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늙음을 피할 수 없다면

곽아람 기자 입력 2024. 2. 27. 00:01 수정 2024. 3. 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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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출판물 중 문학 비중이 큰 편이고,

대중의 관심도 다른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고 생각하지만,

Books가 문학에 할애하는 비중이 적어 평소에 아쉽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갈증을 문학 특집면으로 해결하면 어떻겠냐는 제안과 조언이 있어

지난주 문학 특집면 ‘지금 문학은’을 론칭했습니다.

Books가 매달 키워드를 정해 ‘이달의 문학’을 엄선해 안내하고,

강동호 문학평론가가 ‘이달의 시집’을,

윤고은 소설가가 ‘이달의 장르소설’을 소개합니다.

요즘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말로 ‘많관부’라고 하던가요?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꿈·사랑·죽음도 사고파는… 모든 걸 거래하는 세상은 행복한가

지난주엔 일본 시코쿠의 소도시 다카마쓰(高松)에 있었습니다.

2박3일 머무른 그 도시에서 가장 이국적인 건 도시 곳곳에서 마주한 ‘本’이라는 글자였습니다.

‘本(혼)’은 일본어로 ‘책’이란 뜻이지요.

공항에서 도시로 접어들면서, 혹은 도시의 역사(驛舍)에서

‘本’이라는 간판을 눈에 띄게 붙여 놓은 서점을 마주하면서

‘이 도시엔, 아직 책의 ‘혼(魂)’이 살아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일본 소도시 다카마쓰 효고마치 상점가 모퉁이의 서점 '다카마쓰 쇼린' 문 앞에 '本'이라 적힌 입간판이 놓여 있다. /다카마쓰=곽아람 기자

어느날엔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효고마치 상점가를 걷다가

붉은 글씨로 ‘本’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적힌 흰 색 입간판을 발견했습니다.

‘다카마쓰 쇼린(高松書林)’이라는 서점 벽면에

‘Since 1948′ ‘本の予約, 配達受付中!(책 예약, 배달접수중!)’ 등의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일본 소도시 다카마쓰의 서점 '다카마쓰 쇼린' 벽에 'Since 1948', '책 예약, 배달 접수!'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인구 42만 지방 도시의 작은 서점이 업력 70년을 넘겼다는 사실이 감탄스러웠거니와,

온라인 서점과 경쟁하기 위해서인지 예약한 책을 배달까지 해준다는 적극성도 대단하다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자그마한 곳으로 담배도 함께 팔고 있더군요.

다카마쓰 쇼린의 입구. '담배'라 적힌 간판이 함께 붙어 있다. /다카마쓰=곽아람 기자

서점에서 눈에 가장 띄었던 건 노년의 저자들이 노년에 대해 적은 책을 진열한 코너.

올해 101세인 소설가 사토 아이코 에세이 ‘老い力’(노년의 힘),

‘시마 과장’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히로카네 켄시(77)의

‘人生は70歳からが一番面白い’(인생은 70세부터 가장 재미있다),

평론가 히구치 게이코(92)가 쓴 ‘老いの上機嫌’(노년의 상쾌함)과 ‘老いの地平線’(노년의 지평선)….

노년의 저자들이 노년에 대해 쓴 책이 진열된 다카마쓰 쇼린의 책장. /다카마쓰=곽아람 기자

지난해 80대 이상이 전인구의 10%를 넘어선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책들이었지만

‘초고령화사회’라는 단어가 상기시키는 무기력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보다는 늙음을 대면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돋보이는 책들이었지요.

이 오래된 서점이 예약한 책을 배달해 주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것처럼요.

초고령화사회 진입을 앞두고 불안과 혼돈에 휩싸인 우리 사회도

무턱대고 절망하기 보다는 궁극적으로는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늙음을 피할 수 없다면, 쾌활하고 힘 있는 늙음이 주역이 되는 세상을 설계하는 게 나을 지도요.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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