데 이제 영화를 보니까 이 태도가 지나치게 연민하지도 않고 또 지나치게 관망적이지도 않다 뭐 이런 느낌이 들어요. 어떠셨어요? 제작 태도는?

◎ 최대원 : 저희는 다양한 어떤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최대한 이분들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게 저희 목표였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정말 이렇게 가깝게 항상 이렇게 얘기하면서 소통하면서 지내야 됐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멀리 떨어져서 이제 촬영만 하기는 또 애매한 상황들이 또 있더라고요. 그럴 때는 또 조금씩 서로 특히 이소연 씨 같은 경우에는 대화도 또 많이 하고 그분이 또 이제 아들이 이제 북송이 돼버렸으니까 그때 굉장히 절망하셨거든요. 그때는 저희가 제작진이긴 하지만 심리적으로라도 조금 많이 도와드려야겠다 싶어서 그 부분에 되게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 두만강 넘어서 중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 정글을 막 헤치고 그렇게 열심히 찍으시고 그랬는데 이때 막 위험한 건 없었어요?

◎ 최대원 : 굉장히 위험했죠. 저희 처음에 이제 그 브로커들이 베트남 야산에 그냥 아무 데나 갑자기 내려줬거든요. 저희도 어디에서 내려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니까 갑자기 이제 깜깜한 곳인데 내려서 머리를 숙이고 이렇게 저기 정글로 저희가 바로 들어갔어요. 거기서부터 이제 정말 악몽이었죠. 목사님도 한 대여섯 차례 미끄러지셨고 비탈길을 거기에 이제 무슨 산책로나 이런 게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비탈길 거기를 저희가 한 1시간 반 정도 걸었었는데 그때 저도 한 대여섯 번 넘어졌거든요. 근데 이러다가 이거를 6시간 하면 나도 죽을 수도 있겠다 이 생각이 잠깐 들더라고요.

◆ 이성규 : 그 밤이에요. 낮이에요?

◎ 최대원 : 밤이었죠. 깜깜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한 2시간째부터는 길 같은 느낌의 어떤 오솔길 같은 느낌은 있었어요. 가다가 또 절벽이 있으면 거기 이제 나무뿌리 잡고 올라가고 또 내려오고

◆ 이성규 : 근데 그때 목사님이 대강 아시는 코스였어요. 아니면 처음 가는 코스였나요?

◇ 김성은 : 밀림은 자주 가는 편인데도 항상 그 길이 새로운 길이에요. 지난달에 갔다 왔던 똑같은 길도 뭐 예를 들어서 현지인들이 정글 칼이 있어요. 뭐 그런 걸로 풀숲을 헤쳐도 다시 한 달만 지나서 가보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돼 있고 그래서 그 현지에서는 그 현지인들 안내원이 없이는 정글을 넘는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 이성규 : 예 근데 영화에 노 씨 일가의 탈북 과정도 나오고 그 조금 전에 말씀하셨던 이소연 씨 탈북 브로커에게 이게 속은 건지 3천만 원 주고도 아들의 생사조차 모른다. 그때 얘기를 좀 해주시죠.

◇ 김성은 : 노씨 가족은 사실 정말 기적적인 이야기인데요. 먼저 이 비욘드 유토피아에는 원래는 이 제작사가 아까 감독님이 얘기했다시피 많은 제작비가 없는 아주 작은 영화사였어요. 그래서 탈북민 한 명만 구출하는 것을 찍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실은 그때 컨택이 된 게 바로 이소연 씨였어요. 이소연 씨 아들을 한 명만 왔었잖아요. 그래서 이소연 씨 아들을 이제 구출하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이제 누구나 그런 것 같아요. 아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올 수 있다면 그런데 저희들한테 부탁을 했지만 좀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사람을 또 다른 제2의 사람을 물색한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은 준비는 저희가 했는데 다른 브로커가 북한에서 이소연 씨 아들을 데리고 온 다른 브로커가 자기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가 고발한 케이스예요. 그래서 안타깝게 저도 끝까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구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소연 씨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올 수 있다면 하다가 오히려 브로커한테 금방 말씀하신 수천만 원의 돈을 뺏기고, 그래서 탈북민들이 오다가 그렇게 브로커한테 의지도 하지만 브로커에 의해서 또 체포돼서 북송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거든요. 근데 이소연 씨가 이렇게 불행하게 아들이 북송된 상태에서 저희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에 이 노씨 일가족이 백두산을 넘어온 거예요. 그런데 이 노씨 일가족은 이 여기에 나온 우영복 씨의 동생과 언니가 먼저 한국에 와 있었어요. 그 사람들 때문에 북한에서 이 노 씨 일가족이 이제 처벌을 받고 지방으로 추방이 되는 경우가 돼서 이들이 이제 도저히 북한에서 남아 있을 수 없어서 그냥 대책도 없이 그냥 무조건 탈출 중국으로만 오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왔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정말 운명적으로 우리 갈렙 선교회가 있는 탈북민을 돕는 그 초소로 아마 일주일 만에 그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왔다고 그러죠. 그래서 저희하고 연결이 돼서 이 가족을 구출하기로 영화사하고 이야기가 돼서 그렇게 구출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 최대원 : 사실 저희는 마지막까지 그때 좀 고민을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도 하고 저희가 애초에 계획했던 게 아닌데 목사님은 이게 영화를 찍든 말든 나는 구출할 거다 하셔서 그러면 저희도 그때 그럼 이걸 이렇게 찍는 게 맞는 것 같다 생각해서 저희도 같이 하게 됐던 거죠.

◆ 이성규 : 경비가 좀 더 많이 들었어요?

◎ 최대원 : 목사님이 많이 내셨죠. 저희는 일부만

◇ 김성은 : 거기는 원래 똑같았고요. 그런데 이제 사람의 생명을 한 명만 찍기로 했다. 비용이 한 명밖에 없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5명의 가족이 왔는데 4명은 죽으라고 버릴 수는 없잖아요. 교회라는 게. 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구출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 아까 이소연 씨 아들 탈북 과정 말씀도 하시고 하셨는데 그 북한의 내부 정보는 어떻게 얻어요?

◇ 김성은 : 이걸 어떻게 여기 방송에서 얘기하기가 참 어려운데요. 그냥 쉽게 얘기하면 갈렙 선교회가 전 세계에서 북한 내부 영상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국내에 많은 북한 정보라든지 영상이라든지 또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텔레비전에 이렇게 보시다 보면 가끔 화면 제공 갈렙 선교회 북한 내부 영상들은 거의 저희들이 국내에서 한 90%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네 근데 감독님이 보기에 지금 이게 이제 방송에서 말씀 못할 만큼 국가적인 차원의 이야기들인데 이야기 여기서는 지금 개인의 이야기로 영화에서는 주로 초점을 맞췄습니다. 왜 그렇게 하신 거죠?

◎ 최대원 : 보통 이제 그전에 탈북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영상물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런 좀 거시적인 정치 지형학적인 문제들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근데 거기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사실 그 안에 있던 그 안에 정말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좀 많이 지워지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그런 얘기 어차피 저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얘기하기보다는 이분들의 진짜의 이야기를 탈북자 분들 또 거기에 포함된 또 그 탈출을 도와주시고 계신 목사님 그러니까 정말 사람들의 얘기를 하면 그게 가지는 힘이 더 크지 않을까했습니다.

◆ 이성규 : 목사님께서 23년 동안에 1천 명 넘는 탈북자를 도운 걸로 기록이 나와요. 근데 어떤 계기로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하셨습니까?

◇ 김성은 : 저는 이 일을 두고 이제 좀 운명이라고 얘기를 해요. 물론 목사가 운명이라고 얘기하면 그렇지만 제가 이제 어려서부터 이제 북한에 대한 관심이 좀 남달랐어요. 그런데 제가 목회자가 되고 23년 전에 두만강을 가게 됐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랬을 때 사실 7살도 안 되는 아주 작은 어린 꼬마가 저한테 손을 잡으면서 같은 민족끼리 같이 먹고 삽시다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 이성규 : 7살 꼬마가요.

◇ 김성은 :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왜 그러냐면 그 정도 나이 아이가 두만강을 넘는다는 것은 진짜 목숨을 거는 거거든요. 이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너무 다 체포되면 문제가 되지만 아이들은 그냥 꿀밤 한 대 맞으면 되거든요. 북한이라도. 그러다 보니까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어린 아이들이 그 죽음의 강을 넘어오는 일들이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기가 막히게 한국 사람인지 알아보고 국어를 하고 그때 이제 제가 마음이 너무 아파서 하나님 이 탈북자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겠습니다 했는데 운명적으로 그때 우리 또 아내가, 지금 아내가 탈북해서 넘어왔고 저를 보면서 이제 그 당시에 제가 키도 작지만 뚱뚱하고 이러니까 우리 김정일 장군님 닮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다가왔고 근데 굉장히 똑똑한 여자분이었어요. 그래서 성경 백독반에서 공부하면서 굉장히 똑똑한 자매였는데 제가 이제 뭐 결혼을 목적으로 한 건 아니었고요. 성경 공부 하는데 너무 똑똑한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 가서 신학을 하지 않으렵니까? 제가 했을 때에 그것도 맞았고. 그러다 보니까 또 정이 들고 그래서 한국말로 콩깍지였나 보죠 서로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 구출해서 데리고 가야 되는데 그 당시에는 뭐 어디로 갈 루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몽골 사막으로도 가보고 베트남 밀림, 라오스 밀림 이런 동남아 밀림도 가보고 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봐서 또 밀항으로 또 이렇게 배로 몰래 가는 것도 생각해보고 그러면서 모든 걸 알아봤죠. 그랬는데 아내는 비행기로 들어오게 됐고 오히려 제가 이제 세상 말로 생고생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는데 그 이후로 계속 탈북자들을 도와주면서 제가 갔던 몽골로 데려오고 동남아 국가로 데려오고 또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지만 천국의 국경이라고 에미상 노미네이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작품인데요. 밀항이라고 탈북자들을 배로 한국으로 구출해 오는 거가 있는데 제가 밀항을 알아본 이후로 또 그렇게 또 최초로 탈북자를 밀항으로 데리고 오기도 하고 그래서 아내와 운명적으로 됐던 일들이 사람을 또 이렇게 구출한 그런 계기가 됐습니다.

◆ 이성규 : 우리가 이제 이쯤에서 노래 하나 듣고 가시죠. 두 분 중에 어떤 분이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 김성은 : 제가 처음에 중국에 갔을 때 탈북자들 만났을 때 북한분들이 이 노래를 굉장히 잘 알고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젊었을 때 불렀던 노래라서 같이 불렀는데요. 양희은의 아침 이슬이요.

◆ 이성규 : 예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김성은 목사께서 추천하신 양희은의 아침 이슬 듣고 오겠습니다. 양희은의 아침 이슬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탈북 인권 다큐 비욘드 유토피아의 제작진 김성은 목사 그리고 최대원 프로듀서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으셨는데 이렇게 실제 탈북 과정을 담아서 미국 팀들하고 같이 제작을 하신 게 있죠. 그 계기는 어떻게 돼요?

◇ 김성은 : 사실 미국 팀들하고는 한 15년 전에 HBO하고 저하고 제작을 한 번 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을 구출하는 일들을 했었는데요. 그 때도 그 사실을 HBO하고 할 때도 외국인하고 저는 안 하려고 했어요. 외국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들이 중국에 가면 무엇보다도 외모가 눈에 띄어서 탈북자를 살리고자 하는 거지 이것을 뭐 제 개인이 탈북자 구출한 걸 알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또 이곳에 같이 왔던 이 비욘드 유토피아의 제작자들도 외국인이고 그래서 저는 굉장히 반대를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하지만 이분들이 조금 다른 면모가 있어요. 우먼 파워예요. 전부 다 여성분들이고 열정이 있어요. 그래서 수미 테리 박사님 같은 경우에는 또 전직 CI에서도 아시아 담당관이었고 북한에 대해서도 또 잘 알고 계시고 그러면서 소통이 서로 돼서 북한에 대한 어떤 한 가지 공감들이 탈북민들에 대한 이런 것들이 이루어져서 같이 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 얼마 전에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참여하셨었죠?

◇ 김성은 : 예 똑같은 얘기인데요. 사실 최종 후보까지 올랐으나 상은 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상을 못 탄 것에 대해서 좀 처음에는 안타까웠는데요. 그 영국 영화제 그 규모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고 사실 엄청난 사람들이 그 상을 타기 위해서 왔는데 저희들 최종 후보만 된 것만 해도 굉장히 큰일을 했다, 그래서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 이성규 :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탈북민들이 더 힘들어졌죠. 그리고 막 수수료도 오르고 또 강화되고,

◇ 김성은 : 그게 이제 여기 이 부분은 좀 길더라도 자세히 설명이 돼야 될 것 같은데요. 사실 코로나로 어려워서 국경이 봉쇄되고 많은 탈북민들이 고통당한 건 맞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탈북민이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고통 받은 거였거든요. 중국도 국가에서 국가의 어디 이동을 못하게 하다 보니까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피신할 곳이 없어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됐고 작년에 언론에 통해서 한 600명이 북송됐다. 인권 문제로 전 세계가 이야기를 했고요. 무엇보다도 작년에 7월 1일부로 중국이 탈북자나 중국을 조금 나쁘게 표현하면 반 간첩법이라는 것을 발의해서 굉장히 심한 법을 지금 만들어 개정했어요. 그래서 그러다 보니까 탈북자들을 이제 팬데믹이 끝나서 도와주던 사람들도 과거에는 인신매매로 처음에는 탈북자를 도우면 벌금을 문다든지 아니면 뭐 두 번째 세 번째 잡히면 한 3년, 크면 5년 이런 식으로 감옥에 갔는데 지금은 잡히면 무조건 13년인 거예요. 간첩이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 자기의 그 뭐랄까 위험수당이라고 그럴까요? 그러다 보니까 한 10배 높아진, 또 어렵고요. 그리고 중국이 과거에는 버스나 기차를 통해서 우리 탈북민들이 이동을 했는데, 지금 버스나 기차로 전혀 이동할 수 없어요. 왜 그러냐면 중국에는 안면 인식 기술이라고 그래가지고 결국은 이게 한국에서 수출한 거였더라고요. 물론 첨단을 수출했으니까 좋은 일인데 그게 이제 버스나 기차 앞에 그걸 설치해서 탈북자 또 범죄자 똑같은 선상을 놓고 잡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비용이 치솟고 탈북자가 굉장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예 어쨌든 영화도 만드셨고 탈북한 분들은 그 조국을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가 떠나는 거잖아요. 이런 것들을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계속 알리실 건 가요?

◇ 김성은 : 거기에 보면 못다 한 이야기가 있는데 노 씨 일가 중에 80대 노모가 북한에서 일제 시대도 살았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부자 시대를 다 산 분이세요. 그가 탈북하는 과정 중에 보면 계속 어르신 장군님을 놓고 온 게 가슴 아프다. 또 저들이 지금 나한테 친절하게 해주지만 우리가 목적지에 가면 자기네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의 마지막에,

◆ 이성규 : 저들이라면 목사님 일당이네요.

◇ 김성은 : 그렇죠 한국에 있는 사람이나 미국 사람들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와서 그 노모가 바로 왜 내가 빨리 여기를 오지 못했나 가족도 그랬고 한결같이 얘기를 합니다. 결국은 그분들은 북한에서 전혀 모르는 곳을 오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고 실제로 한국에 도착해서는 자기들이 이렇게 속고 살았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이 얘기를 반대로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 한국에 있는 많은 청소년들과 6.25를 겪지 못했던 사람들이 북한이 저렇게 못 살고 힘들고 유토피아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죽는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걸 잘 믿지 않고 있거든요. 거꾸로 저도 이제 불법이 아니라면 한국 분들이 북한을 좀 가서 갔다 와보면 우리 이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영화 속에 그들이 유토피아에서 탈출해서 정말 유토피아가 어떤 건지를 알 수 있듯이 한국의 많은 청소년과 이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진짜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 이성규 : 또 이제 말씀 중에도 잠깐 나왔지만 실제로 얘기를 들어보면 이 탈북에 성공한 이후에 그분들이 이제 실상도 알겠지만 또 새로운 꿈도 갖고 또 아이돌을 꿈꾸는 젊은 친구들도 있고 뭐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 김성은 : 그렇죠 탈북민들은 똑같아요. 이 노 씨 가족만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수많은 탈북민들을 구출하면 대부분 뭐라고 하냐면 그냥 자기들 감옥 가지 않고 밥 좀 배불리 먹고 그게 뭐 꿈이지 꿈이 다른 거 있어요. 사는 게 다 똑같죠. 이렇게 한결같이 얘기합니다. 하지만 자유 세계에 와서 깜짝 놀라는 게 너무 다양한 거예요. 여기는. 다양하면서도 뭐가 하나 잘못돼도 이 사회가 헐렁해 보이는데도 그 시스템이 계속 돌아가는 걸 보는 거예요. 북한은 시스템이 하나 딱 붕괴되면 모든 게 멈춰버리거든요. 왜 그러냐면 국가에서 다 운영하는 거니까, 예를 들어서 자동차를 만드는데 바퀴 타이어가 하나 없으면 북한은 그 차가 움직일 수 없는 거예요. 왜 공장이 딱 하나만 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는 경쟁 사회니까 그런 것을 보면서 이들이 새로 깨닫고 또 여기는 기회가 있고 꿈이 있고 특히 이제 북한이란 나라가 최근에 한국의 드라마를 봤다고 그래서 16살 청소년이 12년 감옥간 거 뉴스에도 나왔잖아요. YTN에서도 나온 것 같아요. 그러듯이 이 문화의 욕구의 갈망은 굉장히 커집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아이돌이나 이런 것들 사실 북한에서 이들이 와서 꿈꾼 게 아니라요. 많은 미디어 매체들이 북한에 번졌고 또 그것 때문에 또 한국에 오는 사람도 있었고요. 자연적인 이런 문화의 현상들은 일어나고 있고 북한의 이런 문화들이 계속 가야만 어떤 자유의 소중함, 또 깨달음 이런 것들이 일어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마지막으로 두 분의 앞으로의 꿈 계획에 대해서 좀 말씀해 보시죠. PD님부터 하실래요?

◎ 최대원 : 저는 이제 또 의미 있는 작품들을 제가 이쪽 프로덕션 쪽 일을 계속해 나가는 과정에서 좀 더 해봤으면 좋겠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많은 분들이 영화 이후에 이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좀 궁금해하시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이분들 짧은 영상들을 좀 찍어서 유튜브나 이런 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게 하면 좋지 않을까

◆ 이성규 : 예 목사님께서는요?

◇ 김성은 : 저는 뭐 목회자로서 24년 동안 이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또 제가 힘이 닿는 한 이 길을 걸어가면서 탈북민들 특히 코로나 이후에 10배나 더 힘들어진 이 탈북 과정들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국제사회에서 알릴 수 있는 이런 일에 제 나머지 삶을 탈북자들을 위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화제의 다큐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김성은 목사, 최대원 프로듀서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두 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김성은 : 네 감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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